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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장흥군39

장흥...천관산 수정재. 수정암지 승탑 수정재水晶齋 얼마 전 청도 적천사 3승탑원 답사 후 감히 우리나라의 알려진 일제강점기 이전 승탑은 모두 답사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더니 송광사 박물관 김태형 님이 장흥 천관산에 1기가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위치를 알게 되었고 지리산마천면사 발간 기념식 다음날 새벽길을 달려왔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침 천관사 앞에서 기다리던 이경호 님과 인천 이 씨 문중어른의 안내로 수정재와 승탑을 답사하였습니다. 수정재水晶齋, 이우의 묘각 "李 遇(인천人 20세, 1541~1625)는 장흥 남면파의 파조(派祖)이며 관직은 승의부위(承義副尉 정8품) 좌군사직(左軍司直)이다. 승의부위공 우(遇)는 아들 4분을 두었다. 첫째는 한동(漢仝)으로 용산면 어서마을 태생이 후손들이다. 둘째는 경동(.. 2023. 6. 20.
장흥...회령진성 회령포진성(會寧鎭城) 회령진성(會寧鎭城)은 성종 21년(1490) 4월에 축조된 만호진성(萬戶鎭城)으로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수군진(水軍鎭)입니다. 마을 뒷산에 축성하였으며 현재는 연륙되어 있는 덕도와 노력도, 대마도, 대・소대구도 등의 섬들이 외호(外護)하고 있으며, 남아 있는 성벽의 총 길이는 616m라고 합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회령포진은 전라좌도도만호진(全羅左道都萬戶鎭)인 여도 관하에 내예, 돌산, 축두, 녹도, 마두, 달량, 어란 등과 함께 만호가 배치되어 중선 4척, 별선 4척군 472명, 뱃사공 4명이 주둔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방어와 수색을 위하여 수군첨절제사나 수군만호들은 항상 병선을 이끌고 해상을 왕래하였고 병선이 머무르는 곳으로 .. 2021. 10. 17.
장흥 ...방촌리 삼층석탑 탑동 삼층석탑 탑동 절터에 있었던 석탑을 일제강점기에 관산초교로 옮겼으나, 이후 마을에 흉년이 들고 민심이 흉흉하여 , 마을 앞 들판으로 다시 이건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경작에 어려움이 있어 도로변으로 옮긴 후 1992년 5월 탑신석 1기만 남기고 도난당했으며, 2008년 주민들이 복원하였습니다 사정고탑(射亭古塔) 탑동 삼층석탑을 사정고탑으로 부르는 것은 1747년 발간된 장흥 읍지에 "사정고탑은 방촌 서쪽 밭 가운데에 있다"라고 실려 있으며, 활을 쏘는 장소이어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존하는 탑신석으로 미루어 판단하면 복원된 석탑은 본래 삼층에 비해 작게 세웠습니다 탑신석 초층 탑신석으로 추정되며, 특별한 장식 없이 우주를 모각하였고, 일석(一石)입니다 탑동 삼층석탑 천관산 주변에는 89개 .. 2021. 10. 17.
장흥...천관산 천관사 강산이 한 바뀌 돌고 다시 찾아들었습니다. 첫 인연 이후에도 여러 번 아주 여러번 산아래 관산읍을 답사, 통과했지만 여유롭지 못한 답사 동선으로 건너뛰었습니다. 대웅전, 입구의 장승을 제외하고는 추억 속의 그 모습 그대로인데 한승원 작가(이제는 딸 한강이 더 유명 인사인가?)의 60년대 천관사를 묘사한 글이 아른아른 스쳐갑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아홉살이던 해의 겨울. 그 무렵 문학병이 들어 있던 나는 핫바지에 털점퍼를 걸치고 천관사를 찾아갔다. 그 절 분위기가 마음에 들면 한달쯤 머무르면서 소설을 좀 써볼까 하고. 그 무렵 나는 나를 어디엔가 가두어놓고 부리고 싶었다. 자기를 가두고 마음대로 부린다는 것은 자기의 확실한 주인노릇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열정이 지나치게 많으면서도 스스로의 재능과 운명.. 2021. 10. 16.
장흥...구룡리 마애여래좌상 구룡리 마애여래좌상 2009년 형체도 뵙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돌아섰던 님입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2981?category=5207 기도터 수미사를 뒤돌아 마애불이 새겨진 병풍바위 아래에 원감국사가 수행하였던 동굴이 있습니다. 병풍바위는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 무른 사암 느낌입니다 조계산 송광사사고(曹溪山松廣寺史庫)의 원감국사일적(圓鑑國師逸蹟)에 따르면 마애불은 송광사 6대 국사인 원감국사 충지(沖止)의 상(像)으로 전합니다. 원감국사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8232 원감국사 승탑(순천 송광사) 원감국사 탑비(순천 송광사) 구룡리 마애여래좌상 운 좋게도 햇볕에 반사되어 윤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발, .. 2021. 10. 15.
