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나주시 42

나주...국립나주박물관 옹관.나한상.서문 안 석등

국립나주박물관그 근처를 아주 여러 번 오고 갔지만 들리지 않았습니다.묘제에 관심이 없고 석조문화유산도 서울 국박에서 만났던 서성문 앞 석등 밖에 업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그러다가 우연하게 불회사 나한상이 전시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 호남 답사 동선에 포함시켜 인연 지었습니다.옹관(甕棺)반남고분군https://12977705.tistory.com/8728726불회사 나한상. 고려말~조선초 불회사 원진국사 탑(부도). 2018년https://12977705.tistory.com/8726096 불회사(2009년)https://12977705.tistory.com/8722950나주 서문 안 석등. 국보나주 서문안 석등고려시대 흥룡사興龍寺에 있었던 석등으로. 후에 나주읍성 서문 안으로 옮겼으며, 일제강점기..

나주...반남 고분군

무안에서 나주로 향하는 길고분군이 스쳐갔지만 석조 유물에 비해 크게 관심이 없어, 정확히는 안목이 일천한 탓에 들리지 않았습니다.답사지인 나주박물관에 도착하였지만 개관 전이어서 앞쪽에 자리한 반남 고분군을 처음으로 둘러보았습니다.짧은 상식으로는 영산강 유역. 대형옹관묘. 전방후원분 등등이 떠오를 뿐입니다.반남고분군삼국시대의 고분군. 2011년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반남 고분군에는 대형옹관고분 수십 기가 분포하고 있다. 대형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甕: 항아리)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이 고분양식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구별되는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양식이다. 대형옹관고분은 A.D 3세기부..

나주...동문 밖 석당간

3번째 들렸습니다. 2009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1219 고려초 나주의 터를 잡으면서 운주運舟 형국 풍수 비보책으로 조성했습니다. 다른 지역 당간지주와 다르게 평지보다 낮게 터를 잡은 것은 배를 정박한 상황일까요? 지대석 기단부는 井자로 결구했습니다. 당좌, 당간지주에는 간공이 없습니다. 당간 5개 긴 돌, 2개 부재는 간공을 내어 결합하고 외부에 철띠를 둘렀습니다. 팔각지붕돌(보개?) 보주 문양은 안상과 귀꽃인가요? 짐대제 마을 제의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금줄이 사라진... 2023.10.28

나주...나주 향교 충복사 유허비

나주 향교 비석 군 전묘 후학 배치의 외삼문이 아닌 측면 협문 입구에 있습니다. 다른 지역 향교와 다르게 협문이 항상 개방되어 있어 향교 답사가 자유롭습니다. 충복사 유허비(忠僕祠 遺墟碑) 비석 군 향 우측 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충성스러운 종을 기리는 사우가 있었으며 그 자리에 비석을 세웠다는 의미입니다. 충복(忠僕)은 누구이었을까요? 정유재란 때에 나주 향교의 우두머리 종이었던 김애남이 대성전에 봉안 중이었던 위패를 왜군을 피해 금성산으로 옮겼다가 후에 다시 모신 공을 기려 그의 사후에 충복사를 세웠다고 합니다. 유허비 뒷면 충복 김애남 유허비를 세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건립 시기를 새겼습니다. 공자탄강 2475년 갑자 2월 일립 孔子誕降二千四百七十五年 日立 충복사 ..

나주...나주 향교 석탑부재

나주 향교 명륜당 오늘은 몇 년 전 남산아지매 님이 포스팅과 최근에 사육일 님의 사진으로 알게 된 명륜당 좌익사 계단석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탑 부재를 찾아왔습니다. 나주 향교(2019년)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4877 우리나라의 석탑. 석탑재(1693기) 전남의 향교 자료에는 안상이 새겨진 하층기단 중석 외에도 여러 편의 석탑 부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석탑재는 인근 심향사에서 옮겨온 석탑 부재로 전합니다. 심향사(2013년)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2466 2매로 구성된 하층기단 중석으로 추정됩니다. 석탑 부재뿐만 아니라 사찰 석조 부재는 전국의 많은 향교 건물에 사용되었습니다. 언제쯤 제자..

