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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573

장성...박산리 미륵불(석불입상) 호암사 적막강산이었습니다. 법당문을 열었더니 불단도 없어지고 미륵불만 홀로 계셨습니다. 홀로 법당을 지키고 계십니다. 2009년에는 개금 된 상태이었으며, 불단이 있었습니다.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1211 소발, 뾰족한 육계, 중간계주, 긴 귀 왕방울 눈, 뭉툭한 코, 삼도가 뚜렷합니다. 불신을 대좌 촉공에 끼운 것 같습니다. 대의, 수인 등은 육안 식별이 어렵고, 불신에 비해 상호가 큽니다. 예전에 뵙지 못했던(기억 오류?) 두 기 석불(?)이 비닐에 덮여 있었습니다. 호분을 입혀 본래 모습을 잃었습니다. 두 불상은 어디로 만행을 떠날지... 이마에 卍字 문양 두 손에 지물을 들고 있는 석불은 처음 접합니다. 하반신을 지나치게 낮게 조성했습니다 민불일까요? .. 2023. 11. 13.
장성...원덕리 미륵석불(석불 입상) 문화재 지정 명칭이 원덕리 미륵석불입니다. 당연히 석불입상인 줄 알았는데. 2009년 글로 대신하며 사진 몇 장 올립니다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1209 석주형으로 천개, 상반신, 하반신이 각각 다른 부재로 조성되었습니다. 팔각 천개는 석등 옥개석처럼 보입니다. 전각의 반전이 크며, 1개의 풍탁공이 있습니다. 보관 하부에는 절수구가 있습니다. 보관의 화문이 나발 느낌입니다. 상호에 비해 귀는 작게 묘사되었습니다. 석장승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왕방울 눈, 뭉툭한 코. 두터운 입술 상 삼도, 연봉 연꽃을 지물로 들고 있어 미륵불로 불려지는 것 같습니다. 문화재청 발간 한국의 사지에는 이곳에 조선시대에 미륵원(彌勒院)이라는 역원(驛院)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른손은 .. 2023. 11. 11.
장성...사거리 당간지주 가을이 깊었습니다. 함께 역 주변을 탐문하고, 찾고 했던 백양사역 역장 님은 잘 계신지. 어렵게 감각으로 찾았던, 처음으로 존재여부를 알렸던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2009년 글에는 그날의 벅찬 감동이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https://12977705.tistory.com/8722938 우리나라의 당간지주 https://cafe.daum.net/moonhawje/MebK/231 사거리 당간지주 나의 답사 이력에서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몇몇 장면의 하나입니다 더불어 첫 인연의 감동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2023.10.28 2023. 11. 10.
장성...수산리 오층석탑 2009년 담장 너머 까치발로 인연 지었던 탑.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1216 지금은 담장을 허물어 출입이 가능하였습니다. 옆에 있는 오성진곤비에 따르면 비보탑으로 진월면에서 옮겨온 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층 기단의 오층탑 옛답사기에는 갑석 이하는 매몰되었다고 실려있습니다. 그러나 페이스북 친구인 기호철 선생에 의하면 수산리 탑은 취서사지에서 옮겨 왔으며, 하층 기단은 경수 기양연 공 기념비(耕叟奇亮衍公紀念碑) 대좌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취서사지에 남아 있는 석탑 하층기단 https://12977705.tistory.com/8725535 기단부 상층기단 갑석, 중석은 매몰되었는지, 분실되었는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위 사진처럼 하대석은 매몰된 것이.. 2023. 11. 9.
장성...봉정사 석불입상, 석조여래입상 입구가 기억나지 않아 내비양의 안내로 마을을 몇 번이나 돌았습니다. 근처만 가도 느낌으로 다가왔던 총명했던(?) 기운도 스멀스멀 허물어지나 봅니다. 어렵게 기억해 낸 상무대 정문. 그렇게 인연 짓고 왔습니다. 2009년 글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1214 석불입상 보호각 석불입상 석조여래입상 발을 새긴 대좌와 불신이 별석입니다. 상호와 목아래 부분 등 3곳이 잘라져 있습니다. 소발, 육계는 본래 낮은 것인지 훼손된 상태인지 흔적만 구분됩니다. 수평 발제선이 뚜렷합니다. 백회공, 뭉뚝한 코, 두툼한 입술, 귀는 훼손되었습니다. 어깨는 좁은 편이며, 삼도를 새겼고, 통견의 법의, 승각기, 군의에 나비매듭을 표현했습니다. 두 손은 비교적 크게 묘사되었으며, 어깨 부분.. 2023. 11. 8.
장성...내계리 오층석탑 반가웠습니다. 어떤 장면도, 특징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마주한 순간. 아~! 그렇지라고 중얼거리며 다가섰습니다.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석탑,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 해남 만일암지 오층석탑, 화순 한산사지 삼층석탑, 광주 서오층석탑... 2009년 글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1215 기단부 기단저석, 중석, 갑석으로 구성된 단층 기단을 올렸습니다. 탑구는 망실된 것 같습니다. 기단저석 2단 굄이 조출되어 있습니다. 기단 중석 감입식으로 결구되었으며, 저석과 비례가 맞지 않아 후보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단 갑석 부연이 생략? 오히려 갑석이 뒤집힌 상태이며, 평박한 갑석 하부에 부연이 새겨진 것 같습니다. 갑석 상부 별석 각형 2단 탑신 굄 탑신부 아래로부터 3*.. 2023. 11. 7.
