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양군 108

함양...논개 묘역

논개 묘역 전북 장수 생가터, 진주 촉석루, 화순 충의사는 답사하였지만, 함양에 묘역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장수군의 의암사적보존회는 십수 년에 걸친 문헌 조사 및 구전 녹취 자료 등을 토대로 현장을 답사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및 향토사학자들의 고증을 거친 끝에 1976년에 이 묘를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함양군청에서 논개 묘역 성역화 사업을 시작해 봉분을 다시 만들고 비석을 세웠으며, 묘역을 단장했습니다. 묘역에는 의암사(義巖祠), 의병 추모비, 논개 묘. 최경회 가묘가 있으며, 묘에는 상석과 망주석을 갖추었습니다 의암사(義巖祠) 음력 칠월 칠일 추모제를 봉향한다고 합니다 의암 논개 반장 의병추모비(義巖論介返葬義兵追慕碑). 1989년 남강 하류에서 수습한 논개 시신을 ..

함양...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지장도. 감로왕도

법인사. 1959년 인근의 부자였던 허삼둘과 곽복달 등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극락보전 안의현청 부속 건물로 사용되었던 까닭에 사찰 규모에 비해 전각이 큽니다. 법당에 봉안중인 목조여래좌상은 어렵게 인연 지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진 촬영 불허, 두 번째는 문이 닫혀 있었고, 세 번째는 법회 중이어서 문 틈으로 뵙고 발길 돌렸었습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국가지정 보물 발원문을 통해 1657년 함양 덕유산 장수사(용추사) 은신암에 봉안되었으며, 조각승 조능(祖能)스님의 작품임이 밝혀졌습니다. 방형의 상호는 다소 작은 편이며, 이마에 백호, 나발, 중간 계주. 정상계주가 있고 삼도는 생략되었습니다 법의는 이중착의법, 별조로 조성된 손은 중품하생인입니다 지장탱(地藏幀). 문화재 자료 지장탱(地藏幀. 문화재청..

함양...일두 정여창 묘역

일두 정여창 묘역 선생의 묘와 뒤편의 정경부인 완산이씨 묘가 있습니다 답사 포인터가 아닌 까닭에 승안사지를 세 번째 들렸으면서도 바로 옆 묘역은 처음입니다. 남계서원(2019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6466 연산군의 스승이었지만 김종직 문하라는 연유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었으며 그곳에서 운명하였습니다. 또한 묘는 선생 서거 직후 일어난 갑자사화로 부관참시되었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방형 호석 묘비 차양(遮陽) 석주 상석 좌우를 덧붙였습니다 향로석 방형 호석에는 태극문양을 새겼습니다 뒤편에서 바라본 묘역 (향좌) 석양, 망주석, 문인석 (향우) 신도비 증(贈) 우의정(右議政) 문헌공(文獻公) 일두(一?) 정선생(鄭先生) 신도비명(神道碑銘) 가선대..

함양...승안사지 석불좌상. 삼층석탑

2208년. 2013년 글. 사진입니다 https://cafe.daum.net/_c21_/bbs_nsread?grpid=dRVf&fldid=DjZP&contentval=000bn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2343&searchlist_uri=%2F_c21_%2Fcafesearch&search_ctx=LrpNuZSucOsx.YncUoV2ej_tRpHqkOL1hFNwnK7pMwx2pUU9oYvq-CADq-lzJK_pvUKb7yb4c6zjTiqtpKnSCHEg_oRl7Tz79DVkFIB9q.z9GavCQnTmxGbKtu4ysG3O5wK_yUKoC7rvN.Sn8lOF1w9tQLMOjEt-fs4rHFVuiN84hT9pGeNOxvth1Uo3TlvRwVDxTQfqSqRTTS7wGv92..

함양...지리산 성모상

오도재 마고할멈상(2013년). 글속의 사진은 오도재가 아니라 지안재입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4004 백무동 천왕할매상(2020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7048 (초안.20211004) 지리산 성모상 지리산 성모는 천왕(天王), 천왕할매 ,마고(麻姑)할매,마야부인(摩耶夫人) 등의 속칭을 가지고 있는 지리산 수호 여신이다. 또한,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어머니인 선도 성모를 지리산의 산신으로 모시고 국가 수호신으로 숭상했다는 기록,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지리산 산신으로 모셨다는 기록, 불교에서는 석가여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지리산 산신으로 모셨다는 설화, 무속에서는 천신의 딸 마고 성모가 하늘에서 내려와 여덟..

