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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간송박물관 특별전(삼청첩. 동국정운. 미인도)

지난 9월 13일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 전(08.21~12.01)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전시품은 서울 간송, 대구 미술관 특별전에서 보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사진과는 별로 친하지 않지만 작품을 소개하니 관람 기회가 되면 사전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대구 간송 미술관 개관기념 국보. 보물전 전시명입니다.여세동보는 서울 간송미술관 보화각 멄돌에 새겨진 위창 오세창의 글귀로 '세상 함께 보배 삼아'라는 의미입니다. 삼청첩. 이정(1554~1626)1594년. 비단에 금니. 보물삼청첩(三淸帖)은 왕실 출신 화가 탄은 이정의 시화첩이다. 수록된 20점의 그림들은 먹으로 검게 물들인 비단 위에 금가루를 아교로 갠 금니를 써서 그렸다. 20폭 중 대나무가 20점이다.풍죽(風竹)형란(荊蘭)가시나무와 난초소인小人을 의미하는..

대구...간송박물관 특별전(긍재전신첩. 혜원전신첩)

지난 9월 13일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 전(08.21~12.01)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전시품은 서울 간송, 대구 미술관 특별전에서 보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사진과는 별로 친하지 않지만 작품을 소개하니 관람 기회가 되면 사전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긍재전신첩(兢齋傳神帖). 보물. 김득신(1754~1822)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알려진 김득신의 화첩이다. 김득신은 서민의 풍속을 해학적으로 담아낸 이 화첩에서 뛰어난 관찰력과 개성적 화풍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경지를 드러냈다. 간략화된 배경에 인물들을 배치하고 굵은 선으로 주름진 의복을 표현하여 김홍도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순간적인 동작을 포착하여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한 것은 김득신만의 개성이다.주중가효(舟中佳肴)배안의 좋은 안주고기잡이..

대구...간송박물관 특별전(해악전신첩.경교명승첩)

지난 9월 13일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 전(08.21~12.01)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전시품은 서울 간송, 대구 미술관 특별전에서 보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사진과는 별로 친하지 않지만 작품을 소개하니 관람 기회가 되면 사전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보물. 정선(1676~1759). 1747년겸재정선이 72세에 그린 화첩이다. 금강산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동해안 일대를 그린 21폭 그림과 41편 시문이 총 76면에 걸쳐 실려있다. 정선은 같은 이름의 화첩을 30대에 제작한 적이 있었다. 아쉽게도 전하지 않는다. 70대 노화가가 그린 그림은 한층 원숙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해산정(海山亭). 해악전신첩해산정은 해금강의 명승지인 고성에 있는 정자다. 오른쪽 약간 높은 위치에 해산정을 두고..

대구...간송미술관 특별전(고사인물도)

지난 9월 13일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 전(08.21~12.01)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전시품은 서울 간송, 대구 미술관 특별전에서 보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사진과는 별로 친하지 않지만 작품을 소개하니 관람 기회가 되면 사전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김홍도 고사인물도. 보물역사 속 인물의 교훈적 일화를 그린 김홍도의 고사인물도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후한대 현자 엄광을 비롯해 서예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왕희지, 시인 도연명과 임포, 그리고 성리학을 완성한 주희 등으로 모두 조선 선비들이 사표師表로 삼았던 인물들이다. 이 작품은 본래 8폭 병풍으로 제작되었다. 병풍은 여러 폭에 다양한 인물들의 일화를 담을 수 있고, 수직으로 확장된 공간에 산수풍경을 담아 그림 보는 맛을 더해준다 이에 더해 김홍도가 말년에 구사한 ..

몽골 여행(5-2)

몽골 마지막날몽골 마지막 복드왕 겨울궁전-국립박물관-수흐바트라 광장-간동사원-전통민속공연사진이 많아 몇 편 나누어 포스팅합니다. 국립박물관-간동사원 포스팅입니다 2024.08.31몽골국립역사박물관가이드 울지 양이 사진에 잡혔군요. 1971년 현재 건물로 자연박물관이 이전되어 운영되다가 1992년 자연사 박물관과 국립 역사박물관으로 분리되면서 자연사 박물관이 이전하며 국립 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2008년 12월 몽골 국립 박물관으로 개칭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역사박물관이라 불린다. 3층의 9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선사시대, 몽골제국, 청나라 점령기, 1921년부터 1990년까지 사회주의 국가, 1990년대 민주시대 시대를 망라한 역사, 전통의상, 문화를 알아 볼 수 있는 유물과 사진 등의 자료..

