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합천군

합천...신라충신죽죽지비. 연호사

임병기(선과) 2019. 1. 1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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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충신죽죽지비

함벽루 못 미쳐 도로변에 위치

642년(신라 선덕여왕 11)에 백 ( : )  끝 전사한  525( 20)에 세운 비이다.


대야성은 642년에 윤충이 이끄는 백제군에게 포위되었다. 성주 김품석에게 아내를 빼앗긴 검일이 창고에 불을 질러 성안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에 전의를 잃은 김품석은 부하인 죽죽의 만류를 뿌리치고 항복하였다. 그런데 백제군이 항복하러 나온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리자 김품석은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였다. 죽죽은 남은 병사를 거느리고 싸웠으나 백제군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나를 죽죽(竹竹)이라 이름을 지은 것은 추울 때에도 시들지 않고,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 함이다. 어찌 죽음을 겁내 항복하리요”라고 말하고서 싸우다 전사하였다.(출처/불명)

죽죽의 이런 충절과 용맹을 들은 선덕여왕은 그에게 급찬의 관등을 내리고, 그 처자들을 왕도로 옮겨 살게 하였다. 

이 비석은 죽죽의 충절을 기리고, 그 뜻을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1645년(인조 23)에 합천군수 조희인에 의해 건립되었다.

비문은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遂, 1591~658)가 지었다.

 

 

陜川 新羅忠臣竹竹碑
新羅忠臣竹竹之碑(篆題)
按新羅善德主時百濟一萬兵來攻大野城城主」
金品釋出降幢下竹竹諫不見用則迺收殘」
兵閉城門力戰死之噫謂之歲寒後凋者非耶」
眞不負其名者哉公大野人撰干郝勢之子」
其名與其地人到今稱之而識者歉其無徵今曹」
侯希仁懼夫愈久而泯伐石而竪諸里九百年之」
幽光於侯乎發之侯之於風敎功豈微哉余 則曰」
賢於寒山共語者遠矣是用識」
 龍集乙酉十月上澣晋陽姜大遂記

 

신라 충신 죽죽(竹竹)의 비(전자(篆字)로 제(題)하다)

살펴보니 신라 선덕왕 때에 백제 병사 일만이 와서 공격하였는데 대야성(大耶城)의 성주(城主)인 김품석(金品釋)이 성 아래에 내려가 항복하였다. 죽죽(竹竹)은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자 이에 남은 병사들을 거두어 성문을 닫고 힘껏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아! 이를 역경 속에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는 자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를 이렇게 하겠는가? 진실로 그 이름을 저버리지 않음인저! 공은 대야(大野) 사람으로 찬간(撰干) 학열(郝熱)의 아들이다. 그 명예로움을 그 지방 사람들인 지금까지도 칭송하고 있다. 그런데 식자들이 그 징험이 없음을 애석히 여겨 이제 진주 목사 조희인(曹希仁)이 오래 되어 민멸될 것을 두려워하여 돌을 깎아 비를 세우네. 저 9백 년 동안 어둠 속에 묻혀있던 빛이 이때 목사에 이르러 드러나게 되었으니, 목사가 풍교(風敎)에 끼친 공이 어찌 적다하리오. 내가 이에 이르기를 “어진 이가 추운 산중에 있어 더불어 얘기하는 이가 멀어지네.” 이것으로 쓰노라.

을유년(1525년) 10월 10일 진양(晉陽)에서 강대수가 쓰다.


출처.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대야성

황강 건너에서 광경


합천읍 한가운데에 해발 90m 정도의 산으로 매봉산, 혹은 취적산, 또는 황우산이라고도 한다.

산 정상부에는 신라가 백제의 침공에 대비해 쌍았던 오래된 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야성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대로 신라 서부지역 전략적 요충지였다.

현재 대야성은 석벽 일부가 남아 있을 뿐 대부분 훼손되어 원형을 알아 볼 수 없다.


642년 백제군이 점령 한 이후에도 대야성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다.

경덕왕 4년인 920년에는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에게 함락되었고, 927년엔 고려 왕건에게 빼앗겼다가 이후 다시 견훤이 점령하였으며, 

936년 후삼국 통일 후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연호사

와우선사가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전사한 김품석. 죽죽을 비롯 장졸들과 백성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643년 황강변 대야성 기슭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극락전에 보관중인 신중탱을 뵈러 들렸으나, 제를 올리고 있어 발길을 돌렸다.