함양...오도재 산신각. 산신비

오도재 산신각 https://blog.daum.net/12977705/8727298 (초안.20211004) 오도재는 함양읍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최단 코스로 구룡리와 마천면 구양리를 연결하는 해발 773미터 고개이며, 1023번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다. 함양읍에서 마천면의 지리산 칠선계곡과 백무동 계곡을 가려면 오도재를 넘어야 한다. 또한 남해와 하동의 물산들이 내륙으로 운송되던 육상 교통의 관문이었다. ​ 고갯마루에는 2006년 조성된 지리산 제일문이 거대한 성루처럼 서 있고 고개의 남쪽 사면에는 지리산 조망공원 휴게소가 조성되어 있으며, 산신비와 산신각. 장승이 세워져 있다. ​ 산신비(山神碑) 오도령수호신위(悟道嶺守護神位) 명문을 새긴 자연석에 세워진 비석이다. 옛날에 삼봉산과 법화산을 잇는 준령인..

함양...도마사지

도마사지(2020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7050 (초안.20211004) 도마사지(都馬寺址) 군자리 도마 마을에 있었던 절터 ​ 조선시대 지리산 유산기에 등재된 내용을 찾을 수 없는 사찰이며, 마천면 마을 유래 등에서도 단서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 "도만(桃滿)이 마을이라고도 부르는 도마(都馬)마을은 복숭아꽃이 만발한다는 뜻이다. 도마마을 뒤 한곡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복숭아 나무골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복숭아나무가 무성하였다 한다, 꽃피는 시기에는 이곳에서 떨어진 복사꽃잎이 한곡물에 가득히 떠내려 왔다고 한다. 행정구역 개편 시에 마천에서 으뜸가는 수도마을이라 하여 도마천이라고 하였다 하는데 그 후에 줄여서 도마라고 했다. 이 마을은 가시덤불과 수풀을 헤쳐..

함양...군자사지

군자사지(2020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7049 (초안. 20211004) 군자사지 君子寺址 마천면 군자리 467번지 이곳이 현재까지 알려진 군자사지의 금당 터이다.. 군자사의 창건과 폐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며, 문화재청 발간 한국의 사지에 짧게 기록되어 있다. ​ "사찰의 연혁은 이덕무(174l~1793)가 함양군 사근역 찰방 재직 중 1783년에 군자사에 머물 때 옮겨 적은 현판 사적기에는 당시 군자사에는 10여명의 승려만 있는 퇴폐(頹廢) 사찰이라고 하였다. 이덕무가 옮겨 적은 사적기는 1684년에 승려 형곡 복환이 기록한 내용으로 "신라 진평왕이 578년 왕위를 피해 이곳에 있을 때 태자를 낳고. 이후 환도하면서 이곳의 집을 사찰로 창건하여..

함양...추성리 부도(승탑)

추성리 부도(2017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5603 (초안.20211004) 옛 선인들의 유람록과 천령지에 등장하는 두류암에 위치에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는 것 같다. 즉, 마을 주민들이 두류암지로 칭하고 있으며, 부도와 축대 돌확이 유존하는 장소를 두류암지(頭流庵址)로 비정하는 주장이다. 한편으로는 선인들의 유산록에 기술한 지형과 현재의 주변 환경이 차이가 있어 부도와 두류암지는 무관하다는 견해이다. ​ 최근에 이영규 님이 부도 근처에 있는 의병장 석상룡 장군의 묘소가 두류암(頭流巖)에 있다는 세보(世譜)를 확인하여 두류암지(頭流庵址)와 부도는 무관한 지명으로 추정된다. 이런 오류는 산청 지리산 장당골 비로자나불 본래 위치인 관음암(觀音巖)을 관음암(觀音庵)으로..

함양...등구사지

등구사(2013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4005 (초안. 20211004) 등구사지(登龜寺址) 마천면 구양리 1217번지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등구사 옛터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소장 중인 등구사 사적기기(登龜寺事蹟記)에 의하면 등구사는 656년(신라 무열왕 2)에 창건되었고, 여말선초에 소실되었다가 1709년 행호 선사와 탄기(坦機), 자상(慈祥), 초익(楚益), 초학(楚學) 등의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 또한 등구사는 1489년 조선시대 김일손(1464~1498)의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에 실려있어 당시에도 사찰의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등구사가 오도봉 아래(登龜寺. 在悟道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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