해외 여행 2024.09.24

몽골 여행(5-1)

몽골 마지막날몽골 마지막 복드왕 겨울궁전-국립박물관-수흐바트라 광장-간동사원-전통민속공연사진이 많아 몇 편 나누어 포스팅합니다. 먼저 복드왕 겨울 궁전입니다. 2024.08.31복드왕 겨울궁전"몽골 울란바토르 남쪽에 세워진 복드 칸국 시대의 궁전이다. 몽골의 마지막 칸 젭춘담바 후툭투 8세(Жавзандамба хутагт VIII)의 궁전으로 1893년부터 1903년 사이에 지었고 20여 년 간 칸이 거주하는 궁궐로 기능하게 된다.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때 왕정이 폐지되고 소련의 간섭을 강하게 받던 냉전기에도 파괴를 면했으며 박물관으로 재활용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여름궁전도 있었으나 현재는 파괴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요·금·원·청 등 유목민족 국가의 지도자들은 동날발(冬捺鉢), 하날발(夏捺鉢..

해외 여행 2024.09.22

몽골 여행(4)

세쨋날테를지 국립공원 숙소-엘트 산 트레킹-게르(국립공원 조망지점)-징기스칸 기마상-울란바트로주변 풍광과 짧은 소회 2024.08.30아침 산책길에서 잡은 숙소 풍광숙소 뒤편, 호텔 주변에는 철제펜스가 설치되어 있고, 출입구에도 바리케이트로 차단되어 산책길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침 산책은 숙소 뒤편 펜스 개구멍을 통해 테를지 국립공원의 모습을 잠시 눈에 담고 복귀했을 뿐입니다.호텔에서 바라본 테를지 국립공원숙소 뒤편 바위에도 독수리 바위, 상어 바위(?) 등등의 이름이 있었건만 입력 3초 만에 아웃 풋되는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적자생존에 충실해야했건만 여기서 적자생존은 '적는(기록하는) 놈이 살아남는다'라는 뜻입니다.테를지 국립공원몽골 여행의 이틀은 국립공원 주변을 둘러보는 일정이었습니다..

해외 여행 2024.09.21

몽골 여행(3)

여행 둘째 날엘승타사르하로 사막-울란바토르-테를지 국립공원(유네스코 세계 자연문화유산)-아라야발 사원-거북바위-게르 숙소주변 풍광을 담았습니다. 2024.08.29사막승용차. 대형버스가 여러 갈래 길을 만들었지만 통행 우선순위는 가축이었습니다.유목민의 삶과 직결되는 까닭이겠지요초원을 가로지른 도로울란바트로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개설된 2차선 같았습니다.푸르른 봄날에는 어쩐 풍광을 연출했을지,만추에도 이토록 가슴 설레는 장면이 파노라마로 전개되는데. 대상(隊商)이 별 헤며 걸었던 길징키스칸의 정벌 루트. 동서양 문화, 상품이 오고 간 실크로드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 길 위에 중국과 러시아 상품을 실은 화물 자동차가 달리고, 몽골 자동차 시장을 잠식한 메이더 인 저팬의 혼다가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유일한..

해외 여행 2024.09.20

몽골 여행(2)

둘째 날숙소 주변 새벽 산책 2024.08.29숙소엘승타사르 하로 사막초저녁에 비가 내려 별 관측은 하지 못했습니다.자정 무렵 밖을 나왔더니 북두칠성이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 보였습니다.새벽혼자 밖을 나와 걸었습니다.겁 많은 중생, 늑대, 여우가 나타날까 두려워 멀리 가지는 못했습니다.하현달과 금성여명게르는 잠들어 있고게르 내부난로. 침대 4 이불을 침대 시트로 착각하여 덮지 않은 탓에  나를 포함 여러 친구들이 밤새 추위에 떨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산책하면서 바라본 게르동쪽 하늘이 붉어졌지만...어워와 산허리를 감싼 구름모래 언덕전봇대1960~70년대 초우리나라 전신주처럼 나무재질입니다.늦가을비포장 자갈길 신작로와 미루나무, 폐유를 바른 전봇대, 전깃줄에 앉아 강남 갈 차비를 했던 제비 유년의 고향이..

