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양군

함양...오도재 산신각. 산신비

임병기(선과) 2021. 11. 24.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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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재 산신각

https://blog.daum.net/12977705/8727298

 

(초안.20211004)

 

오도재는 함양읍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최단 코스로 구룡리와 마천면 구양리를 연결하는 해발 773미터 고개이며, 1023번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다. 함양읍에서 마천면의 지리산 칠선계곡과 백무동 계곡을 가려면 오도재를 넘어야 한다. 또한 남해와 하동의 물산들이 내륙으로 운송되던 육상 교통의 관문이었다.

고갯마루에는 2006년 조성된 지리산 제일문이 거대한 성루처럼 서 있고 고개의 남쪽 사면에는 지리산 조망공원 휴게소가 조성되어 있으며, 산신비와 산신각. 장승이 세워져 있다.

산신비(山神碑)

오도령수호신위(悟道嶺守護神位) 명문을 새긴 자연석에 세워진 비석이다.

옛날에 삼봉산과 법화산을 잇는 준령인 오도재에 성황당이 있었던 자리이며, 길손들이 장도의 무탈을 기원했던 곳에 2003년 11월 30일에 세웠다.

산신각

2006년 함양군, 함양문화원에서 세운 복원비가 있으며, 복원된 산신각에는 오도산령신지위(悟道山靈神之位)와 석조 산신이 봉안되어 있다.

한편, 오도재 산신각은 판소리 변강쇠가(가루지기 타령)에 등장하는 무대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며, 아래에 별도로 기술한다.

(전)산신각 복원비

가락국 제10대 구형왕은 서기 532년 신라가 침공하자 선량한 백성을 전쟁의 제물로 삼을 수 없다 하여 나라를 신라에 양국(讓國)하고 9만 대군을 거느리고 함양의 제한역(蹄閑驛) 아래 와서 머물렀다. 그리고 오도재 너머 촉동에 대궐터를 잡아 역사(役事)를 시작했으나 적을 방어하기 어려운 지형이라 칠선 계곡으로 들어가 추성(楸城)을 쌓고 피란하였다. 그때 9만 대군이 머물렀던 곳을 대군지(大軍地)라 하며 구만동(九萬洞)이란 마을이 형성되었고 활개미란 곳은 활을 쏘며 무술을 연마했던 곳이다. 촉동에는 빈대궐터가 있고 추성에는 석성과 대궐터, 파수대, 뒤주터가 등 옛날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곳 오도재는 마천, 하동, 구례로 통하는 고갯길이었는데 구형왕후인 계화부인이 올라와 제단을 쌓고 망국의 한과 선왕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로부터 성황당이 생기고 지나가는 길손이 기도하고 주민과 무당들이 지리산의 천왕신을 모시고 제를 지내던 곳인데 퇴락하여 이를 복원하고 비를 세운다.

산신비

방형 기단 위에 비신을 세웠으며 오도산령신지위(悟道山靈神之位) 명문을 새겼다.

산신

오도령 산신은 우리가 익히 인지하는 소나무 아래 호랑이 또는 표범을 무릎 곁에 두고 앉아 있는 산신이 아니다. 오늘날 어린이에게 인기 있는 텔레토비 모습에 호랑이를 머리에 얹은 국내의 유일무이한 형상이다. 삼불사의 8 산신상과 더불어 오도재 산신은 매우 독특한 함양 마천 지방의 민속신앙이라 하겠다.

장승(벅수)

장승은 사찰, 마을 동구, 고갯마루 등에 위치하며 경계, 이정표, 벽사 기능을 가진다.

오도재 장승은 고갯마루 성황당 근처에서 길손의 무사한 여행, 민초들의 기자 신앙의 대상으로 조성되었을 것이다. 또한 산신각과 더불어 가루지기 타령에 등장하는 장승의 본향이다.

오도재 산신각과 변강쇠가(가루지기 타령)

변강쇠가는 변강쇠타령, 가루지기타령, 횡부가(橫負歌)로도 불리는 판소리 열두 마당에 들어 있던 작품이다. 송만재(宋晩載)가 쓴 관우희(觀優戱)(1843)와 이유원(李裕元)이 쓴 관극팔령(觀劇八令)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실전(失傳) 판소리 일곱 마당 가운데 유일하게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 선생에 의해 판소리 사설로 정리된 작품이다

최근까지 가루지기 타령의 배경을 두고 남원시와 함양군이 서로 자기네 지역이라고 주장해왔으나 2007년 함양군이 판소리에 등장하는 지명이 함양 지역임을 밝힌 이후에는 옹녀와 변강쇠의 지리산 정착지가 함양군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네이버 지식백과에 실린 내용에 의하면 가루지기 타령에 등장하는 등구, 마천, 백모촌 등의 지명은 함양군 마천면 일원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불 때인 장승이 대방 장승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힐 때 “소장(小將)은 경상도 함양군에서 산로(山路) 지킨 장승”이라고 밝히는데, 여기에 ‘경상도 함양군’이라고 명확히 밝혀져 있다. 또 옹녀가 강쇠가 병이 들었을 때 “함양 자바지 명의(名醫)란 말을 듣고”라는 대목에도 ‘함양’이라는 지명이 명확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변강쇠가 지리산에 나무하러 갈 때, “등구 마천 백모촌에 여러 초군(樵軍)아이들이 나무하러 모여와” 있었다. 그런데 그 ‘마천’은 현재 함양군 ‘마천면(馬川面)’을 가리킨다. 그리고 ‘등구’는 오늘날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九楊里) ‘등구(登龜) 마을’ 일대를 가리킨다. 또한 ‘백모촌’은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白武洞)’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이 되기 이전 이름이라 한다. 또 변강쇠가 뽑은 장승이 서 있던 곳도 ‘등구 마천 가는 길’로서 앞과 같은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원래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碧松寺)의 목장승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그랬기에 아마도 판소리 창작자들이 그 장승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의 무대를 설정했으리라 본다.

이러한 고증을 바탕으로 현재 경남 함양군은 지리산 조망공원(眺望公園) 안에 ‘성문화공원(性文化公園)’을 만들어, 변강쇠를 주제로 하는 장승을 비롯한 성문화 시설물을 조성해 놓고 있다."

함양 오도재

 

지리산 제일문

2003년 개통

 

벅수

 

산신각

제일문 옆에 복원되어 있습니다.

 

오도산령신지위(悟道山靈神之位)

 

산신

석조 산신이며, 호랑이를 무릎 아래가 아닌 머리에 올렸습니다.

 

산신비(山神碑)

오도령수호신위(悟道嶺守護神位)

옛날에 삼봉산과 법화산을 잇는 준령인 오도재에 성황당이 있었던 자리이며, 길손들이 장도의 무탈을 기원했던 곳에 2003년 11월 30일에 세웠습니다

 

202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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