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창원시 73

마산...경남대 채학영 철비

경남대학교 박물관 뒤편 야외전시장 철비 1기.석비 1기. 묘지석 2기, 문인석 2기 철비와 석비 등은 창원대호부터이었던 창원시 의창구 중동에 도호부사 선정비를 비롯14기가 있었으나, 도시개발로 1975년 마산시에서 경남대학교에 기증하였다.그후 2007년 창원시의 요청에 의해 선정비 11기를 돌려주어 현재 용지공원에 있으며, 남은 비석은 2008년 부터 현재 위치에 전시 하고 있다. 문인석은 묘소앞의 석물로 보이며,철비 옆에는증 가선대부 한성 좌윤 겸 삼도 부총관 동래 정일우(贈嘉善大夫漢城左尹兼三都副摠管東萊鄭日佑)’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정공 한적(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鄭公漢迪)의 비석이 있다.이들 비석의 안태고향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귀부, 이수가 생략된 장방형이다. 문인석 선상 정세군 균역 영세 불망..

마산...진해현 동헌 정익행 철비

진동 비림의 철비를 찾아 왔더니 그참 예전에 답사했던 진해동헌 앞이다. 아직 그럴 연세(?)가 아닌데. 하긴 그때는 철비는 물론 비석에는 관심이 크게 없을 때였다. 진해현 객사가 왜 마산 진동면에 소재할가? 鎭東面(진동면)은 조선시대 러시아가 현재의 마산을 租借(조차)해서 해군 극동함대 기지로 사용할 시점에 일본은 러시아 함대의 길목을 잡기 위해 군항지를 진동(당시 : 진해만)에서 웅천(現 진해)으로 옮긴 후, 당시 鎭海縣(진해현) 관할의 동면, 북면, 서면 중 동면을 "鎭東" (진동)으로 이름지어 선포함에 따라 "鎭東" (진동)이라고 불리워지게 됐다고 한다. 다시말하면 , 일제가 자기 해군기지를 위해 진해라는 이름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동행한 누들스의 어머니께서는 마산시 진동․진북․진전면을 삼진(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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