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려산 광산사 일주문 새벽부터 시작된 부도 순례의 마지막 답사지
피곤이 엄습하고 날씨마져 흐릿하다.
현판은 2009년 백헌白軒 서병채徐炳彩님의 작품이다.
일주문 향좌측 탑신을 만행 떠나 보낸 부도재와 부도 2기 부도가 객을 맞이한다.
대석과 탑신석이 별개 부재로 탑신석의 이끼로 인해 다른 부도 처럼 보인다.
대석 상단에는 얕게 연화문이 음각되어 있고 상부에 공을 두어 탑신을 끼워 올렸다.
종형 탑신석 상부에는 괴임을 두고 연봉형 보주를 표현하였다.
탑신이 결실된 부도 대석
대석의 크기와 외형으로 보아 거의 쌍둥이 처럼 닮은 부도가 아니었을까?
광산사 665년(문무왕 5) 원효대사와 중국의 승려 은신이 함께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후의 사적도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1799년(정조 23)의 범우고에 사찰이 유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1852년(철종 3) 승려 율암치흡(栗庵致洽)이 찬술한 대웅전 창건기에 ‘1848년(헌종 14) 박계준이 돌아가신 부모의 극락왕생을 위해 극락전을 중건하였고, 1852년 대웅전을 중수하여 소조불상을 봉안하였으며, 이때 극락전을 상법당(上法堂), 대웅전을 대법당(大法堂)이라 칭했다’고 한다.
1872년(고종 9) 율암치흡이 찬한 광산사 중건기에는 ‘1869년 승려용호를 중심으로 이듬해 극락전을 중창하고, 삼존상을 봉안했다’고 한다. 1887년(고종 24) 승려 법전이 찬한 극락전 창건문에는 ‘1870년(고종 7)을 전후하여 사찰이 매우 쇠락해졌는데, 창건문을 짓던 그해 봄 승려 대성(大成)이 모연하여 극락전을 짓고 단청을 했다’고 한다.
극락전
목조아미타 삼존불 주불인 아미타불과 좌협시 관음보살은 근세에 조상한 불상이며 우협시 대세지보살은 조선후기에 봉안한 보살상이다.
아미타불
좌협시 관음보살
우협시대세지 보살.조선후기 조성 방형의 상호, 머리는 화염 보주와 화문으로 장식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발은 어깨까지 널어 뜨렸다. 이마가 좁고, 볼은 도톰하다.눈은 수평으로 길고, 코는 오똑하다. 입에는 미소가 보이며,고개는 약간숙이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며 수인은 중품하생이다. 양손에는 연꽃 가지를 쥐고 있다. 착의는 변형 통견식으로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입고 그 위에 걸친 대의는 오른쪽을 반쯤 덮어 겨드랑이 쪽으로 빼어 복부를 돌아 왼쪽 어깨로 넘겼다. 또한 왼팔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대의의 주름은 볼록하게 조각되어 사실성을 더하며, 왼쪽 무릎 위 소매 자락은 무릎을 감싸듯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형태이다...디지털창원문화대전 발췌
극락전 향좌측 팔각원당형 석등 대석과 간주석이 옛 광산사의 영화를 대변하고 있다.
고려시대 석등재로 추정되며 복원한다면 광산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 자리잡을 것이다. 사찰 품격이 배가되는 그런 유물...
팔각하대석
간주석
긴 하루 나홀로 만끽한 즐거움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행위...
그 역시 내 욕심이리라.
2016.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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