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남해군 32

남해...다정리 삼층석탑

디정리 삼층석탑 현재는 석탑 앞까지 차랑 진입이 가능하고,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2009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023 석탑재 2, 옥개석 2. 상륜부 보륜 3개 탑신석에는 우주 모각 옥개석 물매는 급하고, 상단 2개 각형 굄 옥개석(?) 예전 답사에서는 매몰되어 볼 수 없었던 부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단부가 아니라 각형 층급 받침이 3단인 옥개석이 뒤집힌 상태로 추정됩니다 층급받침 각형 3단으로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절수구는 생략되었습니다. 옥개석 상부, 각형 2단 굄 보륜 저의 옛글, 문화재청 외 모든 자료에 보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보주보다는 앙화와 보개 사이의 보륜으로 추정됩니다. 다정리 삼층석탑 옥개석으로 추정되는 부..

남해...석교리 석교

남면 석교(石橋) 마을 옛 돌다리에서 유래된 동명 같습니다. 석교 마을 앞 도로변 마을 유래비 옆 작은 하천에 가설되어있습니다 석교마을 유래비에 다리 축조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신라 신문왕 때에 남해가 전야산군이었을 때 석교 마을은 지금의 당항 마을 아래쪽에 위치해 있었다. 마을 이름도 '장승'이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벅수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평산포 만호의 본거지가 우형에 있었던 때라 이동 방면이나 우형 방면으로 사람의 왕래가 많았는데, 꼭 이 마을을 지나야 하게 되어 있었다. 석교 마을 앞 큰 시내 때문에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불편이 여간이 아니었다. 큰 물이 나서 징검돌이 떠내려가기도 하고 조금만 비가 와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물에 떠내려 가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였다...

남해...신흥사지 삼층석탑

남면 당항리 당항마을 마을회관 앞 부지에 신흥사지 삼층석탑, 마을 유래비, 남녀 근석이 있습니다. 석탑은 신흥사지에서 반출되어 여러곳을 전전하다가 당항마을에 안착하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본래 부재가 많이 망실되고, 다른 석조 부재와 혼합되어 조적 된 모습입니다 2009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023 본래 부재는 초층 탑신석, 옥개석 3개, 맨 위의 상륜부 일부 부재뿐입니다. 기단부 후보 하였습니다 초층탑신석 우주 모각, 문비를 새겼지만 뒤집힌 상태입니다 옥개석 하부에는 절수구를 넓게 구획하고 선각에 가까운 전층 3단 층급받침을 새겨, 시대 하강을 보여줍니다. 옥개석 상부의 낙수면 물매는 급하고, 내림마루를 표현하였으며, 1단 각형 층급받침을 조출였..

남해...서상 마을 벅수

서면 서상리 서상마을 표지석 옆에 위치 나무로 만든 벅수를 대체하여 돌로 근자에 조성한 벅수입니다. 금줄과 소지로 미루어 금년에도 동제를 모신 것 같습니다. 여느 지방처럼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을 새겼습니다. 우리 고유 벅수에는 없는... 관모, 콧수염, 턱수염으로 미루어 할아버지 벅수입니다. 왕방울 눈, 뭉툭한 코. 익살스런 표정의 마을 지킴이입니다 서상 마을 표지석 쪽머리 아마 동백기름을 발랐겠지요? 할머니 벅수입니다. 남해의 벅수 http://blog.daum.net/12977705/8727252 마을 지킴이 풍어, 풍농을 기원하며 어로 작업 전, 먼길을 떠날 때 민초들과 눈 맞추며 인사를 나누던 그 시절이 좋으셨지요? 낯선 스포츠파크 그래도 적응하셔야 합니다. 벅수 어르신예!!! 2021.04.10

남해...정지 석탑

정지 석탑 옛글로 대신합니다(2009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3023?category=5247 2009년 저의 글을 비롯 여러 자료에는 맨 위 부재를 둥근 탑신석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오히려 상륜부 부재로 보이며, 5층 탑신과 옥개석은 망실된 것 같습니다. 명문 해석 실력은 되지 않지만 단기 4281년 탑동 마을 사람들이 조성한 비로 추정됩니다. 그 옆에는 한글로 탑의 유래를 새긴 비석에는 정지장군 관련 설이 아니라 마을에 구전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탑의 유래. 지금부터 1290년 전 신라 신무왕 5년 전야산군(轉也山郡.남해의 옛 지명) 당시 녹두산 남록에 서당골이 있었으며 현 고현 국민학교 뒷산 종지등에 종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신라 33대 경덕왕..

