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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아산시41

아산...수암사 석조여래좌상. 석조관음보살좌상 한글 일주문 현판이 정겹습니다. 어금니 바위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에 돈 많고 부자인 욕심쟁이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땅이 많아서 소작인도 많았다. 노인에게는 칠삭둥이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소작인 중 한 명의 딸을 며느리로 맞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었다. 가난한 농사꾼의 딸이기는 하나 아름답고, 현명하여 누구 못지않게 많은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노인은 가난한 농사꾼에게 몇 번이나 청혼했지만, 승낙을 얻지 못하자 소작할 땅을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소작을 하여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농사꾼 부부에게는 큰 걱정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효성스러운 딸이 스스로 혼인하겠다고 나섰다. 부모는 펄쩍 뛰었지만, 외동딸의 갸륵한 마음을 저버리지는 못하였다. 혼인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 2024. 3. 9.
아산...백련사 석불상 고룡산 백련사 멀리 서해대교가 조망되는 절집입니다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한국의 사찰문화재에 등재된 석불 편을 찾아왔습니다. 석불. 문석인. 문석인 머리 석불 불두가 결실되었으며, 스님께서 별도 보관하고 계십니다 석불(사진. 한국의 사찰문화재) 불두가 상반신가 비슷한 크기입니다 통견의 법의, 삼도 표현, 양감이 거의 없는 두 손은 가슴에 두었고, 손가락은 선각으로 새겼습니다. 하반신과 상반신을 구분하여 조성하여, 상반신을 하반신에 끼운 것처럼 보이지만 불분명합니다. 백련사 앞 경작지에서 발견된 불상이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였습니다. 자료에는 고려시대 불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시대 하강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문석인 무인상이며, 원위치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문석인 머리 석불 복원이 어렵다면 불두를 접합하여 대웅전.. 2021. 6. 3.
아산..영인산 세심사 2010년 이후 다시 찾았습니다. 옛글로 대신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151 예전에는 없었던 루대 인취사, 세심사 사시마지 예불로 조용히 둘러보았습니다 대웅전 스님의 독경은 계속되고... 소조여래좌상, 조선 후기 이 부처님을 자세히 보고팠는데... 영산전 금동아미타삼존 조선 후기 추정 석조 나한상. 조선 후기 석조나한상. 조선 후기 칠성도. 1935년, 산신도. 1937년 칠성도 세심사 이전의 사명(寺名)인 신심사에 봉안 산신도 우리나라의 다층청석탑 https://blog.daum.net/12977705/8726130 다층 청석탑 3단 지대석, 다른 청석탑과 달리 이중의 불대좌형 기단을 갖춘 석탑입니다. 낙수면 물매는 부드러우며, 층급받침은 전층 2단, 탑신석.. 2021. 6. 3.
아산...학성산 인취사 2010년 이후 처음 들렸습니다. 당시에는 극락전과 요사만 기억에 남아 있는데, 전각과 루대가 들어선 것 같았습니다. 오류도 보이지만 수정 않고 옛글로 대신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150 삼층석탑 예전에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극락전 불단에는 석조아미타불, 지장보살,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스님의 사시마지 예불이 진행중이어서 참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삼층석탑(1) 옛글에는조선시대 탑이라고 했지만, 고려 시대 탑입니다 3단 굄, 물매가 있는 기단 갑석 이하는 망실 초층 탑신석과 초층 옥개석 이상의 부재의 암질이 서로 달라 다른 석탑 부재 가능성도 있습니다 탑신석, 노반석에는 우주를 모각하였고, 옥개석과 상층 탑신석, 3층 옥개석과 노반석이 일석입니다.. 2021. 6. 2.
아산...봉수산 봉곡사 봉곡사 석조문화재가 주요 관심사인 까닭에 이제 인연 지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 "887년(진성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데 근거 기록은 없으며 사찰 명칭도 알 수 없다. 고려 의종 대에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이, 조선 전기에 함허(涵虛)[1376~1433]가 중창하였다 전하고, 이 시기 여러 산내 암자가 있을 정도로 사세가 컸다고 전하나 관련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조선 중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석암사 재송악산(石菴寺在松岳山)"[석암사는 송악산에 있다.]이라는 내용이 지금까지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사찰이 모두 전소하고 1646년(인조 24)에 현재 .. 2021. 6. 2.
아산...배미동 석불입상 배미동 석불입상 아산시 배미동 산 32-2 몇 년 전 시나브로님이 현장 부재로 안타까워했던 둔포면 봉재리 미륵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인지한 불상입니다. 봉재리 미륵은 시나브로님 이전에 저도 탐문하였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 다시 찾았지만 결론적으로 뵙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나투시겠지요? 아산 봉재리 미륵(출처. 네이버 블로그. 서석산 여행일지) 배미동 석불은 도난 후 다시 찾은 불상이었습니다 배미동 미륵(연합뉴스) http://v.media.daum.net/v/20070730083310089?f=o 배미동 석불입상 마을 주민들이 마을 수호신, 마을 미륵으로 모시는 민불로 추정됩니다. 주형 거신광배에 조성하였으며 상호를 제외한 불신은 양감 없이 선각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소발, 큰 육계, 긴 귀, 상호는.. 2021. 6. 1.
