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마지막날
몽골 마지막 복드왕 겨울궁전-국립박물관-수흐바트라 광장-간동사원-전통민속공연
사진이 많아 몇 편 나누어 포스팅합니다.
먼저 복드왕 겨울 궁전입니다.
2024.08.31
복드왕 겨울궁전
"몽골 울란바토르 남쪽에 세워진 복드 칸국 시대의 궁전이다. 몽골의 마지막 칸 젭춘담바 후툭투 8세(Жавзандамба хутагт VIII)의 궁전으로 1893년부터 1903년 사이에 지었고 20여 년 간 칸이 거주하는 궁궐로 기능하게 된다.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때 왕정이 폐지되고 소련의 간섭을 강하게 받던 냉전기에도 파괴를 면했으며 박물관으로 재활용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름궁전도 있었으나 현재는 파괴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요·금·원·청 등 유목민족 국가의 지도자들은 동날발(冬捺鉢), 하날발(夏捺鉢)이라고 하여 여름과 겨울마다 거처를 옮겼다. 원나라의 경우 여름은 상도에서 보내고 겨울은 대도에서 보냈다. 청나라의 경우 북경의 자금성은 황제가 겨울에 거처하는 궁전이고, 여름에는 피서산장으로 옮겨서 집무를 봤다.
많은 건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7개의 티베트 불교사원과 주거 목적의 남동쪽의 러시아풍의 2층 궁전만 남아있다. 건물에는 몽골의 고유 건축양식이 적용되어 한국이나 중국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의 궁전들과는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양식들이 눈에 띈다. 단청 같이 은근히 중국이나 일본 건물보다 한국 고건물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내부에는 티베트 불교 탱화 등 불교 미술품들과 차르가 보낸 금빛 장화, 80마리의 여우 모피로 만든 예복, 눈표범 150마리의 가죽으로 장식한 게르, 몽골 독립 선언서 등의 전시품이 있다.(출처.위키백과)
양패
가이드가 양패라고 설명한 것 같은데 분명하지 않습니다.
궁궐에 사악한 기운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원 앞에 설치하였습니다. 3개의 벽이며 두 마리 용과 몽골의 산야를 새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서울 경복궁 광화문의 해치와 유사한 목적으로 추정되며, 궁전이 사원의 성격이 짙은 까닭에 우리나라 사찰 입구의 벅수 역할과 같은 상징성으로 해석됩니다.
담장을 전각처럼 꾸몄습니다.
겹처마, 다포계 지붕입니다
물결 속에 두 마리 용을 표현했습니다.
기단부
불상 기단부처럼 구성되었으며, 복련과 앙련 사이에도 두 마리 용을 새겼습니다.
수막새의 용면와
이제 궁궐을 살펴봅니다.
(사진 출처. 위키 백과)
옛 사진에는 여러 구역으로 구획되어 있으나, 현재는 티베트 불교사원과 왕실 궁전으로 크게 2개 구역입니다. 우리가 답사한 코스는 중앙 전각과 담장을 통과하여 들어간 2층 건물이 있는 구역입니다. 이렇게 사원과 궁전이 함께 있는 까닭은 티베트불교처럼 왕이 라마승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복드왕 여름궁전 측면
러시아가 지어준 2층 건물에서 바라본 사원 구역
러시아가 준공한 왕이 거주한 궁전
먼저 라마 사원 배치 구조인 사원 구역(?)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의 일주문 같습니다.
하지만 구조는 확연히 크고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합니다.
왕이 거주한 공간인 까닭에 모든 전각 추녀마루에 장식용 기와인 잡상(雜像)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궁궐 전각에도 사악한 기운 예방목적으로 잡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추녀마루의 잡상. 풍탁
풍탁도 우리나라 종과 다릅니다.
왜 삼존상이 일주문 외곽 측면에 있는지.
왕의 거주지 입구에도 해태가 조각된 동일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기단부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측면
후면
벽화
현판
낙선호시. 선을 즐기고 보시를 좋아하라?
벽화
두 번째 문입니다.
