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쨋날
테를지 국립공원 숙소-엘트 산 트레킹-게르(국립공원 조망지점)-징기스칸 기마상-울란바트로
주변 풍광과 짧은 소회
2024.08.30
아침 산책길에서 잡은 숙소 풍광
숙소 뒤편, 호텔 주변에는 철제펜스가 설치되어 있고, 출입구에도 바리케이트로 차단되어 산책길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침 산책은 숙소 뒤편 펜스 개구멍을 통해 테를지 국립공원의 모습을 잠시 눈에 담고 복귀했을 뿐입니다.
호텔에서 바라본 테를지 국립공원
숙소 뒤편 바위에도 독수리 바위, 상어 바위(?) 등등의 이름이 있었건만 입력 3초 만에 아웃 풋되는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적자생존에 충실해야했건만
여기서 적자생존은 '적는(기록하는) 놈이 살아남는다'라는 뜻입니다.
테를지 국립공원
몽골 여행의 이틀은 국립공원 주변을 둘러보는 일정이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 아침에 알아 두었던 개구멍을 통해 엘트산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엘트산 트레킹
붐비는 코스를 피해 2시간 여 소요되는 원점회귀를 선택한 것은 여행사와 가이드의 옳은 판단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몽골 여행에서 가장 멋진 장면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과문한 탓에
안타깝게도 고지대에 자생하는 들꽃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습니다.
어찌 이름 없는 들꽃이 있으리오?
물싸리?
에델바이스?
이제 침묵하렵니다.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바라보렵니다.
용담 종류?
물매화 계열?
기암괴석
초원. 자작나무 숲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많고
우리 일행이 온 산을 품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어워. 장승
빈대 편에서 올라온 관광객들은 여기를 목표로 원점회귀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워
우리나라 민속문화의 원형질과 흡사한 느낌입니다.
조산(造山). 돌무더기. 오방색...
그 상징도 동일하겠지요?
민초들의 터전(마을)을 지키려는 벽사(壁邪), 길상(吉祥). 풍농. 풍수 비보 등등
최근에는 돌무더기가 전쟁 발발 때에 유용한 무기로도 사용되었다는 글도 보았습니다.
첫날 엘승 사막 게르에서 보았던 상과 비슷합니다.
역시 동일 목적이겠지요
벅수. 장승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을 신앙의 전형입니다.
몽골반점뿐만 아니라 나쁜 기운을 차단하는 장승 얼굴이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해학적인 모습도 우리네 동구밖 벅수와 너무도 닮았습니다.
성주군 금수면 봉두리 동제바위와 장승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마주한 어워와 벅수(장승)
우리의 성황당. 즉 당신앙입니다.
장도(長途)의 안녕을 빌고 빌었던 우리네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가 빌고 빌었던 문화
마을 신앙의 중심이었던 그런 풍속이 우리나라에서는 시나브로 사라져 가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그건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잃어가는 것인데.
반대편 코스로 내려오는 길
여정(旅程)에 취하고 풍광에 빠진 대한민국 아줌마, 아저씨의 행렬이 대구 서문시장을 방불케했습니다.
그런 분위기도 역시 여행의 일미(一味)겠지요.
테를지 국립공원 전망대
변화에 아랑곳 않고 톨강은 굽이굽이 바이칼을 향해 흘러갑니다.
전망대 어워
본래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조산은 원추형인데 반해 폭이 넓습니다.
정상에도 봉우리를 상징하는 돌을 세우는 우리와 달리 나무를 세운 점도 차이가 있습니다.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의 조산(造山)
또한
우리의 조산(성황당)은 마을입구에 많이 남아 있지만, 본래는 장승 고개(고을과 고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고갯마루)에도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몽골 내부를 깊이 탐사할 수 없어 자신 못하지만 몽골에서는 주로 고갯마루(영마루)에에 모시는 것 같습니다. 즉, 우리와 같은 원형질(原形質)이기 때문입니다.
길
왜 온갖 상념이 스쳐가는지.
동쪽으로 향하는 저 길을 통해 고려를 침략하지는 않았는지.
길
이어지고 때론 끊어지고
휴전선 철책이 철거되는 날. 이곳까지 달려올 수 있겠지요.
그땐 한 잔 술에 취해 허우적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어도 좋으련만.
징기스칸 기마상
2006년 몽골제국 800주년 기념을 기념하여 몽골의 재벌 젠코(Genco)에서 건립을 시작하여, 2010년 완공되었다. 고 합니다. 칸의 고향 땅을 바라보고 있으며 세계최대라고 가이드는 부연하였습니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은 나만의 느낌?
징기스칸(1206년 봄 ~ 1227년 8월 18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1k0376b
몽고 침략
몽고는 총 6차례 고려를 침략하여 1세기 동안 고려를 지배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화도 환도, 삼별초, 대구 부인사 초조대장경 소실, 경주 황룡사 구층탑 소실, 팔만대장경 조성 등이 이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소위 몽골풍으로 알려진 몽골 문화의 유입을 비롯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안목이 짧아 다음 백과사전으로 대신합니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7m4328a
신발
전시장 1층
지하 전시장
원나라의 청화백자가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지하전시장 청화백자
대접 중앙 천마문양은 경주 천마총 천마를 모방?
ㅎㅎ
제가
젊은 날에 도동서원 기단을 보고 겁없이 썰을 풀어재낀 적이 있었거든요
"미술학도 눈에는 몬들리안의 추상화(?)로 보이고, 민속학자 눈에는 헝겊을 짜집기한 보자기로 보인다지만 궁궐을 제외한 건물들의 기단 장대석은 2 벌대 이상으로 하지 못하기에 장대석을 사용하지 않고 높이를 높이기 위해 변칙으로 조성했겠지만 장인의 정성이 가득 스며 나온다. 어째든 몬들리안은 우리에게 한푼의 로얄티도 내지 않고 우리 보자기를 도용하여 그의 그림을 그렸다고 나는 확실히 주장한다..
이런 예는 또 있다.
나이키의 로고를 생각해 보라?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 현무를 도용한 것이 분명하고,
코카콜라 병은 여인의 몸매를 모방했다지만 천만에 그건 참외문양 고려청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미륵반가유상을 리모델링 한 것이 분명하다?"
어라?
이야기가 오기나와로 빠졌꾼!!!!!
지하전시장. 백자 동화(진사) 용화문병. 원나라
국립중앙박물관 진사백자를 닮은 것 같았습니다.
백자 동화(진사) 매국문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백자로 추정하고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4세기 원나라 작품으로 밝혀져 2020년(?)국보지정 해제됨
징기스칸 동상이 바라보고 있는 있는 동쪽
저 길을 통해서 원나라 군대는 고려를 침공했겠지요.
교통 체증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여. 자이승 기념관(푸틴 러시아 총리 순방 준비로 들리지 못함), 몽골의 허준으로 불리는 대암 이태준 기념관은 인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지난밤에 먹은 양고기 허르헉 소화 장애로 인하여 몽골에서의 마지막 밤의 향연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름 모를 야생화, 기암괴석과 어울린 자작나무 숲,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 어워와 장승과 함께한 엘트산 트레킹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202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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