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리(沙器里) 탱자나무
화도면 사기리 135-10번지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니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문화유산청 홈페이지에는 기록을 살펴보면
400년 수령, 원나라의 고려 침공 때 성 주위에 심었던 나무, 탱자나무의 북방 한계선에 자라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의 나이는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3.56m, 뿌리 부분 둘레 2.2m이다. 가지의 굵기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컸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재 대부분 가지가 죽고 동쪽 가지만 살아 있다.
강화도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몽고의 침입을 피해 있었던 곳이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도 정묘호란(1627) 때 난을 피했던 장소이다. 이때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탱자나무는 그때 심은 것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강화 사기리의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심은 국토방위의 유물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국가유산청)

노익장을 과시하듯 탱자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1905년 고재형의 심도기행에 기록된 사기동
沙器洞前水向東 사기동 마을 물은 동쪽으로 흐르고,
李公節義弟兄同 이공의 절개심은 형제가 한 가지네.
家園喬木葱籠氣 집 앞 정원 키 큰 나무 무성하게 자랐는데,
雨露光中海日紅 이슬방울 빛이 나고 저녁노을 붉게 탄다
李公은 이건창의 조부 이시원을 칭합니다.
이시원(1790(정조 14)∼1866(고종 3). 조선 후기의 문신·의사(義士). 본관 은 전주(全州). 자는 자직(子直), 호는 사기(沙磯). 정종의 별자(別子) 덕천 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진사 면백(勉伯)의 아들이며, 건창(建昌)의 할아버지이다. 개성부유수, 형조판서, 함경도관찰사,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병인양요가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아우 지원(止遠)과 함께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충정(忠貞)의 시호가 내려졌다. 이시원은 병인양요가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아우 지원(止遠)과 함께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충정(忠貞)의 시호가 내려졌다.
사기리에는 이건창 생가가 있습니다.
이건창(1852~1898)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7a2879b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뿌리를 내렸습니다.
민초들의 생명력처럼...

유구무언
깡마른 모습이지만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과 강한 면모를 품고 있습니다.

사기리 탱자나무
강화민초들과 오랜기간 삶을 함께 했고, 영원히 어깨동무하면서 굳건히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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