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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강화군27

강화...능내리 석실분 능내리석실분 가릉 뒤편에 위치한 고려 항몽 시기의 지배 계급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인천광역시 기념물 28호입니다. 석실은 남북으로 장방형이며, 봉분에는 호석(추정 12각형), 난간 둘레석, 석수 2기가 있습니다. 석실 앞에는 제사터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됩니다. 또한, "석실 네 방향에서 진단구로 판단되는 도기 항아리가 출토되었으며, 석실에서는 청자 편, 각종 금은제장식 파편, 유리그릇 편, 구슬류, 상부 통보(祥符通寶, 송(宋) 진종(眞宗) 1008∼1016 제작) 1점, 은제 못, 금박 장식 관재 등 소량이지만 다양하게 출토되었다"라고 합니다. (다음 백과) 제사터 난간 어미 기둥과 동자주에 화문을 새겼습니다 동자주의 화문 어미 기둥의 법수 석수(1) 무덤 수호신으로 2기만 유존합니다. 석수(2) 능.. 2020. 10. 11.
강화...가릉 가릉(嘉陵) 고려 원종(재위 1259∼1274)의 왕비 순경 왕후의 무덤으로 강화도에는 천도 시기에 조성한 석릉(碩陵), 곤릉(坤陵), 홍릉(洪陵)이 남아 있습니다. 순경 왕후(1,222~1237) 본관은 경주(慶州)로, 고려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익공(莊翼公) 김약선(金若先)의 딸이다. 고려 무신정권기 집권자 중 한 명인 최우(崔瑀)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원종이 태자가 되기 이전 입궐하여 경목현비(敬穆賢妃)로 책봉되었다. 1235년(고종 22)에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가 되었으며, 1236년(고종 23) 충렬왕(忠烈王)을 낳고, 1244년(고종 31) 훙서하였다. 원종이 왕위에 올라 1262년(원종 3)에 추봉(追封)하여 정순왕후(靜順王后)로 삼았고, 아들 충렬왕이 즉위하여 1274년(충렬왕 즉위.. 2020. 10. 11.
강화...낙가산 보문사 보문사 2004년 문화재청 주관으로 답사하였습니다. 배, 갈매기, 조성 중이던 윤장대, 마애관음보살, 그런 편린들이 스쳐갔습니다. 이른 아침 이른바 해장거리 답사 혼자서 절집을 독차지하였으나, 마애보살에게 지극으로 기도하던 보살님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지금은 교량이 개설되어 쉽게 순례할 수 있으며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과 더불어 관음성지로 널리 알려져 참배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은 사찰입니다. 아래는 2,004년 글 http://cafe.daum.net/moonhawje/DjZP/208?q=%EA%B0%95%ED%99%94%EB%8F%84%2F%EB%B3%B4%EB%AC%B8%EC%82%AC 강화도 / 보문사 문화재청의주관하에실시된답사인관계로영진행이더디다.멀리강화도까지올기회가없기에내욕심같.. 2020. 10. 10.
강화...화개사 승탑(부도) 화개사 시나브로님 포스팅에서 만났던 부도를 찾아왔습니다. 절집이라기보다는 마치 한옥 같은 느낌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고려 때 창건되었으며, 한때 고려삼은 三隱 중 한 명인 목은 李穡(1328∼1396)이 절에 머물며 독서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하는 바가 없다. 1690년대에 이형상이 지은 강도지에 절 이름이 나오고, :1712∼1781)이 지은 가람고에는 화정사火鼎寺)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일제강점기 때 31본산 중 하나인 전등사의 말사였다. 1915년 붕괴된 적이 있고, 1928년 3월 정운이 불사를 알으켰다고 전한다. 1937년 이후 한때 폐사가 된 적도 있으며, 1967년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이듬해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법당.. 2020. 10. 9.
강화...교동 향교. 비석군. 읍성 홍살문 교동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으나, 조선 영조 17년(1741)에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66년에 수리하였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모셨다고 전하며, 이후 지방의 각 군현에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다. 이외에도 내삼문·외삼문과 제기고 .. 2020. 10. 7.
강화...화양사지 석탑부재 교동도 엄두조차 못 내었던 섬 다리가 개설되어 해병대 위병의 검문을 거쳐 입도하였습니다. 우리 카페 시나브로님이 근처에 까지 갔으나 뒤돌아섰다는 글 외에는 처녀지(?)입니다 우물 그리고 석탑 상층기단 갑석. 문화재청 한국의 사지에는 뒤집힌 옥개석도 있다고 했지만, 조사 당시와 달리 민가가 들어섰고 원상이 훼손된 것 같았습니다 갑석 상부에 연화문이 조식되었고, 2단 탑신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 촌로에게 옛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이 마을로 시집 온 사람인데, 그 절터 옛날에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았다. 근래 관정을 파서 현재 상태이며, 부처님 자리(석탑재)가 있다" 알려지지 않은 사적 교동도를 벗어나지 못 한 할머니의 삶 지근의 북한 땅 마음 아픈 가을 석양 무.. 2020. 10. 7.
