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나주시 40

나주...동문 밖 석당간

3번째 들렸습니다. 2009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1219 고려초 나주의 터를 잡으면서 운주運舟 형국 풍수 비보책으로 조성했습니다. 다른 지역 당간지주와 다르게 평지보다 낮게 터를 잡은 것은 배를 정박한 상황일까요? 지대석 기단부는 井자로 결구했습니다. 당좌, 당간지주에는 간공이 없습니다. 당간 5개 긴 돌, 2개 부재는 간공을 내어 결합하고 외부에 철띠를 둘렀습니다. 팔각지붕돌(보개?) 보주 문양은 안상과 귀꽃인가요? 짐대제 마을 제의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금줄이 사라진... 2023.10.28

나주...나주 향교 충복사 유허비

나주 향교 비석 군 전묘 후학 배치의 외삼문이 아닌 측면 협문 입구에 있습니다. 다른 지역 향교와 다르게 협문이 항상 개방되어 있어 향교 답사가 자유롭습니다. 충복사 유허비(忠僕祠 遺墟碑) 비석 군 향 우측 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충성스러운 종을 기리는 사우가 있었으며 그 자리에 비석을 세웠다는 의미입니다. 충복(忠僕)은 누구이었을까요? 정유재란 때에 나주 향교의 우두머리 종이었던 김애남이 대성전에 봉안 중이었던 위패를 왜군을 피해 금성산으로 옮겼다가 후에 다시 모신 공을 기려 그의 사후에 충복사를 세웠다고 합니다. 유허비 뒷면 충복 김애남 유허비를 세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건립 시기를 새겼습니다. 공자탄강 2475년 갑자 2월 일립 孔子誕降二千四百七十五年 日立 충복사 ..

나주...나주 향교 석탑부재

나주 향교 명륜당 오늘은 몇 년 전 남산아지매 님이 포스팅과 최근에 사육일 님의 사진으로 알게 된 명륜당 좌익사 계단석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탑 부재를 찾아왔습니다. 나주 향교(2019년)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4877 우리나라의 석탑. 석탑재(1693기) 전남의 향교 자료에는 안상이 새겨진 하층기단 중석 외에도 여러 편의 석탑 부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석탑재는 인근 심향사에서 옮겨온 석탑 부재로 전합니다. 심향사(2013년)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2466 2매로 구성된 하층기단 중석으로 추정됩니다. 석탑 부재뿐만 아니라 사찰 석조 부재는 전국의 많은 향교 건물에 사용되었습니다. 언제쯤 제자..

나주...문성암 석탑부재. 금표석

너무 이른 시간의 산사 차마 정적을 깨울 용기가 없어 스님을 찾지 않았고 예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문성암(文聖庵) "1987년 다정스님이 운흥사의 암자였던 문수암(文殊巖) 터에 창건하였다. 2층 규모의 한옥 2동으로 구성된 단출한 규모이다. 본래의 암자가 폐허가 된 후에는 해발 200m 정도의 산속인데도 물이 넉넉하여 논으로 경작되어 왔는데 지금도 특히 물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찰은 여느 곳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나지막한 차(茶) 나무가 나란히 도열해 우리를 맞이하며, 그 앞에는 곧 앞마당 같은 잔디마당이 아담하게 다듬어져 있고, 한자로 쓰인 글귀가 많이 눈에 띄고, 전각의 현판도 “참회전(懺悔殿)”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하는 등 이곳은 공부하며 참회하기에 좋은..

나주...만봉리 석불입상

너무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법당에 모셔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법당? 보호각이라는 표현이 맞을는지 2009년 9월에는 노천에 계셨습니다 예전에 들렸던 철전리 석불 입상과 칠불좌상 지근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석불입상을 미륵불, 할아버지 불상이라 하고, 철전리 칠불상을 할머니불상이라 부른다고 한다. 마을 건너 저수지로 오르는 길 그 곳에 계셨다. 아무도 없는듯한 절집에서 영화 배우 뺨치게 잘 생긴 스님이 나오셨다. 쌍계사였다. 근자에 세운 개인사찰 같은 분위기였다. 내년 쯤 전각 불사를 할 예정이라며 꼭 다시 오라셨다. 불상을 모셨던 전각 석기둥 같았다. 부재를 활용하여 전각을 세웠으면 좋을텐데... 하나의 돌로 주형거신광배를 만들고 돋을새김으로 불상을 모셨다. 소발, 둥근 얼굴에 살..

