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부여군 55

부여...부여 객사 석탑부재

부여 객사부여읍 부소로 15. 충남 유형문화유산"1869년 건립되었고, 1880년 중수되었다. 일제 강점기 보통학교 교사, 부여고적보존회 진열실, 조선총독부박물관 부여분관 진열실 등으로 이용되었다. 광복 후에는 국립부여박물관의 유물전시실로 사용하다가 1985년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중수되었다. 『여지도서』에는 22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단부는 백제시대 석조물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백제 시대 장대석과 면석으로 축조한 기단 위에 역시 백제 시대 주춧돌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각각 3칸*2칸의 정랑, 양익실, 정랑은 맞배, 양익랑은 팔작지붕, 마루와 안쪽으로 방이 있습니다.객사가 어떤 건물인지는 모두 아실 테고...정랑扶風館 현판이 걸렸습니다.동익랑서익랑익랑 측면우리나라의 객사https://caf..

부여...월명산 금지암

금지암.내산면 월명산길 487첫 인연으로 국가유산청에서 발간한 한국의 사찰문화재에 등재된 석조 독성상과 1919년에 조성된 아미타도를 비롯한 여러 점의 불화, 동호회 김현동 님과 꿈안개 님이 답사 후 포스팅한 석조보살좌상을 뵙기 위해 구절양장의 산길을 5 Km(?) 이상 올라온 느낌입니다. 금지암은 마곡사 말사이며 월명산 정상 부근에 있습니다." 절에 있는 우물에서 금리어(金鯉魚)가 나와서 ‘금지사(金池寺)’라 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그러나 금지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신경준의 『가람고(伽藍考)』, 『범우고(梵宇攷)』 등에는 모두 ‘금지암(金地菴)’으로 되어 있다. 1871년 주지였던 대성(大成)이 홍산의 지현(知縣)인 정기화의 도움으로 재산을 모아서 건물..

부여...무량사 승탑원(부도전)

사하촌에서 하룻밤을 묵고 일찍 승탑원을 찾았습니다. 무량사 승탑원2열로 9기 부도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8각 원당형 1기, 구형 3기, 석종형 4기, 석탑형(?) 1기로 김시습탑을 비롯하여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었습니다. 또한 근처에 옥개석 2개를 갖춘 능허당 처영 스님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습니다. 석탑형 승탑승탑원에 있지만 승탑 여부도 의문입니다.최소 2기 이상 부재 조합입니다.위 옥개석 2기는 2단 층급받침, 모서리 반전 급격, 절수구를 갖추었고, 부여 현내리 석탑형 부도, 경기도 안성 지방 석탑에 보이는 유형입니다. 경기도 안성 공원 석탑아래 2기 옥개석 5단 층급받침맨 아래 부재는 옥개석 아래 석탑 탑신석이 일석으로 고려시대에 등장하는 유형입니다. 옥개석과 같은 층 탑신석이 일석인 석탑..

부여...부여박물관 야외전시장

부여 박물관 후원 이미 해는 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시간. 2017년 이후 처음 들렸습니다.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3745 은진 미냇다리비(渼橋碑). 1731년 우리나라 옛다리와 비석 https://cafe.daum.net/moonhawje/MebK/333 대좌. 중대석 방형 기단석 옥개석 부여 부고리. 고려 석조여래좌상. 부여 구교리. 조선 후기 석조여래좌상. 고려 석조여래좌상 공주 청량사지. 고려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석조여래좌상 부여 왕흥사터. 통일신라 후기 석탑 부재 심초석 옥개석 옥개석 귀부 익살. 해학?은 차치하고 목이 무척이나 아프겠습니다. 문석인 이수. 쌍용 이수. 제액일까요? 무덤 둘레석? 십이지? 부여 박물관 입구 야외전시장은 익..

부여...대재각(부산 각서석)

대재각(大哉閣)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소산성 건너 부산자락 강가에 자리한 작은 전각에 큰 대(大)자를 붙힌 정자이며, 대재는 '상서((尙書)‘의 대재왕언(大哉王言, 크도다 왕의 말씀이여)에서 따와 대재각(大哉閣)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정자에는 힘이 느껴지는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으며 이름하여 부산 각서석(浮山刻書石)이라고 합니다. 부산 각서석 효종대왕 사 백강 이상국 비사 (孝宗大王 賜 白江 李相國 批辭) 효종이 영의정 백강 이경여가 올린 상소에 대한 답 지통재심 일모도원 (至痛在心 日暮途遠) 지극한 아픔은 마음에 있고,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머네 1650년 영의정 이경여가 올린 상소에 대하여 효종이 내린 답 '성이지통재심 유일모도원의(誠以至痛在心 有日暮途遠意)’에서 취하여..

부여...부산 서원, 부여 동매

부산 서원 대재각 초입 나무 앞에 설치된 문화재 설명문을 보고 차를 세웠더니 답사 동선에 포함하지 않았던 부여 동매와 서원이었습니다. 부산서원 "1719년(숙종 4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집(金集)과 이경여(李敬輿)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같은 해에 ‘부산(浮山)’이라고 사액되어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그 뒤 군수 정연달(鄭然達)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에 의해 1980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중앙의 신문 (神門)과 양쪽 협문(夾門)으로 된 삼문(三門) 등이 있으며, 사우에는 김집과 이경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9월 18일에향사를 지내고..

부여...명혜공주 태비. 임천 대교비. 벅수

정림사지 여러 번 방문한 분도 태실비를 주목하지 못했을 겁니다. 명혜 공주 明惠公主 현종의 둘째 딸로 태어나 혼약을 하였으나 가례를 올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공주입니다. 숙종의 누이동생이며, 경종, 영조의 고모입니다. 언니 명선 공주 明善公主도 가례를 올리지 못하고 요절하였으며, 현재까지 봉국사에서 두 공주의 추모제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세째 명안공주明安公主도 가례는 올렸으나 후사없이 요절한 비운을 맞습니다. 즉, 숙종에게는 3명의 누이가 있었으나 생질, 생질녀가 없습니다. 태실 명혜.명안공주의 태실은 부여 충화면 가화리 용골 구태봉에 있었다고 합니다. 여지도서 林川 陵寢. 胎峰 明惠公主 明安公主 胎室 在 大王 胎室 東二里許 東峰一岡 현종실록에도 두 공주의 태실이 같은 곳에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