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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포천시15

포천...동화사 목조여래좌상 1.950년대에 창건된 사찰이지만 귀중한 목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에 거주하는 까닭에 포천을 여러 번 답사하고도 동선 수립이 용이하지 않은 까닭에 이제 인연 지었습니다. 우리가 익히아는 포천 이동 갈비촌에 위치하고 있으며, 5군단 사령부와 지척이었습니다. 대웅전 창살(어칸) 대웅전 창살(협칸) 대웅전 창살(협칸) 목조여래좌상 1,972년 개금 불사 도중에 발견된 복장유물에 의하면 1649년(인조 27) 수조각승 사인(思忍)과 차조각승 상림(尙琳) 의해 가섭, 아난, 16나한, 제석, 장군, 사자 등을 조성한 후 전라북도 순창 만일사에 봉안되었던 불상이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발원문은 도난당했고, 함께 봉안되었던 존상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첫눈에 갑옷처럼 두터운 대의가 눈에 들어옵니다 .. 2020. 10. 17.
포천...인흥군 묘계비 인흥군 묘역 능원 낚시터 뒤편에 위치합니다. 묘는 답사 목적이 아니어서 아래에서 촬영했으며 또한 사진에 담지 않은 문석인과 신도비가 2기가 있었습니다. 묘지 아래 대리석 신도비는 1655년 인평군 신도비를 찬한 이경석(李景奭)이, 인흥군 아들 낭선군(郞善君) 이우(李俁)가 글씨와 전액을 맡았습니다. 2기 신도비 중간 나무 사이에 문석인 2기가 있었으며, 그 아래에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낭선군이 글씨를 썬 1682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었습니다. 인흥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7137 인흥군 묘 향우 측 능선 아들 낭선군 묘와 왕실 가족 묘역입니다 인흥군 묘계비 도로에서 능원 낚시터 팻말로 진입하여 인흥군 묘역 못 미쳐 우.. 2020. 10. 16.
포천...인평대군 묘. 치제비 인평대군 묘역 복천 부부인(福川府夫人) 오 씨(吳氏)와의 합장 묘이며, 광주 고읍에 있었으나 숙종 19년(1693) 8월에 이곳으로 이장하였고 합니다. 사초, 곡장, 장명등. 망주석, 상석. 문석인, 동자상. 신도비. 치제각... 정자각, 신도만 있었으면 왕릉에 버금가는 규모입니다. 오늘 언감생심 음택 풍수는 고사하고 안목도 일천하여 묘소보다는 치제문 답사 목적으로 찾았습니다. 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요(㴭),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 인조의 셋째 아들이며 효종의 동생으로, 1628년 7세 때 인평대군(麟坪大君)에 봉해졌다. 1640년 볼모로 선양(瀋陽)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온 이후, 1650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청나라.. 2020. 10. 15.
포천...송우리 태봉산 태함 태봉산 소흘읍 송우리 산 28 주민들의 산보 코스처럼 느껴지는 낮은 태봉산 정상의 팔각 보호각 아래에 자리합니다. 현장 안내문에는 고려 태조 왕건 소생의 정희 왕녀(貞喜王女 ) 태를 묻어 태봉이라 불리며. 왕녀봉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비도 없으며, 태지석도 전하지 않고 고문서 등의 자료를 찾지 못해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태함 옥개석과 다른 덮개돌 디지털 포천문화대전에는 태함은 본래 것이고 원통형 덮개돌은 후보물이라고 실려있습니다. 태주는 확인되지 않지만 민초들과는 하나 된 지 오래인 듯 주변의 태봉 공원, 태봉 초교, 태봉 주공아파트 등의 지명과 많은 상호들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2020.07.04 2020. 8. 1.
포천...영조 옹주 태함.태비 소흘읍 .무봉 2리 마을회관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 아래에 태함과 태비가 있습니다. 마침 옆에 계시던 어르신이 영조 옹주 태실에서 옮겨 왔다며 본래 자리를 가리킵니다. 저 봉우리가 태봉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주변인 것 같습니다. 태함, 태비 태비(전) 옹정 십삼년 구월십구일 축시 생 옹주 아지씨태실(雍正十三年九月十十九日丑時生翁主阿只氏胎室) 雍正十三年九月十十九日丑時生翁主阿只氏胎室 태비(후) 옹정 십삼년 십일월이십육일 진시 립(雍正十三年十一月二十六日辰時立) 雍正十三年十一月二十六日辰時立 선원계보기략 영조와 귀인 조씨 소생으로 일찍 요절하였다고 합니다. 귀인 조씨는 2명의 옹주를 두었는데, 화유옹주 태실은 충남 홍성에 있습니다. 화유옹주 태실 http://cafe.daum.net/moonhawje/DjZP/5100.. 2020. 8. 1.