 

신중탱...출처/문화재청

합천 연호사 신중탱

 

"비단 바탕 위에 제석천과 권속들을 묘사한 탱화이다. 연호사에는 이 제석신중도와 함께 한 쌍으로 그려진 동진보살을 그린 신중탱 있었지만 지금은 이 신중탱만 남아있다. 그리고 현재 이 신중탱은 틀의 가장자리 본지本地들은 절단된 채 화면만 잔존하고 있는 상태이며, 또한 조성연대의 오랜 경과로 색채가 약간 변색되어 있지만 보존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중앙에 주존인 제석천을 가장 크게 먼저 배치한 후 10위의 권속들을 그려놓은 제석신중탱이다. 즉, 제석천은 정면관에 두 손으로 보상화를 든 채 의좌倚坐 형태로 앉아 있으며, 측면관으로 묘사된 권속들 중 일궁천자와 월궁천자를 제석천 앞의 좌우에 먼저 시립하게 한 후 주위에 주악 천인을 비롯한 천동,천녀가 에워싼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보살형태로 표현된 제석천은 무늬목이 표현된 좌대와 주색의 법피가 있는 등받이의자에 석록색 두광을 지닌 채 앉아 있는데 양손은 금박으로 처리된 보상화를 쥐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안면색을 옅게 칠한 후 눈과 입을 작게 표현하고 있으며 윤곽선은 주로 담묵으로 처리하고 있다. 주색과 석청색으로 채색된 법의 중 주색에는 금니로 국화문을 시문하고 있고 백색 바탕에 구름문이 시문된 군의의 무릎 부분에는 侈絹 장식이 있다.


두광에 일월관을 쓰고 홀을 지닌 일궁천자와 월궁천자는 수거의 대칭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의복 채색에서도 주색과 석록색을 서로 대비되게 채색하고 있다. 제석천 좌우의 천인들 중 앞쪽 두 천인이 당번幢幡을 쥐고 서있고, 그 다음 천인들은 천도복숭아와 석류를 공양하거나 비파와 생황 등을 연주하고 있으며, 천동과 천녀가 시선을 밖으로 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제석천 후면에는 간략하게 수묵산수화가 그려진 병풍이 펼쳐져 있으며, 여백에는 옅은 먹 등으로 구름처리하여 공간감을 자아낸 후 화면 상단 한 가운데에는 연꽃이 늘어뜨려져 있는 복장주머니가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가늘고 고른 필선들로 묘사된 이 신중탱은 필력이 아주 뛰어난 편이며 작게 표현된 제위의 이목구비도 거의 유사하다. 설채에서는 주색을 위주로 하여 석록색을 대비되게 사용하고 있고, 군데군데 금박과 금니 또한 많이 사용하여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화면 하단 중앙의 가장자리에 주색바탕에 묵서되어 있는 화기란에는 증명비구證明比丘와 화사畵師 등이 기록된 연화질만 적혀 있어 이 탱화가 언제 제작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연호사에 한 쌍으로 봉안되어 있었던 동진보살 신중탱의 화기에서 건륭乾隆 57년(1792)에 그렸음을 밝히고 있어 이 신중탱 역시 179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신중탱은 1741년의 통도사 신중도와 1753년의 선암사 신중도 및 1770년 해인사 신중도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특히 화기에서 밝힌 화사인 임평任平은 1770년의 해인사 신중도와 1775년의 통도사 팔상도와 현왕도 등을 그린 화사이기도 하다.


합천 연호사 신중탱은 18세기 후반에 조성되던 신중탱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더욱이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임평이라는 화사의 작품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합천군청 홈페이지에서 발췌 정리

 

아쉽게도

문화재청 홈페이지, 합천군청 홈페이지에는 탱화를 현호사 신중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연호사 煙湖寺

성파 하동주(星坡 河東洲.1869~1943) 작품


성파의 작품은  범어사를 비롯 경남 일원의 사찰과, 누각에서 많이 접하는 글씨이다.


 

등함벽루 숙연호사 登涵碧樓 宿烟湖寺 함벽루에 올라 연호사에서 묵다

조긍섭(1873년 ~ 1933년) 암서집

      
구래함벽승 舊來涵碧勝 함벽루 아름다운 경치에 옛적 이르렀다가 
금일식청간 今日拭靑看 오늘 다시 찾아와 반가운 눈 비비고 보네 
천지빙루형 天地憑樓逈 하늘과 땅은 함벽루 따라 멀리 펼치고 
풍연접수한 風烟接水寒 바람과 안개는 황강 물에 닿아 차운데 
종성추락저 鍾聲秋落渚 종소리는 가을 물가에 들리고 
수색효침란 樹色曉侵欄 수목의 빛은 새벽 난간에 비치네 
유차위기려 有此慰覊旅 이로써 나그네 시름 위로하니
휴가행로난 休歌行路難 <행로난〉 노래할 것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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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로난(行路難) :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읊은 악부가사(樂府歌辭)의 이름이다.
(출처/장달수의 한국학카페에서 발췌, 나의 한문 음역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20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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