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강화군

강화...고려산 백련사

임병기(선과) 2024. 9. 4.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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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기억의 오류?

왜 답사했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

왜 그렇게 수 차례 강화 답사를 하면서도 동선에 포함시키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고려시대에 조성되어 보물로 지정된 후 도난된 철조여래좌상 외에는 특별한 옛님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연유로 백련사와 흥왕리 사지(2), 강화역사박물관 일제강점기 석불과 더불어 이번 강화도 답사의 주목적의 하나이었습니다.

철조여래좌상(출처. 문화재청)

극락전

1905년에 세운 절집에서는 흔치 않은 ㄱ字 건물입니다.

원래는 관음전이었으나 1986년 극락전으로 현판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백련사 창건설화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천축스님이 고려산 꼭대기에서 오련지五蓮池를 발견하고 다섯 송이의 연꽃을 날려  연꽃이 떨어진 장소에 절을 세웠는데, 하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백련사, 파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청련사,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적석사, 노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황련사, 검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흑련사라고 하였다."라고 전한다.

 

1906년 화남 고재형(1846~1916)이 지은 심도기행에는 백련사 글이 여러 편 실려 있습니다.

 

화남 고재형(1846~1916)

白蓮寺在碧山西 백련사는 벽산의 서쪽에 있는데,

法侶閑投括眼篦 스님들은 한적하게 졸음 쫓는 죽비 치네.

誰與淵明同結社 그 누가 도연명의 백련결사 동참했나,

詩人往往姓名題 시인들은 종종 이름을 남겨 놓았네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

不識招提路 사찰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하니

天寒雪滿山 날씨는 추워서 온 산에 눈 덮였네.

忽看煙起處 연기를 피우는 곳을 홀연히 보노라니

知在亂松間 우거진 소나무 사이란 걸 알겠구나.

극락전 불단

근세에 조성된 지장. 아미타. 관음 삼존을 모셨습니다.

 

아미타후불탱. 금어 奉鑑 외. 1908년

신중탱. 금어 仲燐 외. 1888년

동종

大正五年. 1916년

지장보살도. 금어 仲燐 외. 1888년

현왕도. 화승 肯法 외. 1881년

은행나무

상사회 주차장에서 극락전으로 들어오는 길

느티나무

귀부

삼성각. 

칠성여래도. 금어 仲燐 외. 1888년

산신도. 현대

용왕도. 현대

독성도

금어 仲燐 외. 1888년

석조나한상

1941년 전등사본말지에 기록된 나한상으로 추정됩니다.

승탑원

승탑 3기와 탑비 1기가 있습니다.

여화당(麗華堂)

방형 기단, 탑신과 보주가 일석

탑신에는 당호만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 후기 종형 승탑으로 여화당의 행적은 전하지 않습니다.

의해당 처활(義海堂 處活)

방형 기단, 종형 탑신. 옥개석 위에 보주가 있습니다.

옥개석과 보주

의해당(義海堂)

의해당 처활(義海堂 處活)

아래 탑비를 통해 행적을 알 수 있습니다.

서산대사 6세손 천봉天峰의 제자

의해당 처활지탑

1806년 제자 취허 환열(幻悅)이 비문을 지었습니다.

의해당 스님의 천봉 스님의 제자로 20세에 출가하여 良憲선사에게 머리를 깎고, 天峰선사에게 불법을 전수받았으며

60세에 입적하였습니다.

신녀신진지탑(信女信震之塔)

재가 여자신도의 부도. 방형 부도입니다.

 

이웃한 청련사에도 방형 부도가 있습니다.

https://12977705.tistory.com/8725209

信女信震之塔

우리나라의 방형 부도

https://cafe.daum.net/moonhawje/MebK/479

비록

도난된 철조여래조상은 뵙지 못했지만 불화, 승탑과 인연 지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진달래가 만발한 고려산을 거닐고 싶지만 허언에 그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시절인연이라 하지만 자꾸만 자신감이 시나브로 사라지는 나이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2024.08.07

 

* *고재형. 심도기행. 1906년 /.인천시청 홈페이지 e-book를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