장성...진원리 오층석탑 2009년 이후 처음입니다.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1217 논이 있었던 자리에 비닐하우스가 들어섰으며, 당시 답사기에는 안내문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간단한 설명과 내력을 기술한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2층 기단 5층 석탑 5층 탑신석 이상 부재는 망실되었고, 하층 기단 갑석 아래 부재는 매몰된 상태입니다. 기단부 상층기단 중석은 혼합식 결구 하층기단 갑석 이하 매몰 (문화재청 홈페이지와 한국의 사지에는 단층기단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지대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층기단 갑석 물매가 미미하면, 탑신 굄 생략, 성혈도 있습니다. 옛글에는 부연이 없다고 했는데, 깊고 얕은 부연이 있습니다. 탑신부 옥개석 탑신석 양우주 모각 옥개석 낙수면 물매.. 2023. 11. 5.
나주...동문 밖 석당간 3번째 들렸습니다. 2009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1219 고려초 나주의 터를 잡으면서 운주運舟 형국 풍수 비보책으로 조성했습니다. 다른 지역 당간지주와 다르게 평지보다 낮게 터를 잡은 것은 배를 정박한 상황일까요? 지대석 기단부는 井자로 결구했습니다. 당좌, 당간지주에는 간공이 없습니다. 당간 5개 긴 돌, 2개 부재는 간공을 내어 결합하고 외부에 철띠를 둘렀습니다. 팔각지붕돌(보개?) 보주 문양은 안상과 귀꽃인가요? 짐대제 마을 제의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금줄이 사라진... 2023.10.28 2023. 11. 3.
나주...나주 향교 충복사 유허비 나주 향교 비석 군 전묘 후학 배치의 외삼문이 아닌 측면 협문 입구에 있습니다. 다른 지역 향교와 다르게 협문이 항상 개방되어 있어 향교 답사가 자유롭습니다. 충복사 유허비(忠僕祠 遺墟碑) 비석 군 향 우측 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충성스러운 종을 기리는 사우가 있었으며 그 자리에 비석을 세웠다는 의미입니다. 충복(忠僕)은 누구이었을까요? 정유재란 때에 나주 향교의 우두머리 종이었던 김애남이 대성전에 봉안 중이었던 위패를 왜군을 피해 금성산으로 옮겼다가 후에 다시 모신 공을 기려 그의 사후에 충복사를 세웠다고 합니다. 유허비 뒷면 충복 김애남 유허비를 세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건립 시기를 새겼습니다. 공자탄강 2475년 갑자 2월 일립 孔子誕降二千四百七十五年 日立 충복사 .. 2023. 11. 2.
나주...나주 향교 석탑부재 나주 향교 명륜당 오늘은 몇 년 전 남산아지매 님이 포스팅과 최근에 사육일 님의 사진으로 알게 된 명륜당 좌익사 계단석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탑 부재를 찾아왔습니다. 나주 향교(2019년)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4877 우리나라의 석탑. 석탑재(1693기) 전남의 향교 자료에는 안상이 새겨진 하층기단 중석 외에도 여러 편의 석탑 부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석탑재는 인근 심향사에서 옮겨온 석탑 부재로 전합니다. 심향사(2013년)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2466 2매로 구성된 하층기단 중석으로 추정됩니다. 석탑 부재뿐만 아니라 사찰 석조 부재는 전국의 많은 향교 건물에 사용되었습니다. 언제쯤 제자.. 2023. 11. 1.
나주...문성암 석탑부재. 금표석 너무 이른 시간의 산사 차마 정적을 깨울 용기가 없어 스님을 찾지 않았고 예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문성암(文聖庵) "1987년 다정스님이 운흥사의 암자였던 문수암(文殊巖) 터에 창건하였다. 2층 규모의 한옥 2동으로 구성된 단출한 규모이다. 본래의 암자가 폐허가 된 후에는 해발 200m 정도의 산속인데도 물이 넉넉하여 논으로 경작되어 왔는데 지금도 특히 물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찰은 여느 곳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나지막한 차(茶) 나무가 나란히 도열해 우리를 맞이하며, 그 앞에는 곧 앞마당 같은 잔디마당이 아담하게 다듬어져 있고, 한자로 쓰인 글귀가 많이 눈에 띄고, 전각의 현판도 “참회전(懺悔殿)”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하는 등 이곳은 공부하며 참회하기에 좋은.. 2023. 10. 31.
순천...장흥 금장사지 석탑재 송광사 성보박물관 사육일 님으로부터 듣고 이른 아침 도착하여 석탑부재를 비롯 석조물을 확인하였습니다. 금장사지 金藏寺址 금장사는 1311년에 李 이 작성한 「龍頭山金藏寺金堂主 彌勒三尊改金記」에 창건 및 중건 연혁이 전한다. 이에 따르면 금장사는 992년(고려 성종 11) 2월 玄坦스님이 창건하였으며, 금당에는 미륵삼존불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 나 고려후기 천태종계 중심인물인 丁午禪師가 세월이 오래되어 낡은 사찰을 보수하기 위해 발원하고 떠났다고 한다. 이후 1307년(충렬왕 복위 9) 정오선사는 王師로 책봉 되어 금장사를 下山所로 정해 받았으며, 하산한 뒤 금장 사에서 개금불사를 계획하였다고 한다.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정오선사가 다시 왕사로 복귀하게 되자 제자인 宏之禪師로 하여금 개금불사를 .. 202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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