해외 여행 2024.09.20

몽골 여행(1)

2024.08.27~2024.09.01친구들과 몽골 여행 다녀온 먹거리, 놀이를 제외한 경관 사진 몇 장 올립니다. 2024.08.28울란바토로~엘승타사르하로 사막끝없이 펼쳐진 초원유목민이 거주하는 게르이동 중에 점심 식사 후 주변 경관 둘러보기끝없이 이어지는 초원가르마처럼 그 중앙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 맨 위 흰색 건물이 식당이며 그 앞으로 도로가 개설되어 있습니다.도로(사진 좌측)EBS에서 방영한 늑대를 추적하기 위해 원주민들이 숨어 있는 바위산  느낌입니다.엘승타사르하로 사막엘승타사르하이(Elsen Tasarhai)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중서부로 약 280㎞ 떨어진 곳으로써 ‘초원과 사막 사이의 지역’이다. 몽골 초원 지대의 끄트머리에 있어서 이곳을 ‘초원의 사막’이라고도 말하는데, 몽골..

해외 여행 2024.09.19

함안...충노 대갑비

무진정서너 차례 답사하였으나 충노 대갑의비를 이제야 알고 다녀왔습니다.무진정https://12977705.tistory.com/8728020無盡亭無盡亭潭효자담(孝子潭) 비석부자 쌍절각(父子雙節閣).숙종 32년(1706년)조삼의 증손인 조준남과 그의 아들 조계선의 효와 충을 기려 세운 전각이다.  "조준남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적이 쳐들어와 증조부 조삼의 묘를 파헤치자 왜적들을 뚫고 들어가 흙으로 관을 덮고 저항하였다. 왜적이 그를 위협하자 조준남은 "네놈들이 내 선조의 묘소를 무단 훼손하니 너희는 나의 불공대천의 원수다."라고 분노하며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 조계선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1627년 정묘호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출전하였다가 의주에서 전사하였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인천...약사사 칠층석탑

약사사. 남동구 풀무로 48 약사사. 대한불교화엄종의 본산"1932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던 보월스님이 우연히 이곳 만월산을 지나게 되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동서남북이 한눈에 다 보이고, 산세가 팔을 뻗어 시가지를 감싸 안은 듯한 모양이 예사롭지 않아 그 이듬해 이곳에 작은 암자를 짓게 하고 약사암이라 명명하였다. 지금의 약사사보다 조금 더 산 위쪽이었는데, 일반 대중에게 부처님의 설법이 좀 더 쉽게 다가가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보월스님은 그 뒤 금강산으로 돌아갔고, 그를 이어 인천 해광사에서 수도 중이던 한능해 스님이 이곳을 지켰다. 그는 1960년대 들어 지금 위치에 대웅전 등을 짓고, 약사암을 약사사로 높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 약사사에는 대웅보전, 극락전, 약사전, 칠성각, 산신..

옹진...통일사 석불입상

산행객의 등산기에 석불입상과 일제강점기로 추정되는 석탑 사진을 보고 찾았습니다. 통일사한국전쟁 때 전사한 남편의 넋을 기리기 위해 비구니 최선규 스님이 1983년 창건하였습니다. 불두를 복원한 석불입상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문인석 느낌입니다.문화유산청 자료에는 조선시대에 조성한 석인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일반적인 팔작지붕과 달리 추녀마루가 긴 편입니다.불단오층석탑일제강점기 석탑인 줄 알고 찾았는데 현대작입니다.석불입상이 아니었고, 일제강점기 석탑도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옹진군은 첫 답사이었습니다. 2024.08.08

인천...대한민국 수준원점(水準原點)

수준원점"국토의 높이를 정하는 기준점이며, 이를 이용하여 전국의 국가기준점이 결정됩니다. 수준원점과 국가기준점은 국토개발, 지구 과학 분야의 연구 등에서 높이 추정의 가준 점으로 사용됩니다. 수준 원점은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인천 앞바다의 바닷물 평균 높이(평균 해수면)를 관측하여 인천 중구에 설치하였습니다. 이후 도시개발 등을 이유로 기존 수준 원점 (5,477m)에서부터 정밀하게 측량하여 1963년 12 수준원점(26.6871m)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안내문) 즉 수준원점(26.6871m)은 인천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이 지점까지의 높이를 나타냅니다.위 현장 안내문과 다음백과사전에는 관측년도가 서로 다릅니다."평균해수면은 일종의 가상면으로, 수준 측량에 직접 사용할 수 없으므로 평균..