복드왕이 왕이 되었을 때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1912~1919년 몽골 최고의 건축가들이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지은 목조건물입니다. 대문에 그려져 있는 호법의 존상을 모르겠습니다.
향로
전각 용마루에 사슴과 법륜을 올렸습니다.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는 태양처럼 영원히 빛날 석가모니의 영원한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인왕상(?)
우리나라 인왕상은 상의를 벗고 있어 구분이 됩니다.
천왕문(?)
2층 용마루에 법륜(法輪) 두 마리 사슴이 보이며, 1층 용마루 위에는 평난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남방 증장천. 서방 광목천
생령좌, 문인상도 보입니다.
동방 지국천. 북방 다문천
우리나라 사천왕상 배치도 천차만별인데
어찌 몽골 땅에서 제대로 구분할 수 있으리오.
나이당
우리나라 대웅전 영역처럼 좌우에 전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뒤편은 담장이 있고 좌우에 작은 문이 있으나 관광객에게는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중앙은 우리나라 궁궐, 왕릉의 신도(神道), 어도(御道)와 달리 관광객의 이동 동선이었습니다. 본래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텐데.
내부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고 문의 단청을 새로 칠하고 있었습니다.
내부 모습이 궁금했는데.
자료를 검색하면 나이당은 매년 다른 사원에서 8~18명의 승려들이 이곳에서 왕을 위해 경을 읊었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불상과 불구가 있다고 합니다.
스투파 기단(?). 노주석 기단(?)
시멘트로 조성하였으며 좌우 2기가 있습니다.
옛 사진에는 해태로 추정되는 동물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반대편 창문은 단청을 새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202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았던 2세기 인도의 스투파전에 전시되었던 풍요의 항아리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예전에는 강화도 정수사 창문의 화병이 유명하였으나 요즘은 많은 사찰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2023년 스투파전. 풍요의 항아리
강화도 정수사 꽃창살
금당 향 좌측 전각
남북 건물은 2,3층이었으나. 동서 건물은 단층이었습니다. 다행히 이곳에는 관리자가 없어 사진 촬영을 제지하지 않았지만 시간에 쫓겨 황급히 셔트를 눌러야 했습니다.
전시된 불상도 정확한 존명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일천한 안목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라마승 탱화
관음보살
반대편 전각
불상과 스투파 여러기를 그린 탱화
감로도(?)
보살좌상
이곳 사원에 전시된 대부분 불보살상은 원, 청시대 조성되었으며 현대에 봉안된 상도 있었습니다. 보살 보관 뒤편으로 보이는 계주가 높아 라마 유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금동여래좌상
높은 계주가 라마 불상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금동 약사여래좌상
자나바자르상(?)
자나바자르상(?)
금동자나바자르상. 18세기
금동 다라보살(多羅菩薩)
관세음보살 눈에서 나왔다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풍만한 가슴, 유희좌가 눈에 들어옵니다.
다라보살
다라보살
동종
우리나라 종과 확연히 다릅니다..
많은 중국 종과 우리나라 종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군수물자 생산용으로 공출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반출하여 일본으로 가져가려다가 여의치 않아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중국종이 인천시립박물관을 비롯하여 몇몇 곳에 있습니다.
대청 함풍 11년
咸豊은 청나라 8대 문종이 사용한 연호이며 11년은 서기 1861년입니다.
천판 위의 용뉴가 이채롭습니다. 종신 상하대는 문양, 중대에는 조성문, 하대 아래에는 팔괘를 새겼습니다.
몽골 불교에 대한 상식이 일천하여 주마간산으로 관람하였습니다. 궁중박물관 2층에는 복드왕 재위 시에 사용했거나 선물 받은 많은 전시품이 있었지만 촬영이 불가하여 스쳐지나야만 했습니다. 또한 자나바자르 불교미술박물관을 들리지 못하여 아쉬움이 크며 향 후 기회가 된다면 좀 더 공부하여 몽골의 불교 사원을 중심으로 답사하고 싶습니다.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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