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장수군 14

장수...용계리사지 석탑부재

경전암 장수읍 용계리 1167-1 스님도 거주하지 않고 거의 폐사된 모습이었습니다. 문화재청 발간 한국의 사지에는 암자를 세우면서 발굴된 석탑부재를 다시 땅에 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지에서는 많은 기와 편과 도자 편이 분포되어 있었으며, 사찰 운영시기는 통일신라~조선 후기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산신비 기단갑석 한국의 사지에 등재된 석탑 기단갑석으로 추정되는 부재입니다. 매몰되어 전체 모습을 살필 수 없었으나, 2단 각호굄으로 보입니다. 향화를 피웠던 그 시절이 한낱 봄날의 꿈이었나 봅니다. 2023.03.03

장수...원흥 석불입상

이제는 기억을 믿을 수 없습니다. 원흥사로 향하는 진입로가 너무 낯설었습니다. 원흥석불입상(2011년) https://cafe.daum.net/_c21_/bbs_nsread?grpid=dRVf&fldid=DjZP&contentval=000SW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768&searchlist_uri=%2F_c21_%2Fcafesearch&search_ctx=LrpNuZSucOsx.YncUoV2ej_tRpHqkOL1hFNwnK7pMwx2pUU9oYvq-CADq-lzJK_pvUKb7yb4c6zjTiqtpKnSCHEg_oRl7Tz79DVkFIB9q.z9GavCQnTmxGbKtu4ysG3O5wK_yUKoC7rvN.Sn8lOF1w9tQLMOjEt-fs4rHFVuiN84hT9p..

장수...미륵암 석불좌상

복원 바람에 실려온 소식을 접했지만, 10년 전 약속을 오늘에야 지킵니다. 화재 직후 찾아간 그날 노스님의 울음 섞인 말씀이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미륵암 석불좌상(2011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3489?category=5225 윤곽을 제외하고는 거의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연화좌 두광, 신광 광배 외연의 불꽃문 . . . 소발? 육계가 보이고, 귀는 길어 어깨에 닿았습니다 육안 구분이 힘들지만 중간계주가 있고, 삼도를 표현했으며, 통견의 법의라고 합니다 고려 후기 장수 땅에서 살다 간 장인이 새긴 불상입니다. 연화좌 배면 중대석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일석으로 하대석도 갖춘 대좌일까요? 노스님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텅 빈 미륵암에서 추억 하나 반추하고 돌아왔..

장수...탑골 석탑부재. 석등부재

장계읍 삼봉리 탑동마을 마을 입구 마을 숲, 그 주변 경작지에서 수습한 옛 절터의 석탑 부재가 있습니다. 어울렁 더울렁 느티나무와 어깨동무하며 금줄을 들렀습니다. 면면히 이어오는 민초들의 소박한 염원이며, 의지터이고, 신성 공간입니다 동수의 당산목. 왼새끼로 꼰 금줄과 소지 석탑과 석등 부재 배례석 방형의 시멘트 석탑 옥개석 셋 석등 기단 셋 석탑 노반석 석등 옥개석을 차례로 쌓았습니다. 옛글을 가져왔습니다.(2011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3482?category=5225 옥개석 전층 4단 층급 받침. 절수구 생략 연꽃을 새긴 석등 기단석은 2기 이상의 석등 부재입니다 금줄 종교의 습합 그러한 수사는 민초들에게는 사치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이지요. 뒤집힌 노..

장수...원흥리 미륵불

장수군 산서면 마하리 477-1 팔공산 원흥사 미륵보전에 봉안된 석불입상이다. 좁은 소로를 통해 진입이 가능하며 분위기가 일반적인 사찰과 다르다. 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보이는 절집에는 동자탑.염주탑 등 낯선 석조물들이 서있으며 스님도 보살님도 순례객에게는 무관심해 보인다. 전해오는 기록이 없어 불확실하지만 절의 창건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시 팔성사 암자의 하나로 세웠다는 설이 전해온다. 이후 고려. 조선 시대에도 사적은 남아 있지 않으나 석불입상으로 판단컨데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1904년(광무 8) 원흥마을의 이화웅 부부의 꿈속에 미륵불이 현몽하여 ‘내가 노천에 있어 비바람을 피할 수 없으니 집을 지어달라’는 부탁으로 석불상을 발견하여 미륵불을 봉안하였다. 그 뒤 딸 청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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