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안동시 118

안동...안동대 박물관(실내)

안동대학교 박물관 실외 전시장석탑. 석등. 비석. 석불. 승탑. 태함 등 다양한 불교문화유적이 전시된 공간으로 여러 번 답사하였습니다.https://12977705.tistory.com/8726765https://12977705.tistory.com/8726766 오늘은 세계유산 봉정사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였으며, 안동대 박물관 실내는 처음 들렸습니다.마침 경북의 불교문화유산 전시회가 오늘부터 열려 전시된 유물이 안동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인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석탑 기단중석 부재. 통일신라2008년에는 야외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신장상 미륵보살상?범종. 조선시대용뉴. 천판. 상대종신종견의 범자문, 화문연곽, 연뢰, 보살입상보살입상석탑 옥개석한글 편지. 1692년안동 광흥사 신민..

안동...근대역사 사진전

전시된 사진 대부분은 1909년 안동에 설치된 선교부에 부임한 오월번 선교사, 안변암 선교사가 보관하고 있던 자료라고 합니다. 포토겔러리 유안사랑에 전시된 사진 중 일부 사진 올립니다. 전시기간: 2024.10.21~10.31낙동강. 1910년대낙동강을 건너는 가마. 1910년대남쪽으로 바라본 법룡사와 영호루. 1910년대삼베를 삼는 여인. 1920년대다듬이 질. 1910년대땔감을 파는 아이. 1910년대제비원 석불. 삼층석탑. 1910년대평화동 삼층석탑. 1910년대영호루. 1910년대동호회. 월곡 님 사진서악사에서 바라본 안동시내. 1920년대안동 읍내. 1910년대1910년대달걀 줄을 들고 있는 아이. 1910년대부부. 1910년대연자방아. 1910년대디딜방아. 1910년대톱질. 1910년대1911..

안동...안동 시립박물관 특별전(팔금강탱)

팔금강탱. 안동시립박물관 소장. 조선 팔금강도는 사찰에서 도량장엄번이라고 분류되는 의식을 행할 때 재(齋)의 시작에 앞서 도량에 청하던 외호신중(外護神衆)을 그린 불화입니다. 서산 개심사의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 불화는 1772년에 제작되었으며, 현존하는 탱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탱은 1736년에 조성된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의 팔금강탱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전시된 팔금강도는 화기가 없어 봉안되었던 사찰, 금어 등은 알 수 없으나 조성연대는 조선시대로 추정합니다. 청제재금강(靑除災金剛)중생의 전생 재앙을 없애준다고 합니다.황수구금강(黃隨求金剛)모든 공덕을 주재하여 소망을 성취시켜 준다고 합니다.적성화금강(赤聲火金剛)부처님을 보면 몸에서 빛을 내고 바람처럼 달려간다고 합니다자현신금강(紫賢神金剛)굳..

안동...안동시립박물관 특별전(불교 문화)

안동시립박물관에서 처음 열리는 불교문화 기획 특별전이라고 합니다. 안동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https://12977705.tistory.com/8727114제비원 석불 사진https://12977705.tistory.com/8727715용수사 금호비 모형https://12977705.tistory.com/8724230 봉정사 금혈비https://12977705.tistory.com/8726764우리나라 사찰 금혈비. 금호비https://cafe.daum.net/moonhawje/MebK/334전패(殿牌). 조선안동 광흥사 청동향로. 조선광흥사 금고. 조선이 동종도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 보았었다.표면에 금강상은 사진 오류?봉서사 임오년명 금구. 1822년https://12977705.tistory.com..

안동...중대사지 승탑(부도)

보문산 중대사지(中臺寺址)안동에 거주하는 이철숙 님이 중대사지에 승탑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탐문 끝에 위치를 파악하여 함께 동행하였습니다.답사를 즐기는 사람들도 하회마을 충효당 앞 석탑이 중대사지에서 옮겨온 탑이라는 사실은 알고있겠지만 중대사지 답사 경험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중대사 창건과 폐사 시기는 정확히 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회마을 충효당에 있는 삼층석탑이 고려시대에 세운 탑이며, 조선 시대 초기 학조대사가 출가한 절이라는 자료와  서애, 청음 선생이 중대사에 들렸던 글이 전합니다. 또한 대원사에 소장 중인 후불도를 비롯하여 불화 2점 화기에 1830년에 중대사에서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불교신문에는 1950년 한국 전쟁 때 전화를 이어 폐사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현재 중..

안동...서미리 삼층석탑

목석거 유허비 답사 후중대사지 승탑을 찾아갑니다. 참이곳은 개인 사유지로 주인의 허락을 받고 출입해야 합니다.삼층석탑허락을 받고 과수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묘비, 동자석, 문인석을 살펴보던 중에 완전한 형태의 삼층석탑을 만났습니다.상륜부는 후보가 분명해 보이지만 고식의 탑 느낌이 들었습니다.현존하는 이 장소가 의문스러웠지만,기단부탑신부옥개석 모서리 홈옥개석 모서리 홈불현듯 스쳐가는 탑이 있었습니다.옥개석 층급받침노반석을 제외한 상륜부는 후보가 분명해 보입니다.중대사지 승탑 답사 후 머리에 떠올랐던 탑을 확인하기 위해 특정 장소로 달려갔습니다.그런데, 탑이 없었습니다.재사 옆 사찰 스님께 물었더니 어딘지는 모르지만 반출된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키 작은 소나무와 은행나무 뒤쪽에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이..

안동...목석거 유허비

서미리청음 김상헌(1570~1652)이 병자호란 후 이곳으로 낙향하여 청나라로 끌려가기 전까지 머물렀던 마을입니다. 처음에는 인근 소산마을 청원루에 지냈으나 이곳으로 옮겨 초가삼간을 지어 목석거라 이름 짓고 은둔하였다고 합니다.서미리는 아름다울 미(美)였는데 청음이 백의, 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은 것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하여 고사리 미(薇)로 고쳐 서미리(西薇里)가 되었다고 전합니다.마을 앞 성황목입석청음 선생의 유허비, 중대사지 승탑 답사 목적이었는데, 서애 선생도 이곳에 거쳐하였다는 안내문이 보입니다.즉, 서미리는 학가산 자락 작은 산촌이지만  서애와 청음 두 정승이 거처했던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마을 안쪽 성황목마을 앞처럼 입석이 있습니다.중대바위서간사 강린당청음(淸陰) 김상..

안동...구담리 구담(九潭)

풍천면 구담리 구담 순천김씨와 광산김씨 집성촌으로 낙동강의 흐름에 의해 생긴 아홉 개의 담(潭) 있어 구담(九潭)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서 전하는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에는 가난하여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지만 한 번도 남의 것을 탐낸 적이 없는 마음씨 착한 노인이 장성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 부자는 농사 지을 땅이 없어 남의 집 머슴으로 근근히 삶을 꾸려 나갔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닥쳐 그 해 농사는 이미 수확할 곡물이 없어 망치게 되어 모든 마을 사람들이 가뭄이 들어도 논에 물을 풀 수 있는 우물을 파기로 결정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파면 물이 나올 것이라는 장소 일곱 곳을 정하여 파내려 갔지만 어느 곳에서도 물은 솟지 않고 오히려 웅덩이를 파다가 그만 착한 아들이 흙더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