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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442

서천...지현리 삼층석탑 탑신석 1기와 옥개석 2개가 망실된 오층탑으로 추정되며, 기단 갑석 이하는 매몰된 상태입니다 옛 사진에는 일석으로 조성된 노반과 복발이 없었으며, 최근에 발굴된 것 같습니다 지현리 삼층석탑(2010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3109?category=5170 지정명칭은 지현리 삼층석탑입니다. 그러나, 갑석 이하 매몰, 탑신 1, 옥개석 2개가 망실된 오층 석탑으로 추정 기단 갑석 물매가 없으며, 성혈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초층 탑신석 전층 탑신석에 우주 모각 순화 2년(淳化二年)명문을 통해 991년에 조성된 고려 초기 탑으로 확인되었습니다. “淳化二年 歲次辛卯二月 日 爲國發願造塔記 時戶長 見鄕長 見眞長 信元長 潤別 長 斤久長 深 梁立 仕凉己 驅奉僧 親見紀 全禮紀 呂.. 2021. 6. 14.
서천...봉서사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 좌상 봉서사(鳳棲寺) "한산면 호암리 건지산(乾芝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末寺)이다.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며, 1799년(정조 23)에 전국의 사찰에 관한 현황을 기록한 『범우고(梵宇攷)』에 이 지역에 봉서암(鳳棲菴)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8세기 후반 경에는 사찰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문신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 한말의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충남 서천 출신의 시인 석초(石艸) 신응식(申應植, 1909~1975) 등이 머물며 공부하였다고 한다."(다음 백과 발췌) 은초(隱樵) 정명수(鄭命壽,1909~2001)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 "아미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 대세지보살이 협시하는 아.. 2021. 6. 14.
서천...수암리 삼층 석탑 예전에는 몰랐던가? 보면 볼수록 흥미로운 석탑입니다. 오류도 있지만 2010년 글 그대로 가져옵니다. https://cafe.daum.net/_c21_/bbs_nsread?grpid=dRVf&fldid=DjZP&contentval=000MN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387&searchlist_uri=%2F_c21_%2Fcafesearch&search_ctx=LrpNuZSucOsx.YncUoV2ej_tRpHqkOL1hFNwnK7pMwx2pUU9oYvq-CADq-lzJK_pvUKb7yb4c6zjTiqtpKnSCHEg_oRl7Tz79DVkFIB9q.z9GavCQnTmxGbKtu4ysG3O5wK_yUKoC7rvN.Sn8lOF1w9tQLMOjEt-fs4rHFVuiN84hT9pG.. 2021. 6. 13.
서천...지석리 삼층석탑 저 앞쪽에 철로가 없었던가? 진입로도 넓어지고 주변 환경도 나아진 것 같은데, 고향 동구의 사라진 왕버들을 떠올렸으니... 옛글(2010년) https://cafe.daum.net/_c21_/bbs_nsread?grpid=dRVf&fldid=DjZP&contentval=000ML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385&searchlist_uri=%2F_c21_%2Fcafesearch&search_ctx=LrpNuZSucOsx.YncUoV2ej_tRpHqkOL1hFNwnK7pMwx2pUU9oYvq-CADq-lzJK_p_TYbLZznvSbg3qy8mowcMPv8ZrH3.rqFy3398qiTWLIUHiG1zWYsDiM8bZzuN-Hg6ikHx5NE_e7XqRBYsK1wrdarSJf.. 2021. 6. 13.
서천...비인 청석교 비인 청석교 비인 초교 앞을 흐르는 지장천에 가설되었던 다리 현재는 상판만 남아 있습니다. 검푸른 빛 때문에 청석교로 불린 것 같으며, 정확한 설치 연대는 전하지 않습니다 숱한 사람들의 왕래의 흔적이 반질반질하게 남아 있습니다. 한켠에는 생채기를 아스콘으로 성형한 모습입니다. 최고의 간선도로이었을 그 옛날. 이제는 뒷방 늙은이가 되어 어느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잊힌다는 것은 서글픈 일인데... 우리나라의 옛다리 http://blog.daum.net/12977705/8726937 비지정이지만 등교하는 꿈나무들을 위해 작은 표지석 하나라도 세우면 좋을 텐데 그리고 소헌 님, 물안개 님과 20여 개월 만에 해후 서천 특산품과, 소곡주(앉은뱅이 술)로 회포를 풀었습니다. 격하게 환영해준 두 분에.. 2021. 6. 12.
서천...성북리 오층석탑 성북리 오층석탑 나에게는 아직도 비인리 오층석탑이 익숙합니다. 30여 년 저편, 답사 초기 무렵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그때도 오늘처럼 석양빛이 고왔었습니다. 2010년 글이 남아 있습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112?category=5170 성북리 오층석탑 이제는 답사기를 올릴만한 감성은 언강생심, 현장 안내문 같은 무미건조한 글에 익숙한 탓에 하고 싶었던 말이 입가에 맴돌기만 합니다. 백제 계열의 특징을 고루 갖춘 고려 탑입니다. 단층 기단, 옥개석 보다 좁은 기단 갑석 평박한 옥개석 옥개석의 부드러운 전각의 상하반전 옥개석을 관통한 풍탁공 옥개석의 두텁고 넓은 내림마루.... 그리고 단층 기단의 오층석탑의 4층 옥개석 결실 오층 탑신석 상부의 옥개석 층급받침 .. 2021. 6. 12.