나주...송제리 오층석탑

어제 같은데 10 년이 훌쩍 지나가버렸군요 2009년 글 https://blog.daum.net/12977705/8722953 초층 옥개석 보다 좁은 상층 기단 갑석 세장한 초층 탑신석 백제 고토에 선 고려시대의 백제계 석탑입니다 2층 기단 하층 기단 면석 이하는 매몰 중석의 우주 평박한 갑석과 1단 굄 상층기단 중석의 우주 부연, 굄이 생략된 갑석 탑신부 우주가 모각된 세장한 초층탑신석 전층 탑신석의 우주 낙수면 물매가 급한 옥개석, 전각의 반전 초층 탑신석 상륜부 망실 아래로부터 3*3*3*3*2의 층급받침 초층 탑신석의 한 점 면석 5층 탑신석은 후보 하였습니다 탑동 사찰은 폐사되어도, 민초들의 가슴으로 전해 온 탑동 마을의 오층 석탑입니다 2022.05.29

나주...영천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목조지장보살좌상

가야산 영천사 가야산? 가야 세력의 해양 전진기지 아니었을까요? 육로. 강. 바다... 백양사의 말사입니다. 불단 지장보살. 아미타여 레. 관음보살 아미타여래는 문화재 자료. 목조 지장보살상은 전남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본래 봉안처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영천사를 창건할 당시 유일한 전각인 인법당에는 폐사(廢寺)된 보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이 불상에 관해서는 1969년 5월 2일 영천사가 본사인 백양사에 보낸 문화재 실태 조사보고서에 “8.15 해방 당시 파괴된 보덕사에서 모셔왔음”이라 적혀 있지만, 1974년 3월 1일 공문에는 “여래상과 지장보살상은 읍내 일본 절에서 모셔옴”이라 적혀 있다. 또한 1993년 10월 15일에 남운 스님이 작성한 성보 목록 대장에는 “여래상은 백양사 천진암에서..

나주...동사리 당산, 남근석

동사리 당산 남평초교 인근, 도로변 동사리 44번지에 위치 '동사리 당제와 당산 일원'으로 나주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당산은 세 그루 느티나무와 입석 1기로 구성되었다고 했는데, 입석이 1기 더 있었습니다. 일견 남,녀근석과 당산나무로 생각되지만 특이하게도 남,녀근석을 상징하는 입석이 있음에도 입석을 당산 할아버지, 당산나무를 당산 할머니로 칭한다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까닭은 남근석(입석)과 마주하는 느티나무를 보면 바로 이해됩니다 당산 할아버지 향로석, 상석을 구비하였으며, 입석, 남근석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위에 올린 짚으로 만든 의복이 벗겨지면 여자들이 바람난다는 속설이 전한다고 합니다 당산 할머니 여성의 성기 모양입니다. 일반적으로 남, 녀근석을 조성..

나주...동사리 석등

동사리 석등 2009년 교사에 바싹 붙어 옹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으나 넓은 장소로 옮겼으며, 매몰되었던 하대석을 노출시켰습니다. 옛 자료에는 지대석도 있다고 하였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2009년 글과, 사진 http://blog.daum.net/12977705/8722946 옛글은 이렇게 시작했군요 "동사리. 언제부터인지 나는 "사"자는 무조건 寺로 믿어버리는 몹쓸 병 환자다. 동사 옛 절터라고 지레짐작했지만 아니올시다 였다. 남평초등학교 교정은 조선시대 남평 관아의 객사인 영평관 터였다고 한다. 동사리東舍里라는 지명은 동헌 동쪽에 객사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영평관은 고려 시대 육룡사(六龍寺) 옛 절터로 알려졌으니 사찰-동헌 객사-일제강점기 국민학교로 지배세력과 부침을 함께 해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