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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장흥군

장흥...참봉 위계상 철비

by 임병기(선과) 2020.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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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 마을.

유치면 대천리 550-33번지

마을 끝 전각 안에 있습니다.

 

위계성 철비, 숙부인 청주 김씨 창선비

 

통정대부 전 참봉 위 공 계성 시혜불망비(通政大夫 前 參奉 魏 公 啓性 施惠不忘碑)

1916년

 

아래 목포대학교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철비는 장흥댐 건설로 단산마을에서 현 위치로 옮겨 온 듯합니다.

또한, 위계성의 세금 대납, 구휼 시혜는 1913년, 철비는 1916년에 세웠으며, 비각은 1923년에 건립하였습니다.

옆에 있는 숙부인 석비는 위계성의 부인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위계성이 대납해준 70여 가구의  연부 월세(烟賦月稅)는 담배에 부과된 세금인가요?

 

장흥군 탐진댐 수몰지역 문화유적지표조사 보고서

1998년. 02~08월

목포대학교

 

魏啓性施惠碑閣 및 碑文
· 위치 : 有治面 丹山里 단산 마을 23번 국도 옆
· 연혁

1913년(계축) 3월 15일에 제작된 [通政大夫前參奉魏公啓性賑恤不忘碑]란 제목의 현판이 비각의 뒷내면 벽에 걸려 있다. 또 비각 안에 1916년(병진년)에 姜義馨이 짓고 1924년(갑자년)에 柳珏羲가 쓴 [施惠碑序]와 魏啓性의 三從弟 魏啓玟이 1923년(계해년)에 짓고 1924년(갑자년)에 藥圃 魏世良이 쓴 [通政大夫前參奉魏公啓性施惠碑閣上樑文]이 아래 위로 나란히 현판으로 걸려 있다. 위계민은 영귀정을 세운 인물이다.

'시혜비서'에 따르면 冠山巨族 魏德의 후예인 위계성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70餘家의 烟賦月稅를 대신 내주고 진휼도 해주자 마을 사람들이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碑를 鑄造하여 세워 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通政大夫前參奉魏公啓性施惠碑]는 철비로 되어 있고, 1916년에 세워졌다. 위계성의 진휼 행위는 1913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각은 1923년에 세워졌다. 철비 옆에는 또 하나의 석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1925년에 만들어진 [淑夫人淸州金氏彰善碑]이다.

· 유적 현황

비각의 현액은 [施惠閣]이고 정면 측면 각 1칸에 팔작지붕 건물이다. 시혜각에 들어가는 문의 이름은 [永敬門]이다. 아담하고 운치 있게 꾸며진 보기 좋은 비각이다.

철비(높이 147㎝, 가로폭 30㎝, 세로 폭 4㎝)의 앞면에는 "通政大夫前參奉魏公啓性施惠不忘碑"라 써있고 그 좌우에 "斂而不給 飢而不食 減睹助之 出粟賑之"를 두줄로 나누어 썼다. 뒷면에는 "丙辰(1916년) 五月 日 有治丹山村 竪"라고 되어 있다.

석비(높이 137㎝, 가로폭 42.5㎝, 세로폭 12.5㎝)의 앞면에는 "淑夫人淸州金氏彰善碑"라는 제호를 중앙에 두고 좌우에 역시 두줄로 "克紹夫德 万口同休 捐金補戶 一片堪語"라 되어 있고 뒷면에는 "乙丑(1925년) 六月 日 有治面立"이라 되어 있다.

 

염이불급 斂而不給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감도조지 減睹助之  감면(대납)해주었다.

기이부식 飢而不食  기아에 굶지 않도록

출속진지 出粟賑之  곡식을 출연하여 구휼하였다.

 

(한문 해석, 의역은 개인적인 판단임)

 

비수

 

병진 오월 일 유치 단촌 수(丙辰 五月 日 有治 丹村 竪)

1916년

유치면 단촌리 주민들이 세움

 

 

 

숙부인 청주김씨창선비 淑夫人淸州金氏彰善碑

 

극소부득 克紹夫德  지아비의 뜻을 이어

연금보호 捐金補戶  자금을 출연하여 가가호호에 도움 주었다.

만구동휴 万口同休  많은 집이 함께 혜택을 누려

일편감어 一片堪語  그 선행을 잊지 않도록 비석에 새긴다.

 

(한문 해석, 의역은 개인적인 판단임)

 

乙丑 六月 日 有治面立

1925년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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