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논산시 36

논산...김수남 정려. 충노 무작금 비

김수남 정려.연무읍 왕릉로 175-35 "김수남(金秀南, 1576~1636)은 광산김씨로, 자는 여일(汝一), 호는 만치당(萬痴堂)이며, 사계 김장생의 문인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은진현 충신조에 의하면, 김수남은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이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호종한 이후 적군이 침입할 즈음 김상용과 더불어 남루에서 함께 분사(焚死)하였다고 하여 효종대에 승지로 추증되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와 연무의 금곡사(金谷祠) 단소(壇所)에 제향 되었다. 김수남 정려는 1681년(숙종 7)에 내려졌다."정려문 忠臣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成均館事五衛都摠府都摠管行通訓大夫刑曹正郞兼春秋館記注官金秀南之閭 崇禎 辛酉..

논산...충노 영상.귀상 비

백봉 이민진 정려각논산면 청동리 97-9. 논산 향토문화유산백봉 이민진 정려비"이민진은 본관이 가평, 자는 자선(子善), 호는 백봉(白峯)이다. 나이 29세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기 이르자, 이민진은 의병 3천을 모아 연산현감 김홍익과 함께 전장에 나갔다. 출전 당시 죽기를 맹세하고 검은 행전과 버선을 신고 나갔다고 한다. 광주 험천 지방에 이르러 적을 만나 맹렬히 싸웠으나 이민진은 전사하고 말았다. 죽은 뒤 노비 영상과 귀상이 전쟁터에서 검은 행전을 보고 이민진의 시신을 찾아내 돌아오니 인조 15년(1638) 선약장군 훈련원판관에 증직 되고, 순조 33년(1638)에는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영경연참찬관에 증직 되었다. 1834년에 정려를 받고, 충곡서원에 배향되었다. "(논..

논산...개태사지 석조공양보살상. 개태사지 석조

또 다른 모습의 보살님을 뵈었습니다 옛글로 대신합니다. https://cafe.daum.net/_c21_/bbs_nsread?grpid=dRVf&fldid=DjZP&contentval=000su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3404&searchlist_uri=%2F_c21_%2Fcafesearch&search_ctx=LrpNuZSucOsx.YncUoV2ej_tRpHqkOL1hFNwnK7pMwx2pUU9oYvq-CADq-lzJK_pvUKb7yb4c6zjTiqtpKnSCHEg_oRl7Tz79DVkFIB9q.z9GavCQnTmxGbKtu4ysG3O5wK_yUKoC7rvN.Sn8lOF1w9tQLMOjEt-fs4rHFVuiN84hT9pGeNOxv6TDSU_Y17NRsPzWEsLimU..

논산...옥녀봉 해조문 마애비

옥녀봉 강경읍 북옥리에 자리한 낮은 야산입니다 봉우리가 수려하고 봉우리가 선녀기 앉아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옥녀봉이라고 부릅니다. 옥녀봉은 논간 8경의 하나로 현재는 복원된 송재정과 봉수대가 있으며, 강경 읍내, 금강이 눈 아래에 펼쳐집니다. 정자 아래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회 예배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옛날 옥녀봉 산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아주 맑았고, 산은 숲으로 우거져 있었으며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들이 있어 경치가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때문에 옥녀봉은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다음) 봉수대 옥녀봉 봉수대는 익산 광두원산의 봉수를 받아 황화산성, 노성봉수로 연락을 취하..

논산...팔괘정, 암각문

금강 팔괘정 뒤편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 1663년(현종 4) 우암 송시열이 스승인 김장생이 임리정을 짓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을 가까운 곳에서 모시고 싶어 팔괘정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1695년(숙종 21) 송시열이 죽림서원에 배향되자 죽림서원 부속 건물이 되었으며, 1949년 송시열의 본손인 송재성(宋在晟)이 유림의 협조로 중수하였다고 전합니다. 정측면 3칸*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입니다 2칸은 마루를 깔고, 1칸은 온돌이며, 정, 측면에는 쪽마루를 걸었습니다 문이 잠겨 내부를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후면 측면 夢挂壁(몽괘벽) 팔괘정 옆 바위에 새겨진 우암 송시열 글씨, 우암이 팔괘정에 걸린 글씨를 꿈속에서 보고 새긴 글씨라고 합니다 靑草岸(청초안) 우암 송시열 글씨. 저는 놓쳤지만 죽림서원과 사..

논산...장뚝골 벅수

성동면 원북리 장뚝골 마을 지세가 여자의 옥문(玉門)과 같아서 남자들이 바람을 많이 피웠다고 합니다. 어느 날 스님의 조언으로 사람의 형상을 한 돌을 만들어서 제(祭)를 올렸더니, 그 이후로는 남자들의 행실이 착실해지고 마을에 평안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즉, 음기 비보 목적으로 동리 입구에 장군석 2기를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장군석 2기를 조성하였으나, 경지정리와 새마을 운동 와중에 사라졌으며, 다시 주민들이 1기를 찾아 세우고 반대편에는 입석 모양의 자연석을 모셨다고 합니다. 사전에 입석 형태의 벅수도 인지하였으나 무엇에 홀리듯 찾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장뚝골 장승제 "음력 정월 14일 장군석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장뚝골 장승제는 해방 이전에 중단된 마을 제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