강화...원층사지 석탑부재 원층사지 이강리 177. 마을 뒤 사지 입구에 주차 후 20여 분 소요됩니다. 들머리로부터 사지까지는 평이한 산길이 이어지며 갈림길에 이정표가 설치되어 접근성이 용이합니다. 원층사지는 행정 구역 변경으로 지정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3호 원층사지 (原層寺址). 1995.03.01 문화재 지정 해제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호 원층사지 (原層寺址). 1995.03.02 지정 그런데 문화재로 지정된 원층사지(1)와 별개로 이강리에는 다른 원층사지(2)가 유존합니다. 우리가 찾은 문화재로 지정된 원층사지에는 석불 대좌 상대석과 석탑 부재가 산포하며, 다른 사지에는 석축과 돌확이 남아 있습니다. 도괴된 금당터 석축 문화재청 한국의 사지에는 원층사지(1)를 건너뛰고 원층사지(2)만 조사 후 석.. 2020. 10. 5.
강화...참성단 금표. 천제암 궁지 참성단 금표 천제암궁지 초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금표 큰 바위 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금표(禁標) 갑자 팔월 립(甲子 八月 立) 금표(禁標) 갑자 팔월 립(甲子 八月 立) 금표 하늘에 제를 봉안하는 신성 구역인 마니산 참성단 구역의 나무를 함부로 벌목하지 말며, 관에서 나무를 키우는 곳임을 알리는 표식입니다. 갑자(甲子)년은 불확실하며 고려궁지 금표를 고려하면 1,744년으로 추정되지만 근거가 없습니다. 현재 강화도에는 고려궁지에 있었던 금표를 옮겨 놓은 전쟁박물관 금표와 함께 2 곳의 금표가 전합니다 참고로 고려궁지의 금표는 1,733년에 세웠습니다. 고려궁지 금표(전쟁박물관 야외 전시장) 여기서부터 400여 미터 올라가면 천제암궁지가 있습니다. 천제암궁지(天祭庵宮址) 마니산 참성단에 단군에게 제를 봉안.. 2020. 10. 4.
강화...온수리 성당 온수리 성당 여행객의 필수 코스지만, 2,000년 초부터 오늘까지 4번째 강화도 답사 길에 들렸습니다. 나의 답사의 관심사가 아닌 이유 뿐만 아니라 강화에는 다른 문화유산이 산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온수리 성당은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 자락의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하여 초지 들판이 펼쳐지고 염하 물줄기와 서해가 조망되는 장소에 트롤로프 신부의 주도로 1906년에 건축되었으며, 성당 부지, 건립 비용은 물론 신도들이 직접 지었다고 합니다. 근자에 새로 지은 성당. 온수리 한옥성당, 종루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종루 밖에 사제관이 자리합니다. 종루 솟을 대문입니다. 신축 성당. 한옥 성당 한옥성당 단층 팔작지붕의 일자형입니다. 용마루 끝에는 십자가 올려져 있고, 합각면은 십자 문양으로 장식하였습니다. .. 2020. 10. 3.
강화...홍릉 홍릉(洪陵) 무신 정권 집권기에 오른 고려 고종 高宗(1,192-1,259)의 능입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홍릉(洪陵),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서는 홍릉(弘陵)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1259년(고종 46) 6월 임인일(壬寅日)에 재상 유경(柳璥)의 집에서 승하하자, 그 해 9월 기미일(己未日)에 홍릉에 장례 지냈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趙復陽)이 찾아내어 다시 봉분(封墳)하였다고 전합니다. 고종(1,192-1,259) 재위 1213∼1259. 이름은 왕철(王㬚), 초명은 왕진(王瞋)·왕질(王晊), 자는 대명(大命)·천우(天祐). 강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원덕태후 유씨(元德太后柳氏), 비는 희종의 딸 안혜태후 유씨(安惠太后柳氏)이다. 1.. 2020. 10. 2.
강화...황련사 석탑 옥개석 황련사 고려산 오련사의 하나입니다. 오련사 고구려 장수왕 때 천축 조사가 오련산 정상 연못에서 연꽃을 날려 백색 연꽃이 떨어진 곳에 백련사, 흑색 연꽃 흑련사, 적색 연꽃 적석사, 황색 연꽃 황련사, 청색은 청련사라 칭했으며, 고려가 강화도로 옮겨 온 후 오련산은 고려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옥개석 절 마당 소나무 아래에 뒤집혀 있습니다. 크기 때문에 뒤집어 낙수면은 확인하지 못했으나 전각의 반전은 뚜렷합니다. 옥개석 층급 받침은 각형 3단입니다. 제자리는 어디일까요? 2020.09.21 2020. 9. 30.
강화...청수암 미륵불 강화읍 심문리에 위치한 사찰입니다. 미륵전에 봉안되어 있는 미륵불을 뵈러 순례하였습니다. "1936년 임봉법스님이 창건 1966년 제2대 주지인 정덕용스님이 도량확장 및 개축의 원력을 세웠으며, 1974년 극락전 및 미륵전,칠성각,요사채등을 복원 개축하였다. 1972년에는 대웅전이 중수되었으며, 1976년에는 대웅전·미륵전·칠성각·요사 등의 건물이 중건되었다. 또 최근 1994년에는 해운스님이 요사를 고쳐짓는 불사를 했다. 이 절은 경내의 숲이 울창하고 조망이 좋아서 휴식처로도 이름이 높다. 또 절 뒤편에 있는 언덕에는 철종이 임금이 되기 전 이곳 강화에서 살면서 애용하던 약수터가 있다고 한다. 남산 북록에 자리하고 있어서 흔히 ‘남산절’로 많이 불리고 있다. 대웅전과 금륜전·미륵전 등의 건물과 아미타불..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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