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442

태안...남문리 오층석탑

여러 번 순례한 기억이 있는데. 2007년에 간단하게 올린 글만 있습니다. 당시에는 태어나서 처음 사진을 찍었던 초기여서 똑딱이로 몇 장 찍었는가 봅니다. 남문리 오층석탑 https://blog.daum.net/12977705/4779021?category=5173 기단부 3단의 지대석(?) 지대석 위에 2단 굄(?) 본래의 모습인지, 후보물인지, 하층 기단 갑석이 망실된 건지... 통돌로 된 중석 2 매석으로 훼손이 심한 갑석에는 부연이 생략되었고, 일석으로 높은 1단 굄을 조출 탑신부 별석의 옥개석, 탑신석이 비교적 온건하게 남아 있습니다. 탑신석의 우주는 마모되어 희미합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급하지 않으며, 1~3층 4단, 4~5층 3단의 층급받침이며, 절수구가 있습니다 상륜부 5층 옥개석과 ..

서산..도비산 동사

동사 도비산 부석사 반대편에 위치하며, 창건 연대를 비롯하여 사적은 전하지 않습니다. 1619년(광해군 11) 한여현(韓汝賢)이 편찬한 『호산록(湖山錄)』에 승려들이 동사의 그윽한 정취를 찾아왔다는 내용으로 보아 17세기 이전에 지어진 사찰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현재는 법당과 작은 요사만 있으며, 스님 혼자 계셨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석천암에서 분기된 임도를 따라 제법 진입하여야하며, 주민들이 등산 코스로 즐겨 찾는 것 같지만, 경사가 심하며, 구절양장의 산길은 차량으로도 만만치 않습니다. 석천암 https://blog.daum.net/12977705/8724570?category=5164 동암(東庵) 성지용이라는 분은 알 수 없지만, 임자 초사월팔일(壬子 初四月八日) 간지는 화재 후 복원한 1..

서산...일제강점기 황국신민서사지주

나라사랑공원 황국신민서사지주 공원 한쪽, 오가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드러누워있습니다 황국신민서사지주(皇國臣民誓詞之株) 현장 안내문에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되어 있으나 하단 명문에 대한 기록이 누락되어 아쉽습니다 즉, 안내문에는 세운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명문만 확인하면 아동용, 성인용 구분이 되며, 설치장소는 유추 가능합니다 현장 안내문 신민서사 1. 아동용 1) 私共ハ、大日本帝國ノ臣民デアリマス[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2) 私共ハ、心ヲ合ワセテ天皇陛下ニ忠義ヲ盡シマス[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3) 私共ハ、忍苦鍛錬シテ立派ナ強イ國民トナリマス[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2. 일반용 1) 我等ハ皇國臣民ナリ、忠誠以..

당진...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석탑부재

안국사지 2010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145 2010년 안국사지석조여래삼존입상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안국사지 석불입상의 조성시기는 2003년 시·발굴 조사 시 출조된 태평(중국 요나라의 성종대 연호 太平으로 추정)으로 보아 고려 현종 12~21년(1021~1030)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배례석 우리나라의 배례석(충청,호남) https://blog.daum.net/12977705/8727054 팔찌 예전에는 놓쳤을까? 본존불 연화좌 좌협시 보살 보관과 상호 파편이 올려져 있습니다 목걸이, 완천, 팔찌 착용 우협시 보살 완천,팔찌 착용 오층석탑 훼손이 심한 기단부 갑석의 부연은 보일 듯 말 듯 초층 몸돌과 옥개석 4매만 남아 있습니다 탑신석에 비..