남해...신전리 벅수

이동면 신전리 금평錦坪 마을 벅수 벅수 답사 동선 수립 시에 인지하였으나 근자에 조성한 까닭으로 제외했었습니다. 그러나, 도로변에 크게 세운 "벅시거리" 입구 이정표를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이동면 사무소 마을 소개글 "금평마을의 젖줄인 복곡은 옛날 한해(旱害)로 남해 전체가 심한 흉년이 시달릴 때에도 복곡만은 물이 좋아 농사를 잘 지어 무사히 흉년을 넘겼다고 하여 '복곡(福谷)'이라 불리어 온다. 복곡에서 내려오는 내가 가로지른 금평다리 못 미쳐 오른쪽으로 벅시거리라는 돌비석이 서 있다. 이곳이 옛날 절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벅시가 서 있다고 하여, '벅시골'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벅시거리 사찰 벅수가 자리하였으며 동제가 봉행되었던 옛터입니다. 우리 민속문화의 정체성이 사라져 가는 세태인데 비석을 ..

남해...덕월리 벅수

남면 덕월리 덕월 마을 바닷물이 넘쳐 마을을 덮어 덮을개>더불개 마을로 불립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의 벅수를 가장 많이 답사한 네이브 블로그 황준구님이 운영하는 "장승, 벅수, 솟대"에는 덕월리 벅수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전에 황준구님의 포스팅을 읽고 갔지만 마을에서 장승을 수배하였더니 아무도 몰랐습니다. 혼자서 헤매다 우연하게 찾고서 주민들에게 문의했더니 '장승'은 모르고 '벅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주민들을 통하여 황준구님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논지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으며, 향후 제 글에도 벅수로 통일하겠습니다. 더불게 벅수 마을앞 동수 입구 민가에 방치된 상태입니다. (황준구님은 민가가 벅수를 만든 분의 후손이라고 기록) 현장에서 만난 마을 주민에 의하면 나무 벅수를 대신하여 ..

남해...평산리 벅수

장군당 남면 평산리 평산마을 예전 평산진성(平山鎭城)이 있었던 마을입니다. 마을 뒤 바다 건너 여수, 광양이 지호지간으로 느껴집니다. 세월의 변화를 비켜가지 못하고 콘크리트 보호각을 세웠지만 돌담이 정겹습니다 현재는 명맥이 끊어졌지만 예전 동제를 올릴 시절에는 이곳에서 먼저 올리고 마을 입구에서 다시 올렸다는 주민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상당(上堂) 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벅수 아무런 장식없이 대좌에 계십니다. 네이브 블로그 '장승, 벅수, 솟대'의 황준구 님은 평산성 입구를 지켰던 벅수로 이야기합니다. 안내한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평산마을도 성 밖, 성 안으로 나뉘며, 근처에 수군만호 비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즉, 평산진성을 수호하던 벅수가 진성이 무너진 후 마을의 안녕과 벽사, 풍어를 기원하며 수..

남해...양아리 석각

서복상 두모주차장에 있는 중국 서복회에서 기증한 상입니다.. 옛기억을 되살려도 어디에서 출발하여 양아리석각을 답사하였는지 떠오르지 않았지만, 두모주차장에서 평이한 산길 20분이면 닿습니다. 서복 중국 진나라 때의 방사. 자 군방(君房). 《사기(史記)》에는 서불(徐市)로 기술되어 있다. 진나라 시황제(始皇帝)의 불로불사(不老不死)하려는 소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그는 수천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영약(靈藥)을 찾아 바다 끝 신산(神山)으로 배를 타고 떠났으나 중국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두산 백과) 석각 두모주차장에는 석각 뿐만 아니라 서복이 이곳에 머물렀던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 놓았습니다. 참고로, 서복과 관련된 일화는 거제 해금강, 제주 정방폭포에도 전해오니 여행시 참고하기 바랍니..

남해...장량상 동정마애비 (張良相 東征磨崖碑)

장량상 동정마애비 (張良相東征磨崖碑) 중국 명나라 장수인 장량상이 동쪽을 정벌하고 바위에 글을 새겼다 하여 ‘장량상동정마애비’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큰 자연석을 파네어 직사각형으로 평평하게 갈아 글을 새기고, 주변에는 덩굴무늬를 정교하게 조각하였습니다. 비문은 이여송과 진린이 남해에 와서 왜군을 무찔렀다는 내용으로, 명나라 군인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전승기념비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소마을에서 명의 수군과 왜군이 싸웠다는 기록이 없어 비문의 내용이 의심스럽지만, 노량해전 직후나 그 이듬해인 선조 32년(1599)에 이 글을 새겨 놓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파괴대상 왜구격파 기념비’목록에 이 비가 포함되었었다 합니다. (문화재청 자료 발췌, 정리) 南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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