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55

인천...약사사 칠층석탑

약사사. 남동구 풀무로 48 약사사. 대한불교화엄종의 본산"1932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던 보월스님이 우연히 이곳 만월산을 지나게 되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동서남북이 한눈에 다 보이고, 산세가 팔을 뻗어 시가지를 감싸 안은 듯한 모양이 예사롭지 않아 그 이듬해 이곳에 작은 암자를 짓게 하고 약사암이라 명명하였다. 지금의 약사사보다 조금 더 산 위쪽이었는데, 일반 대중에게 부처님의 설법이 좀 더 쉽게 다가가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보월스님은 그 뒤 금강산으로 돌아갔고, 그를 이어 인천 해광사에서 수도 중이던 한능해 스님이 이곳을 지켰다. 그는 1960년대 들어 지금 위치에 대웅전 등을 짓고, 약사암을 약사사로 높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 약사사에는 대웅보전, 극락전, 약사전, 칠성각, 산신..

옹진...통일사 석불입상

산행객의 등산기에 석불입상과 일제강점기로 추정되는 석탑 사진을 보고 찾았습니다. 통일사한국전쟁 때 전사한 남편의 넋을 기리기 위해 비구니 최선규 스님이 1983년 창건하였습니다. 불두를 복원한 석불입상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문인석 느낌입니다.문화유산청 자료에는 조선시대에 조성한 석인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일반적인 팔작지붕과 달리 추녀마루가 긴 편입니다.불단오층석탑일제강점기 석탑인 줄 알고 찾았는데 현대작입니다.석불입상이 아니었고, 일제강점기 석탑도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옹진군은 첫 답사이었습니다. 2024.08.08

인천...대한민국 수준원점(水準原點)

수준원점"국토의 높이를 정하는 기준점이며, 이를 이용하여 전국의 국가기준점이 결정됩니다. 수준원점과 국가기준점은 국토개발, 지구 과학 분야의 연구 등에서 높이 추정의 가준 점으로 사용됩니다. 수준 원점은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인천 앞바다의 바닷물 평균 높이(평균 해수면)를 관측하여 인천 중구에 설치하였습니다. 이후 도시개발 등을 이유로 기존 수준 원점 (5,477m)에서부터 정밀하게 측량하여 1963년 12 수준원점(26.6871m)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안내문) 즉 수준원점(26.6871m)은 인천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이 지점까지의 높이를 나타냅니다.위 현장 안내문과 다음백과사전에는 관측년도가 서로 다릅니다."평균해수면은 일종의 가상면으로, 수준 측량에 직접 사용할 수 없으므로 평균..

인천...해광사 칠층석탑

해광사1908년 일본 조동종 계열의 화엄사로 창건되었다고 합니다.창건 당시에는 일본 본원사에서 가져온 석가여래를 본존불로 봉안하였으며, 1994년 현재 대웅전을 건립하면서 화엄사 대웅전은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두산백과사전에는 대한불교화엄종 종파 사찰로 검색됩니다" 한국 불교 26개 종단의 하나이다. 제1대 종정(宗正)인 한능해대종이 1920년 인천 만월산(滿月山)에 약사사(藥師寺)를 창건하고, 인천 신흥동(新興洞)에 있던 일본인의 사원을 인수하여 해광사(海光寺)라 칭하고, 이 두 절의 주지를 겸임하면서 1965년 10월 대한불교화엄종을 창종(創宗)하고, 1966년 6월 불교재산관리법에 따라 불교단체 등록을 함으로써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종지(宗旨)는 대승불교의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하여 중생을 교화하고,..

인천...부용사(암) 칠층석탑

부용사(암).미추홀구 수봉북로 341930년 승려 만성이 지은 작은 암자로 출발하여  한국전쟁 이후 인천시민 128명의 시주로 창건된 비구니 도량입니다.일제강점기의 전형적인 칠층석탑입니다.칠층석탑은 대웅전 앞이 아니라 응진전 전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1958년 응진전 건축 때 다른 곳에서 옮겨온 탑으로 추정됩니다. 인천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던 까닭으로 일본 석탑이 다수 남아 있습니다. 그 많았던 88 야불은 한 분도 계시지 않은데.우리나라 일제강점기 석탑https://cafe.daum.net/moonhawje/MebK/262응진전. 1958년2023년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재로 지정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 전면 겹처마. 후면 홑처마. 풍판을 걸었습니다.교창과 유리 여닫이문은 ..