포천...화완옹주 태함.태비 화완옹주 태실 대원사(신북면 만세교리 29-1 뒤편 태봉에 위치 정상 산신각을 경유 소로를 올라가면 이릅니다. 향우편 능선길로 내려옵니다. 태비가 눈에 들어옵니다. 태비. 태함 태비. 태함 화완옹주 태비 (전)건융 삼년 정월십구일 축시 생 옹주아지씨 태실(乾隆三年正月十九日丑時生翁主阿只氏胎室) (후)건융 삼년 삼월이십육일 오시 입(乾隆三年三月二十六日午時立 1,738년 1월 출생 1,738년 3월 세움 1,738년은 영조 14년 입니다. 화완옹주和緩翁主(1,738~1,808)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옹주, 사도세자의 친동생,정조의 고모 "사도세자의 친누이동생으로 10세에 천연두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살아났다. 13세인 1749년 일성위 정치달과 혼인했다. 1756년 화완옹주가 해산하자 영조는 즉시 .. 2020. 7. 31.
포천...음현리 부도 음현리 부도 금강로 2110길 202. 민가 옆 인근 연못에서 발견되어 이경여 신도비 앞 약수터에 세워졌다가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안양사지 부도로 전합니다. 안양사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향적산(香積山)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견성지(堅城志)』와 『범우고(梵宇攷)』에 폐사되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8세기 후반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내촌면사무소로부터 남쪽으로 약 2리(里) 떨어져 있는 내리에 있다. 지역 안에는 기와 파편, 사기편 등이 흩어져 있다. 그 밖에 초석(礎石) 일부가 잔존한다. 그곳 사람들은 안양사라고 불러 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디지털포천문화대전) 조선후기 원구형.. 2020. 4. 20.
포천...어룡리 석조여래입상 선광사 주차장에서 20여분 산길을 오르면 된다. 어둠이 길가에 내려 앉고 있어 널부르진 산밤을 주울 여유를 부릴 수도 없었다. 석불입상은 어룡동 왕방산 남쪽 자락의 사적이 전하지 않은 폐사지 북쪽 보호각에 봉안되어 있다. 왕방산, 어룡? 심상치 않은 지명이다. 왕방산은 신라 872년(.. 2015. 10. 20.
포천...구읍리 관음보살입상 구읍리 용화사 저간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스님은 언짢은 표정이 역력한 얼굴과 말투로 맞이한다. 정중히 예를 갖추고 말씀드려렸더니 들어오라고 하셨다. 돌아 나오는 길 동행인은 기다리고 있건만 미륵불의 내력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답사객들의 자세도 돌이켜 보야하는 말씀.. 2015. 10. 19.
포천...구읍리 석불입상 오늘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역시 향교는 문이 닫혀져 까치발로 담장 너머를 기웃기웃 거려야 했다. 전학후묘 배치의 포천향교는 고려 후기 1173년(명종 3)에 창건되었으며 임란에 병화를 입어 1594년 중건하였다. 그 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에 피해를 입어 1962년 중수하였고, 1983년 대성전.. 2015. 10. 16.
포천...흥룡사 부도 동선에 제외되었던 흥룡사 입구 부도전. 동행인의 배려로 들렸다. 봉선사 말사인 흥룡사는 1706년 백운산 내원사 사적, 1786년 백운사 중수기, 1927년 봉선 본말사지에 등재된 자료에 의하면 통일신라 후기 도산국사가 창건한 내원사였고, 고려 시대에 왕건의이 비보사찰로 지정하였다고 한.. 2015. 10. 15.
포천...성동리 석불좌상 영중면 성동리.석불 진입로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이제 머언 옛이야기로 남아 있는 황금들판, 가정실습, 메뚜기 잡이...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농경시대의 정겹던 숱한 낱말, 농경도구는 국어사전과 민속박물관에만 남아 있다. 무논, 고논, 두레, 품, 추수, 쟁기, 이랑, 섶..... 2015.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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