당진...안국사지 매향 암각

안국사지 오늘은 석불도 뵙고 겸사 배바위의 매향암각 확인하러 순례하였습니다 매향(埋香) 현세에서 질곡의 삶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영원한 메시아인 미륵 하생을 기원하며, 그날이 오면 용화법회에 공양할 침향을 마련하여 매향하는 제의입니다. 주로 바다닷가 주변에 분포하며 이러한 매향을 바위에 기록한 것을 매향암각, 매향비라고 합니다. 아래는 공주대학교 이해준 교수님의 글입니다 매향 의식에 담긴 새 시대의 기원 천 년의 세월 넘어 미륵 세상을 기다리다. 민중의 염원이 담긴 '매향의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의 탈출구, 미륵신앙 천년의 신비, 침향의 역사 매향(埋香)이란 과연 무엇일까? 천년 전의 우리 조상들은 무슨 연유로 향을 갯벌에 묻고 천 년 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살랐던 것일까? 또 당시 그들이 느꼈을 현실..

당진...채운포 석교비

채운포 석교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채운리 탑골사지 인근입니다. 채운리 탑골사지(2010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3142?category=5168 채운포 석교비.1688년 영랑사 승려들이 축조한 채운포 돌다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본래 위치는 전하지 않으며, 도시 개발로 인해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이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본래는 귀부와 이수를 갖춘 비석이며, 현재는 비신만 남아있고, 기단부는 후보물입니다. 비신 상단의 볼록한 부분은 이수를 끼운 촉으로 보입니다. 비신에 새긴 글자는 육안 식별이 쉽지 않습니다. 다리 이름과 관련한 전설이 디지털당진문화대전에 실려 있습니다 "옛날 채운이란 마음씨 착한 아가씨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바닷가에서 여관업을 하며 살았다..

당진...영파산 영랑사

2010년 30분 이상 기다리다가 끝내 대우전 참배를 못하고 발길 돌렸었습니다. 이후에도 근처를 두어 차례 지나갔지만 이제 인연 지었습니다. 사시마지에 분주한 보살님에게 옛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개의치 말고 참배해도 무방하다며 웃음 지으십니다. 영랑사(2010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3144?category=5168 대웅전 2단 축대 위에 자리 잡은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계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정면의 어칸과 협칸의 넓이가 같으며, 사 분합 띠살문을 달아 민가처럼 소박합니다 측면에는 방풍널을 달았고, 내부는 연등 천정입니다. 측면 띠살문 창살 연등천장, 파련 대공 보궁형 닫집 불단 후벽 안쪽으로 들이고, 뒷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불단 후벽 목조 아미타여래좌..

당진...삼월리 회화나무

천년기념물 제317호 당진 시청,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중종 재위 시 좌의정을 지낸 이행이 중종 12년(1527) 내려와 집을 지으며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서 심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는 다르게 등재되어 있습니다 "나무의 나이는 700년 정도로 추정한 바 있으나 근거가 희박하고,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용제(李容濟)가 1647년(인조 25) 이곳 삼월리에 내려와 집을 지으면서 심은 것이라는 설이 신빙성이 있다. 개인집 뜰 앞에서 자라는 것으로 6년 전에 벼락을 맞아 쇠약해졌으나 다시 회복되었다." 이행(네이버 백과사전) https://search.naver.com/p/crd/rd?m=1&px=426&py=1296&sx=426&sy=496&p=h71RzwprvmZss..

아산...백련사 석불상

고룡산 백련사 멀리 서해대교가 조망되는 절집입니다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한국의 사찰문화재에 등재된 석불 편을 찾아왔습니다. 석불. 문석인. 문석인 머리 석불 불두가 결실되었으며, 스님께서 별도 보관하고 계십니다 석불(사진. 한국의 사찰문화재) 불두가 상반신가 비슷한 크기입니다 통견의 법의, 삼도 표현, 양감이 거의 없는 두 손은 가슴에 두었고, 손가락은 선각으로 새겼습니다. 하반신과 상반신을 구분하여 조성하여, 상반신을 하반신에 끼운 것처럼 보이지만 불분명합니다. 백련사 앞 경작지에서 발견된 불상이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였습니다. 자료에는 고려시대 불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시대 하강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문석인 무인상이며, 원위치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문석인 머리 석불 복원이 어렵다면 불두를 접합하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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