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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장흥군

장흥...부사 김재헌 철비

by 임병기(선과) 2020.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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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면 해창리 113번지

한적한 어촌 마을에 철비와 석비가 유존하는 까닭은?

 

해창리 海倉里

조선 중엽 세곡을 수집하여 선박으로 수송한 큰 항구이었습니다.

해창은 장흥의 삼창(사창.남창.해창) 중 하나로,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에서 지명이 유래하였으며, 비는 해창 또는 세곡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사 김 공 재헌 영세불망비 府使 金 公 在獻 永世不忘碑

동치 삼년 同治 三年

1864년

 

김재헌 金在獻

평택시사에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으며,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864년 1월 15일까지 장흥부사를 역임하였습니다.

 

평택시 史

김재헌 金在献(1799∼1882)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문징文徵이다. 1831년 진사를 시작으로 1834년 영춘현감永春縣監, 1851년 금성현령金城縣令, 1857년 금산군수錦山郡守를 역임했다. 1874년 조사오위장曹司五衛將, 호조참의와 공조참판에 올랐다. 묘는 청북면 토진리 오봉산에 있다.

 

승정원일기

고종 1년 갑자(1864) 1월 15일

이천 부사(利川府使) 김증현(金曾鉉)과 장흥 부사(長興府使) 김재헌(金在獻)을 서로 바꾸었다.

 

명문

(개인적 해독입니다)

 

일심감명  一心鑑明

삼정형평  三政衡平

 

백리남토(?)  百里南土

영전송O      永傳頌O

 

한결같이 투명하고 밝은 마음으로

삼정을 올바르게 징수하여

 

멀리까지 치적이 알려졌으며

이에 영원히 공을 칭송하고자 비를 세운다.

 

***최창용 선생님 의견

위 O를 송성으로 해석하셨습니다.

송성頌聲
공적(功績)이나 인덕(人德)을 기리어 찬양하는 소리. 또는 태평 세월을 노래하는 소리란 뜻

 

일심감명  一心鑑明

삼정형평  三政衡平

 

백리남토(?)  百里南土

영전송O      永傳頌O

 

 

 

동치 삼년 同治 三年

명문이 찍히지 않은 까닭?

 

멀치감치 나의 행동을 지켜보던 할머니 2분

철비 뒷면 사진을 찍기 위해 당집 담장에 기대었더니 " 들어가지 마세요!"라며 크게 외친다.

 

(조금 전 상황)

네비 안내로 도착한 곳은 마을 뒤쪽이었다.

개 한마리 보이지 않은 한적한 어촌 마을

낯선 놈이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걸어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철비를 탐문했더니 극도로 경계하며 없다고 한다.

눈에 들어온 당집을 가르키며 저기 있군요 했더니, 그때부터 꼬치꼬치 취조하듯 질문 공세 후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1,990년대

마을 이장님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며 반가운 표정으로 산 중턱에 있는 문화재까지 직접 안내해주었는데,

어느 순간 부터 문화재 탐문하면 없다는 답이 되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가  많은 얼치기 답사객 들이  베스트셀러 한 권 들고 막무가내로 전국을 쑤시고 다닐 무렵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철비(목록,사진)

http://cafe.daum.net/moonhawje/MebK/321?q=%EC%9A%B0%EB%A6%AC%EB%82%98%EB%9D%BC%EC%9D%98%20%EC%B2%A0%EB%B9%84(%EB%AA%A9%EB%A1%9D%EA%B3%BC%20%EC%82%AC%EC%A7%84)

 

석비

부사 김승집(府使 金升集)

1,891년 부임

석비

부사 OOO

 

 

철비. 선정비가 담장에 끼인 까닭?

무지한 민초 들의 만행이 결코 아닙니다!

 

믿음 입니다.

마을 당집을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동민들에게는

사찰의 사천왕상이며, 마을 어구의 벅수이지요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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