아산...온양향교 하마비(글씨체) 온양향교 읍내리 당간지주에서 바라보며, 향교 건물로 생각하고 찾았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문은 닫혀 있습니다. 온양 향교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향교 재군서1리(鄕校 在郡西一里)’라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전기에 이미 온양향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온양현의 설치와 현감이 파견되는 시점을 고려하면 조선 태종 대 이후 설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현재 위치에서 서쪽으로 낮은 능선 너머인 아산시 법곡동(法谷洞)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610년(광해군 2) 현재 자리에 복원되었다고 전해진다. 1794년(정조 18)과 1861년(철종 12)에 교궁(校宮)[향교]을 중수하였고, 1868년(고종 5)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18.. 2021. 5. 31.
아산...온주 아문. 동헌 온주 아문(溫州衙門) 온주아문과 동헌은 온양군 관아 건물입니다. 1993년에 수리 및 복원되었으며, 1973년 12월 충남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온양군 관아 "일제의 1913년 말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온양군이 폐지된 이후 급속히 변형되었으나, 그 구체적 과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미 1908년 6월 온양공립보통학교가 객사 건물을 이용하여 개교하였던 사실은 파악되고 있다. 그밖에는 일제강점기인 1928년부터 동헌 등이 주재소로 쓰이다가 광복 후 파출소로 이어졌으며, 1986년 온양시 승격에 따라 1988년까지 2년 동안 온주동사무소로 이용된 것이 확인된다."(디지털 아산 문화대전 발췌) 온주아문 겹처마 팔작지붕의 2층 문루입니다. 아래층은 출입문이며, 위층은 계자난간을 두른 누마루 .. 2021. 5. 31.
아산...읍내리 당간지주 읍내리 당간지주. 오늘은 당간지주 주변 민가의 석탑 부재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민가는 폐가가 되었고, 예전에 사진에 담지 못했던 석탑재는 사리지고 없었습니다. 일전에 아산 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본 부재 일부가 민가에서 옮겨 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산 민속박물관 석탑 부재 읍내리 당간지주 협소했던 주변 환경이 정비되었고, 당간지주는 세척하였습니다 2010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158 2021.05.11 2021. 5. 30.
아산...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용담사 2010년 사진에는 약사여래입상 뒤편에 전각이 있는 작은 사찰이었습니다. 옛글로 대신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147 용담사사적비(龍潭寺事蹟碑) 병술 중춘 십오일(丙戌 仲春 十五日). 1946년 산명 천마 사명 용담 야(山名 天馬 寺名 竜潭 也). 천마산 용담사 신라 애장왕 삼십육년 사월 원효대사 초창(新羅 哀莊王 三十六年 四月 元曉大士 初創). 애장왕 36년 4월에 원효대사 창건 고려 광종 이십칠년 혜명조사 중창(高麗 光宗 二十七年 慧明祖師 中創).고려 광종 27년에 혜명조사가 중창 우금 일천이백여년 병화 소진(于今 一千二百餘年 兵火 燒盡). 지금까지 1200 여년 동안 병화를 입고 폐사 이단 석불 일위(而但 石佛 一位). 석조약사여래입상만 남아 있다.. 2021. 3. 11.
아산...아산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아산 용화사 이른 아침이건만 예나 지금이나 불러도 불러도 적막강산입니다 2010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s://cafe.daum.net/_c21_/bbs_nsread?grpid=dRVf&fldid=DjZP&contentval=000Mw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422&searchlist_uri=%2F_c21_%2Fcafesearch&search_ctx=LrpNuZSucOsx.YncUoV2ej_tRpHqkOL1hFNwnK7pMwx2pUU9oYvq-CADq-lzJK_pvUKb7yb4c6zjTiqtpKnSCHEg_oRl7Tz79DVkFIB9q.z9GavCQnTmxGbKtu4ysG3O5wK_yUKoC7rvN.Sn8lOF1w9tQLMOjEt-fs4rHFVuiN84hT9pGeN.. 2021. 3. 10.
아산...산막골 미륵 산막골 외암 2리 당림미술관 입구의 성황나무 아래에 계십니다. 산막골 미륵 외암 민속 마을에 가려 찾는 사람 없는 마을 입구를 수호하는 서낭당 벅수로 모셨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미륵으로 모신 듯합니다. 마을제(동제), 장승제의 흔적은 없으며, 소박한 제단에는 촛대, 물, 막걸리가 다녀간 분의 자취를 품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민초들과 동고동락하였겠지만, 조성시기는 전하지 않습니다. 미륵 자연석에 불두를 양각으로 조성한 느낌이지만 정확은 본래 모습은 육안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외암 민속마을에서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진행되는 장승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제관 선출과 제수 준비 과거에는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 운이 닿는 사람으로 제관을 선출했.. 202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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