보령...장현리 귀학송 귀학송 청라면 장현리 70-2 동계(東溪) 이산광(李山光, 1550~1624)이 광해군의 정치에 회의를 느껴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낙향하여 은거하며, 시와 글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지은 정자가 귀학정(歸鶴亭)이었으며, 6대손인 이실(李實, 1777~1841)이 소나무를 심었다고 전합니다 >동계 이산광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동생이며, 토정 이지함의 조카입니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서로 다른 두 뿌리에 6 가지로 뻗어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일명 ‘육소나무’라 불린다"라고 했지만 한 뿌리>에 5 가지입니다, 오류가 아니라면 사진 좌측에 보이는 소나무도 같은 나무뿌리에서 뻗어나가 자란 나무일 것입니다. 2021.05.12 2021. 6. 11.
보령...산수동 소나무 산수동 마을에서 방솔나무 또는 방솔령(靈)으로 부르는 수령 500년이 넘은 소나무입니다. "둘레가 270㎝에 지상 70㎝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동쪽으로 8~9m 뻗어 나갔으며 그 높이는 170~230㎝이다. 골고루 퍼진 가지가 지면과 거의 평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문화재청) 예부터 영험이 깃든 나무이기 때문에 가지를 꺾거나 나무에 해를 입히는 사람은 병을 앓게 되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속설이 전하며, 매년 산수동 신천 강씨(信川康氏)문중에서 동제(洞祭)를 모신다고 합니다. 2021.05.12 2021. 6. 11.
보령...도미부인 정절사 정절사 "백제 개로왕 때의 도미에게는 아름답고 부덕이 있는 부인이 있었는데, 개로왕이 그녀를 궁녀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개로왕이 도미에게 그녀를 시험하려는 내기를 하였으나 도미의 아내가 교묘하게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에 속은 것을 알게 된 개로왕이 크게 노하여 도미에게 죄를 씌어 장님을 만들어 작은 배에 태워 띄워 보냈다. 도미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로 강가에서 통곡하다가 빈 배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고구려 땅에 이르러 잘 살게 되었다"(다음) 도미공 ,도미부인 합장묘. 2021.05.12 2021. 6. 11.
보령...선림사 목조여래좌상.목조관음보살좌상 선림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585년 담화(曇和)가 창건하였으며, 이후 불적은 전하지 않으며, 1860년(조선 철종 11) 박행원이 산신각을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선림사는 정절을 상징하는 도미부인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백제 개로왕 때의 도미에게는 아름답고 부덕이 있는 부인이 있었는데, 개로왕이 그녀를 궁녀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개로왕이 도미에게 그녀를 시험하려는 내기를 하였으나 도미의 아내가 교묘하게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에 속은 것을 알게 된 개로왕이 크게 노하여 도미에게 죄를 씌어 장님을 만들어 작은 배에 태워 띄워 보냈다. 도미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로 강가에서 통곡하다가 빈 배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고구려 땅에 이르러 잘.. 2021. 6. 11.
보령...충청수영성, 영보정 충청 수영성 사적 제501호 충청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수영(水營)의 성 예전에는 영보정(永保亭), 관덕정(觀德亭), 대변루(待變樓), 능허각(凌虛閣), 고소대(姑蘇臺)와 옹성(甕城), 4대문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4대문인 진남문(鎭南門), 만경문(萬頃門), 망화문(望華門), 한사문(漢舍門)은 없어지고, 서쪽 망화문터의 석문(石門)만 남아 있습니다. 수영성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 2021. 6. 10.
홍성...기생 만향 무덤 만향 묘 홍동면 원천리 중원 마을 무지개말랭이에 위치합니다. 우거진 잡초 비석, 상석, 망주석 높지 않은 봉분... 최근에 소설, 스토리텔링, 연극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함흥 기생 만향의 묘입니다. 함흥 기생 만향 결론적으로, 춘향전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만향은 애달픈 주인공으로 남습니다. 조선 숙종 조, 홍성 출신으로 함경도 감찰사로 부임한 황흠의 아들인 황규하와 함흥기생 만향과의 러브스토리입니다. 아버지 황흠이 한성판윤 발령으로 황규하가 떠나면서, 만향은 오랜동안 수절하다가 우물에 투신하지만 미수에 그칩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양으로 님을 찾아 갔지만, 황규하가 홍주골로 낙향한 후였습니다. 또다시 홍성으로 찾아왔지만 안타깝게도 황규하는 고인이 되어, 그녀는 황규하 산소 앞에서 시묘살이를 하다가 ..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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