나주...문성암 석탑부재. 금표석

너무 이른 시간의 산사 차마 정적을 깨울 용기가 없어 스님을 찾지 않았고 예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문성암(文聖庵) "1987년 다정스님이 운흥사의 암자였던 문수암(文殊巖) 터에 창건하였다. 2층 규모의 한옥 2동으로 구성된 단출한 규모이다. 본래의 암자가 폐허가 된 후에는 해발 200m 정도의 산속인데도 물이 넉넉하여 논으로 경작되어 왔는데 지금도 특히 물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찰은 여느 곳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나지막한 차(茶) 나무가 나란히 도열해 우리를 맞이하며, 그 앞에는 곧 앞마당 같은 잔디마당이 아담하게 다듬어져 있고, 한자로 쓰인 글귀가 많이 눈에 띄고, 전각의 현판도 “참회전(懺悔殿)”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하는 등 이곳은 공부하며 참회하기에 좋은..

나주...만봉리 석불입상

너무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법당에 모셔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법당? 보호각이라는 표현이 맞을는지 2009년 9월에는 노천에 계셨습니다 예전에 들렸던 철전리 석불 입상과 칠불좌상 지근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석불입상을 미륵불, 할아버지 불상이라 하고, 철전리 칠불상을 할머니불상이라 부른다고 한다. 마을 건너 저수지로 오르는 길 그 곳에 계셨다. 아무도 없는듯한 절집에서 영화 배우 뺨치게 잘 생긴 스님이 나오셨다. 쌍계사였다. 근자에 세운 개인사찰 같은 분위기였다. 내년 쯤 전각 불사를 할 예정이라며 꼭 다시 오라셨다. 불상을 모셨던 전각 석기둥 같았다. 부재를 활용하여 전각을 세웠으면 좋을텐데... 하나의 돌로 주형거신광배를 만들고 돋을새김으로 불상을 모셨다. 소발, 둥근 얼굴에 살..

나주...송제리 오층석탑

어제 같은데 10 년이 훌쩍 지나가버렸군요 2009년 글 https://blog.daum.net/12977705/8722953 초층 옥개석 보다 좁은 상층 기단 갑석 세장한 초층 탑신석 백제 고토에 선 고려시대의 백제계 석탑입니다 2층 기단 하층 기단 면석 이하는 매몰 중석의 우주 평박한 갑석과 1단 굄 상층기단 중석의 우주 부연, 굄이 생략된 갑석 탑신부 우주가 모각된 세장한 초층탑신석 전층 탑신석의 우주 낙수면 물매가 급한 옥개석, 전각의 반전 초층 탑신석 상륜부 망실 아래로부터 3*3*3*3*2의 층급받침 초층 탑신석의 한 점 면석 5층 탑신석은 후보 하였습니다 탑동 사찰은 폐사되어도, 민초들의 가슴으로 전해 온 탑동 마을의 오층 석탑입니다 2022.05.29

나주...영천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목조지장보살좌상

가야산 영천사 가야산? 가야 세력의 해양 전진기지 아니었을까요? 육로. 강. 바다... 백양사의 말사입니다. 불단 지장보살. 아미타여 레. 관음보살 아미타여래는 문화재 자료. 목조 지장보살상은 전남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본래 봉안처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영천사를 창건할 당시 유일한 전각인 인법당에는 폐사(廢寺)된 보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이 불상에 관해서는 1969년 5월 2일 영천사가 본사인 백양사에 보낸 문화재 실태 조사보고서에 “8.15 해방 당시 파괴된 보덕사에서 모셔왔음”이라 적혀 있지만, 1974년 3월 1일 공문에는 “여래상과 지장보살상은 읍내 일본 절에서 모셔옴”이라 적혀 있다. 또한 1993년 10월 15일에 남운 스님이 작성한 성보 목록 대장에는 “여래상은 백양사 천진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