인천...해광사 칠층석탑

해광사1908년 일본 조동종 계열의 화엄사로 창건되었다고 합니다.창건 당시에는 일본 본원사에서 가져온 석가여래를 본존불로 봉안하였으며, 1994년 현재 대웅전을 건립하면서 화엄사 대웅전은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두산백과사전에는 대한불교화엄종 종파 사찰로 검색됩니다" 한국 불교 26개 종단의 하나이다. 제1대 종정(宗正)인 한능해대종이 1920년 인천 만월산(滿月山)에 약사사(藥師寺)를 창건하고, 인천 신흥동(新興洞)에 있던 일본인의 사원을 인수하여 해광사(海光寺)라 칭하고, 이 두 절의 주지를 겸임하면서 1965년 10월 대한불교화엄종을 창종(創宗)하고, 1966년 6월 불교재산관리법에 따라 불교단체 등록을 함으로써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종지(宗旨)는 대승불교의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하여 중생을 교화하고,..

인천...부용사(암) 칠층석탑

부용사(암).미추홀구 수봉북로 341930년 승려 만성이 지은 작은 암자로 출발하여  한국전쟁 이후 인천시민 128명의 시주로 창건된 비구니 도량입니다.일제강점기의 전형적인 칠층석탑입니다.칠층석탑은 대웅전 앞이 아니라 응진전 전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1958년 응진전 건축 때 다른 곳에서 옮겨온 탑으로 추정됩니다. 인천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던 까닭으로 일본 석탑이 다수 남아 있습니다. 그 많았던 88 야불은 한 분도 계시지 않은데.우리나라 일제강점기 석탑https://cafe.daum.net/moonhawje/MebK/262응진전. 1958년2023년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재로 지정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 전면 겹처마. 후면 홑처마. 풍판을 걸었습니다.교창과 유리 여닫이문은 ..

인천..부평도호부 관아

비림부평부사를 비롯한 관리들의 선정비군부평도호부 관아부평초등학교 교정 모퉁이에 있는 옛 부평도호부 관아 건물이다. 부평도호부관아는 숙종 3년(167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세워진 내력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 의종 4년(1150)에 안남도호부로, 고종 2년(1215)에 계양도호부로,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부평부가 부평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부평도호부로 승격이 되면서 관아 건립에 착수하여 약 5년 후(태종 18년, 1418)에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부평부 읍지》에 의하면 부평도호부 내에는 동헌 외에 객사·동서 삼문·근민당(近民堂)·좌우 익랑·사령청·향청·포도청·훈무당·부창 등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아 규모는 인천도호부를 능가..

인천...계산동 은행나무

부평초등학교 교정수령 500년, 600년이 지난 두 그루 은행나무가 있습니다.사진 좌측 나무는 은행이 열린 암나무이며, 오른쪽은 숫나무입니다.계산동 은행나무수령 500년 이상 추정. 높이 25미터. 둘레 10미터1992년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부평도호부 관아에 심었던 나무입니다.부평초교 교실 앞수령 600년, 높이 20미터, 둘레 6미터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부평도호부라는 설명은 없지만 암나무와 더불어 도호부에 있었던 나무로 추정됩니다.사진 좌측 뒤편에 부평도호부 관아 건물과 비석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두 그루 은행나무는 부평초교 정문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으며, 초등학교에서 부평도호부로 출입하는 길은 없습니다.그런데왜 수령 500년 나무는 기념물이며, 600년 나무는 보호수일까요? 2024..

강화...흥왕리사지(2) 석탑부재

흥왕사지기존 국가유산청 발간 한국의 사지에는 흥왕사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동일기관의 2023년 학술조사보고사는 흥왕사지를 흥왕리사지(1)로, 오늘 방문한 사지는 흥왕리사지(2)로 기록하여 혼란스럽습니다. 이 글에서는 오늘 답사한 사지는 흥왕리사지(2)로 2016년 답사한 사지는 흥왕사지로 표기하겠습니다. 흥왕사지(2016년).https://12977705.tistory.com/8725213흥왕사지 석탑부재 흥왕리사지(2)는 흥왕사지를 거쳐서 가야 합니다.  흥왕리사지(2)금년초 우리 카페 최석훈 님이 포스팅한 절터입니다. 국가유산청 홈페이지의 강화 마니산 학술조사보고서 자료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답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거의 처녀지나 다름없는 사지입니다. 그 절터를 찜통더위를 뚫고 샘물처..

강화...사기리 탱자나무

사기리(沙器里) 탱자나무 화도면 사기리 135-10번지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니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문화유산청 홈페이지에는 기록을 살펴보면400년 수령, 원나라의 고려 침공 때 성 주위에 심었던 나무, 탱자나무의 북방 한계선에 자라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강화 사기리 탱자나무의 나이는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3.56m, 뿌리 부분 둘레 2.2m이다. 가지의 굵기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컸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재 대부분 가지가 죽고 동쪽 가지만 살아 있다.강화도는..