인천..부평도호부 관아

비림부평부사를 비롯한 관리들의 선정비군부평도호부 관아부평초등학교 교정 모퉁이에 있는 옛 부평도호부 관아 건물이다. 부평도호부관아는 숙종 3년(167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세워진 내력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 의종 4년(1150)에 안남도호부로, 고종 2년(1215)에 계양도호부로,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부평부가 부평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부평도호부로 승격이 되면서 관아 건립에 착수하여 약 5년 후(태종 18년, 1418)에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부평부 읍지》에 의하면 부평도호부 내에는 동헌 외에 객사·동서 삼문·근민당(近民堂)·좌우 익랑·사령청·향청·포도청·훈무당·부창 등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아 규모는 인천도호부를 능가..

인천...계산동 은행나무

부평초등학교 교정수령 500년, 600년이 지난 두 그루 은행나무가 있습니다.사진 좌측 나무는 은행이 열린 암나무이며, 오른쪽은 숫나무입니다.계산동 은행나무수령 500년 이상 추정. 높이 25미터. 둘레 10미터1992년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부평도호부 관아에 심었던 나무입니다.부평초교 교실 앞수령 600년, 높이 20미터, 둘레 6미터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부평도호부라는 설명은 없지만 암나무와 더불어 도호부에 있었던 나무로 추정됩니다.사진 좌측 뒤편에 부평도호부 관아 건물과 비석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두 그루 은행나무는 부평초교 정문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으며, 초등학교에서 부평도호부로 출입하는 길은 없습니다.그런데왜 수령 500년 나무는 기념물이며, 600년 나무는 보호수일까요? 2024..

강화...흥왕리사지(2) 석탑부재

흥왕사지기존 국가유산청 발간 한국의 사지에는 흥왕사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동일기관의 2023년 학술조사보고사는 흥왕사지를 흥왕리사지(1)로, 오늘 방문한 사지는 흥왕리사지(2)로 기록하여 혼란스럽습니다. 이 글에서는 오늘 답사한 사지는 흥왕리사지(2)로 2016년 답사한 사지는 흥왕사지로 표기하겠습니다. 흥왕사지(2016년).https://12977705.tistory.com/8725213흥왕사지 석탑부재 흥왕리사지(2)는 흥왕사지를 거쳐서 가야 합니다.  흥왕리사지(2)금년초 우리 카페 최석훈 님이 포스팅한 절터입니다. 국가유산청 홈페이지의 강화 마니산 학술조사보고서 자료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답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거의 처녀지나 다름없는 사지입니다. 그 절터를 찜통더위를 뚫고 샘물처..

강화...사기리 탱자나무

사기리(沙器里) 탱자나무 화도면 사기리 135-10번지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니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문화유산청 홈페이지에는 기록을 살펴보면400년 수령, 원나라의 고려 침공 때 성 주위에 심었던 나무, 탱자나무의 북방 한계선에 자라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강화 사기리 탱자나무의 나이는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3.56m, 뿌리 부분 둘레 2.2m이다. 가지의 굵기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컸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재 대부분 가지가 죽고 동쪽 가지만 살아 있다.강화도는..

강화...고려산 백련사

백련사기억의 오류?왜 답사했었다고 생각했을까요?아니왜 그렇게 수 차례 강화 답사를 하면서도 동선에 포함시키지 않았을까요?아마도고려시대에 조성되어 보물로 지정된 후 도난된 철조여래좌상 외에는 특별한 옛님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그런 연유로 백련사와 흥왕리 사지(2), 강화역사박물관 일제강점기 석불과 더불어 이번 강화도 답사의 주목적의 하나이었습니다.철조여래좌상(출처. 문화재청)극락전1905년에 세운 절집에서는 흔치 않은 ㄱ字 건물입니다.원래는 관음전이었으나 1986년 극락전으로 현판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백련사 창건설화"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천축스님이 고려산 꼭대기에서 오련지五蓮池를 발견하고 다섯 송이의 연꽃을 날려  연꽃이 떨어진 장소에 절을 세웠는데, 하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