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합천군 80

합천...우곡리 사지

우곡리 계성마을 마을 앞 공사로 인해 옛길로 진입한 덕분에 한적하고, 안온한 작은 산골 동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소룡산, 폐석 광산, 마을 향우 측 경작지 상단이 사지입니다. 사찰에 관한 정확한 창건과 폐사는 전하지 않으며, 일부 자료에는 "가례사"라고 전합니다. 서부경남의 석탑(문화재청.2014년) 소룡산 북동쪽에서 흘러내리다가 남쪽으로 길게 뻗은 구릉상에 위치한다는 기록이 있으나 사찰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기록문화 뮤산(문화재청) 합천군 가의면 계성의 가례사였다는 구전이 있으나, 폐사지의 명칭과 연혁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은 전혀 없다. (가의면?) 문화유적총람(문화재청.1977)에 계성사지는 용주면 용지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柱城寺址.陕川郡 龍洲面 龍旨里 합천군청.용주면 지명유래에도 사지명은..

합천...우곡리 성황당

용주면 우곡리 우곡리 사지 옛길 입구에 위치. 눈에 익숙한 길 조산은 기억이 새록새록하건만 낯선 성황신 표지석이 눈에 들어와 멈추었습니다. 조산造山 사찰 입구. 마을 동구. 고갯마루에 위치 민초들의 염원, 산천 비보, 취락 배치의 수구맥이로 조성합니다. 자연에 의지하려는 인간의 작은 바람이 쌓은 돌무더기 기자祈子. 풍농豊農.벽사僻邪를 기원하며, 음력 정월 보름 전후에 동제 洞祭를 모시는 신성한 구역으로, 성황당城隍堂으로도 불립니다. 길 위에 선 나그네에게는 이정표이며, 짚신을 갈아 신는 쉼터입니다. 마을 제의祭儀 성황신城隍神, 성황목城隍木. 조산造山 우리는 우리를 시나브로 잊어가고 있습니다. 군대 가는 아들을 배웅하고, 시집간 딸을 기다리던 헤어짐과 만남의 장소 유년 동구 밖에서 시장 간 할머니를 기다리..

합천...대지리사지(무학대사 유허지).무학대(無學臺)

대지리사지大枝里寺址 합천군 대병면 대지리 산 2번지. 진입 들머리 대지 1리. 대지길 24-1 한갓 마을 정류장 멀리 마을 뒤편 우측 정상에 하얀 바위 아래쪽입니다. 마을 안길로 들어가서 산길을 따라 약 1km 우측 저수지를 지나 포장이 끝난 지점에 주차합니다. 주차공간은 넉넉하지만, 진입 도로는 교행 하기 쉽지 않은 좁은 길입니다. 주차 후 비포장 언덕을 올라서면, 다시 포장도로를 만나고 다리가 있습니다. 다리를 지나면 발굴된 사지가 펼쳐집니다. 도보 10분 미만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사지 고즈넉한, 소설 한 편 탈고하고픈 그런 내가 기대했던 사지가 아니구나 그도 잠깐!!! 아~~~! 나를 찾아가는 절터 누군가 그랬습니다. 나를 찾아간다고... 대지리사지. 창건과 폐사의 사적이 전하지 않은 무학대사 유..

합천...백암리사지 석불좌상.석등

짧은 겨울 하루가 기웃기웃사내 둘이 빈절터를 찾아 들었다."사진은 찍을 수 있겠지" 라는 대화를 주고 받으며..옛글을 보니 2007년 마지막으로 다녀 온 절터이다.백암리 사지"삼국유사’ 제4 탑상편 백엄사 석탑사리(伯嚴寺 石塔舍利)조에는 “개운3년(開運3年, 946)에 쓰인 진주 임도대감주첩(任道大監柱貼)에 선종백엄사(禪宗伯嚴寺)는 초팔현(草八縣-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에 있는데 사승(寺僧) 간유상좌(侃遊上座)는 나이가 39세이고, 절을 처음 세운 때는 알 수 없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옛 문헌에 신라 때 북택청(北宅廳) 터에다 이 절을 지었는데, 중간에 오랫동안 헐어 폐지되었다. 지난 병인년(906)에 양부(陽孚)스님이 이 절을 고쳐 짓고 주지가 되었다가 정축년(917)에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