강화...고려산 백련사

백련사기억의 오류?왜 답사했었다고 생각했을까요?아니왜 그렇게 수 차례 강화 답사를 하면서도 동선에 포함시키지 않았을까요?아마도고려시대에 조성되어 보물로 지정된 후 도난된 철조여래좌상 외에는 특별한 옛님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그런 연유로 백련사와 흥왕리 사지(2), 강화역사박물관 일제강점기 석불과 더불어 이번 강화도 답사의 주목적의 하나이었습니다.철조여래좌상(출처. 문화재청)극락전1905년에 세운 절집에서는 흔치 않은 ㄱ字 건물입니다.원래는 관음전이었으나 1986년 극락전으로 현판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백련사 창건설화"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천축스님이 고려산 꼭대기에서 오련지五蓮池를 발견하고 다섯 송이의 연꽃을 날려  연꽃이 떨어진 장소에 절을 세웠는데, 하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

강화...강화역사박물관 강화 동종 外

일제강점기의 88 불상은 탐문에 실패하고전시실의 강화동종,선두포축언시말비,고려 청자, 불교문화유산 몇몇 점을 둘러보았습니다.청련사 원통암 감로탱(모본)문화유산청 등재 원통암 감로탱(진본). 1906년금동여래입상. 통일신라강화읍 대산리 출토금동삼존불. 고려강화 관청리 출토선각불상경(線刻佛像鏡). 고려강화 용정리 출토전면 윤왕좌 수월관음보살좌상. 명문. 鄭氏年二十三共眞후면 아미타여래(관람객은 볼 수 없다)강화 동종강화산성 남문에 걸려있었던 종문화재청 자료에는 1711년 사인비구가 주조한 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 설명문은 모호합니다현장 설명문1688년 강화유수 윤지완 처음 주조1711년 강화유수 민진원이 옛 종을 녹여 새로 주조 옛종. 사인 비구 새로 조성 종. 조신 설명문에 따르면 사인비구는 ..

강화...강화역사박물관 석조여래불두, 석조연화대좌

야외전시장여러 자료에 실려있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신사국 88 불상을 찾지 못하고 실내 전시물 답사 후 들어가면서 먼발치에서 보았던 야외 석조물을 살펴보았습니다.귀부비신이 망실되었으며, 방형으로 새겨진 귀갑문이 이체롭습니다.석조석조여래불두. 석조연화대좌2015년 하점면 장정리에서 신고된 연화대좌 2기와 2022년 같은 곳에서 추가 신고된 불두입니다.안내문에는 고려시대 절터로 추청 되는 사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연화대좌(1)상대석과 하대석이 한돌입니다.각각 단판단엽의 연화문과 간엽을 새겼으며 상부에도 복연을 조식하였으며 다소 투박한 상태입니다..안내문 설명처럼 고려시대에 조성된 대좌이면 후기로 추정됩니다.입상의 불보살의 대좌로 불신을 끼웠던 촉공만 남아 있습니다연화대좌(2)연화대..

강화...전쟁기념관 하마비. 금표

전쟁기념관 비림정문 들어서서 우측에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세 차례, 최근에는 2021년에 답사한 것 같습니다.하마비강화 향교에 있었던 하마비 수령이하개하마(守令以下皆下馬)정 3품 이하는 말에서 내려 출입하라는 문구입니다.계묘 하립(癸卯 夏立)계묘년을 현장 안내문에는 1,783년으로 특정하였습니다.설립 연도를 새긴 하마비는 흔치 않습니다.금표(禁標)명문금표(禁標)방목축자장일백(放牧畜者杖一百)기회자장팔십(棄灰者杖八十) 고려궁지 부근에는 가축을 방목하지 말고, 재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입니다.계축 사월 일립(癸丑四月日立)현장 안내문에는 계축년을 1,733년으로 설명합니다우리나라 금표비https://cafe.daum.net/moonhawje/MebK/239 2024.08.07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2004년 문화재청 주관, 답사 이후 첫걸음입니다. 뒤죽박죽인 그때 글이 남아 있습니다. "가을이 농익어 가건만 떠나지 못함의 아쉬움에 병이 깊어질 무렵 답사후기 당선 부상으로 강화도로 답사 간다는 문화재청에서 날아온 낭보에 거의 보름밤을 불면에 시달린 것은 우리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한양의 궁궐을 비롯 경기북부를 답사해보지 못한 나의 컴프렉스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에 대한 설렘 때문이었을 것이다.처녀지에 대한 기대는 첫날밤 마누라 가슴을 더듬던 기억 만큼이나 흥분과 감흥으로 가득 차서 오매불망 잠 못 이루며 천재일우의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기에 새벽 5시부터 대구에서 출발한 여정이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강화대교 건너 강화초입에 도착했어도 피로는 고사하고, 점심 식사 때 맛본 게장과 강화특산 순무 깍두기 맛에..