장흥...부사 김재헌 철비 안양면 해창리 113번지 한적한 어촌 마을에 철비와 석비가 유존하는 까닭은? 해창리 海倉里 조선 중엽 세곡을 수집하여 선박으로 수송한 큰 항구이었습니다. 해창은 장흥의 삼창(사창.남창.해창) 중 하나로,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에서 지명이 유래하였으며, 비는 해창 또는 세곡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사 김 공 재헌 영세불망비 府使 金 公 在獻 永世不忘碑 동치 삼년 同治 三年 1864년 김재헌 金在獻 평택시사에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으며,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864년 1월 15일까지 장흥부사를 역임하였습니다. 평택시 史 김재헌 金在献(1799∼1882)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문징文徵이다. 1831년 진사를 시작으로 1834년 영춘현감永春縣監, 1851년 금성현령金城縣令, 1857년 금.. 2020. 7. 19.
장흥...면장 안형중 철비 장동면 북교리 5-8 마을회관 맞은편 민가(?)에 여러 석비와 함께 있습니다. 코로나 19 여파로 폐쇄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어 까치발로 바라보았습니다. 면장 안형중 시혜기념비 面長 安衡中 施惠紀念碑 재위 기간 1924년~1926년 면장 안형중 시혜기념비 面長 安衡中 施惠紀念碑 1926 비수 만(卍)자 문양은 벽사의 상징입니다. 빨간색으로 도색한 것도 역시 동일한 의미입니다. 역위성덕 易謂成德 덕을 베풀고도 알리지 않고 체립용달 體立用達 체(體)가 서고 용(用)을 행하였으며(현장을 두루 살피고?) 수직이래 受職以來 면장으로 부임한 이래 만심측항 滿心惻恒 민심을 파악하고 연기제중 捐己濟衆 사재를 출연하여 주민을 구했다 함구칭송 咸口稱誦 칭송하지 않고 함구할 수 없어 유경각철 惟輕刻鐵 미약하나마 철에 새겨 .. 2020. 3. 29.
장흥...참봉 위계상 철비 암천 마을. 유치면 대천리 550-33번지 마을 끝 전각 안에 있습니다. 위계성 철비, 숙부인 청주 김씨 창선비 통정대부 전 참봉 위 공 계성 시혜불망비(通政大夫 前 參奉 魏 公 啓性 施惠不忘碑) 1916년 아래 목포대학교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철비는 장흥댐 건설로 단산마을에서 현 위치로 옮겨 온 듯합니다. 또한, 위계성의 세금 대납, 구휼 시혜는 1913년, 철비는 1916년에 세웠으며, 비각은 1923년에 건립하였습니다. 옆에 있는 숙부인 석비는 위계성의 부인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위계성이 대납해준 70여 가구의 연부 월세(烟賦月稅)는 담배에 부과된 세금인가요? 장흥군 탐진댐 수몰지역 문화유적지표조사 보고서 1998년. 02~08월 목포대학교 魏啓性施惠碑閣 및 碑文 · 위치 : 有治面 丹.. 2020. 3. 28.
장흥...용화사 석조약사여래좌상 어느해 비 온 후 진흙탕이 되어 발길돌렸었고 두번째 답사 때 뵙고 전률을 느꼈던 님이시다. 오늘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바였구나 스타일리스트이셨고. 육감적인 입술 후보했지만 삼도가 아닌 이도이다. 화불 자리에 연곷이 만개하였고. 아~! 연꽃줄기에 꽃을 피웠구나. 그런 님이.. 2018. 11. 28.
장흥...고산사 석불입상 햇수로 10년만에 방문 그사이 무슨일이 있었는지? 고산사는 폐사에 가까웠다. 긴 수염의 스님이 뵙고 싶었는데... 간략화된 삼도 장흥, 보성의 특징? 법의 속의 두 손 들린 옷자락 표현이 눈에 들어 왔다. 어떤 질문에도 웃음으로 답하셨던 노스님이 몹시도 보고픈 날이었다. 2018.11.17 아래.. 2018. 11. 28.
장흥...축내리 삼층석탑 옛답사에서 미쳐 확인하지 못했던 초층 탑신의 문비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 하지 않았던가! 문비 재실 정문 담장 옆쪽에서 보인다. 2018.11.17 원도리 석불입상을 찾아 장흥교도소 근처는 물론이고 경비병의 양해를 구하여 정원까지 살폈으나 행방이 묘연하다. 돌아와 자료 검.. 2018. 11. 27.
장흥...등촌리 삼층석탑 아래 옛글로 대신한다 2018.11.17 등촌리 석탑. 비지정 문화재에 누구 한 사람 관심을 가지겠는가? 장평초등학교를 목적지로 하여 건너편 들판에 있다는 정보가 전부였다. 이정표도 문화재 안내문도 여타 지방처럼 기대하지도 않았다. 진입로도 없다. 논두렁으로 들어가는 길 농부의 고함소.. 2018.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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