강화...남창포대. 덕진돈대.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비

2004년 문화재청 문화유산 답사기 공모에 입선하여 강화도를  답사사하였을 때 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당시에는 사진을 찍지 않을 때지만 글이 남아 있습니다. " 내게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일기에도 피곤하기는커녕 열정이 넘쳐나건만 일행들 특히 문화재청에서 온 직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강화도는 한말에 서구 열강들이 한양으로 침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리적 위치기에 어쩌면 군사적 요충지 었다.강화 해안선을 따라 구축되어 있는 군사시설인 진, 보, 돈대가 수도 없이 많아 보여 한말에 축성했을 것이라 지레짐작을 했는데 가이드에 의하면 임란, 병란 후 숙종 재위 시 외세의 침입과 이궁목적으로 축성되었으며 경기도 광주, 개경과 함께 강화도에는 오늘날 2급에 해당하는 관원이 파견되어 있었다 한다..

인천...백운산 용궁사

용궁사. 인천 중구 운남로 199-1 용궁사.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영종도 백운산 기슭 평평한 대지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백운사(白雲寺)라 하였다고 전하며 일명 구담사(瞿曇寺)라고도 한다. 조선 철종 5년(1854)에 흥선대원군이 중창하여 용궁사라 개칭하고 고종이 등극할 때까지 이 절에서 칩거하였다고 한다.전설에 의하면 영종도 중산 월촌에 사는 윤공이란 어부가 꿈을 꾼 뒤 바다에서 작은 옥불을 어망으로 끌어올려 이 절에 봉안하였다고 하며 현재 그 옥불은 없고 모조 옥불을 모시고 있다. 경내의 관음전(觀音殿)은 맞배지붕, 홑처마 건물로서 옥석(玉石)으로 된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으나 일제강점기 때 도난당하고 현재는 후불탱화를 배경으로 한 관음상이 걸려 있으..

청도...운문사 약사유리광여래도.칠원성군도

칠성각칠성도. 1976년독성. 산신도를 함께 봉안하였는데 칠성각입니다.당연히 삼성각인 줄 알았는데 칠원성군을 모신 까닭에 칠성각으로 명명한 것 같습니다.독성도. 1942년산신도. 1976년운문사 칠성각 부도(雲門寺 七星各 部圖)약사유리광 여래"1868년(고종 5) 경상북도 지역 대표 화승인 응상이 수화승이 되어 청도 운문사에서 제작하고 봉안한 불화이다. 각부(各部) 형식으로 칠성여래, 칠원성군을 그린 7점 가운데 약사유리광 여래를 그린 작품이다. 2018년 미국 경매에서 환수되어 운문사로 이운된 이 칠성각부도의 전체 구성은 현재로는 알 수 없으며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소재도 불분명하다.세로 129.5㎝, 가로 74.3㎝ 크기의 비단천에 색을 올려 완성하였다. 장방형으로 긴 화면은 칠성여래를 그린 상단과 ..

청도...호거산 운문사

운문사오늘 청도에서 업무를 마치고 승가대학 사서 스님에게 졸저 '마애부도. 마애탑을 전하러 왔습니다.옛글로 대신합니다. 호거산 운문사https://12977705.tistory.com/8724929https://12977705.tistory.com/8724930처진 소나무만세루범종. 조선후기대웅보전소조비로자나불좌상(조선후기)삼신불회. 1755년. 금어 처일악착보살동서삼층석탑. 통일신라서삼층석탑동삼층석탑대웅전 앞 석등석사자불단소조제화갈라보살.소조석가여래좌상.소조미륵보살좌상. 조선 후기소조나한상. 조선후기금당 앞 석등https://12977705.tistory.com/8725609대웅보전목조지장보살(조선 후기)지장탱(1889년)작압전작압전 기단석조여래좌상. 사천왕상. 제석천?석조여래좌상향좌측 금강저를 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