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남해군

남해...장량상 동정마애비 (張良相 東征磨崖碑)

임병기(선과) 2020. 5. 14.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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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상 동정마애비 (張良相東征磨崖碑)

중국 명나라 장수인 장량상이 동쪽을 정벌하고 바위에 글을 새겼다 하여 ‘장량상동정마애비’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큰 자연석을 파네어 직사각형으로 평평하게 갈아 글을 새기고, 주변에는 덩굴무늬를 정교하게 조각하였습니다. 비문은 이여송과 진린이 남해에 와서 왜군을 무찔렀다는 내용으로, 명나라 군인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전승기념비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소마을에서 명의 수군과 왜군이 싸웠다는 기록이 없어 비문의 내용이 의심스럽지만, 노량해전 직후나 그 이듬해인 선조 32년(1599)에 이 글을 새겨 놓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파괴대상 왜구격파 기념비’목록에 이 비가 포함되었었다 합니다.

(문화재청 자료 발췌, 정리)

 

南海 明張良相東征詩碑
東征詩」
萬曆二十六年季秋國家復有事于東夷維時朝鮮受倭患至是六七年」
矣我師救之久未報捷」
天子赫然震怒乃命中丞萬公往視師經理與總督大司馬邢公都督陳公以」
下文武將臣十餘人兵會於朝鮮先後濟鴨綠
江數道並進惟公壯志鷹」
揚英風虎視曁于羣公罔不協乃心力竭厥忠謀將輘樂浪踰鷄林耀師」
於釜山封鯨
鯢而後返太史氏區大相以爲從古帝王出師命將咸有誦」
言以壯軍容宣國威伸同仇之誼軫於役之勞矧夫以」
天王之師征誅夷狄芟除暴亂算出萬全事在必克順治威嚴于茲爲盛宜昭」
示遠服永詔來禩於是作詩二章雖乏孔碩之」
雅庶揚有截▨▨云爾其」
詞曰皇赫怒兮定夷亂壯士奮兮不遑宴橫長戟兮箙勁箭組甲耀兮星辰煥蹴溟」
渤兮波濤晏倚長劒兮扶桑岸四
極奠兮鰲足斷」

皇靈震兮窮海外征不庭兮靜殊類甲旅悅兮從公邁封鯨鯢兮戢鱗介加日」
出兮極地界標穹碣兮際荒裔異域來兮嘉王會」
皇明萬曆二十七年陽月上浣吉旦日建」
督工征倭遊擊將軍張良相

 

만력(萬曆) 26년(선조 31, 1598년) 9월에 나라에서 다시 동이(東夷) 지역에 출정(出征)할 일이 있었다.

 

이때에 조선에서는 왜(倭)의 침입을 받은지 6, 7년이 되었다. 우리 군대가 구원하려 떠났는데 오래 되도록 이겼다는 보고가 없었다. 천자께서 이에 크게 진노(震怒)하셔서 곧 중승(中丞) 만공(萬公; 萬世德)에게 명하여 가서 군대를 시찰하여 바로잡도록 하였다. 총독(總督) 대사마(大司馬) 형공(邢公; 邢玠)과 도독(都督) 진공(陳公; 陳璘)) 이하 문무의 장수와 신하 10여 명이 군대를 이끌고 조선으로 향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하여 압록강(鴨綠江)을 건넌 다음 여러 길로 나누어 함께 진군하였는데, 오직 공(公)의 씩씩한 기상이 매처럼 뛰어나고 영웅스런 풍모가 범이 쳐다보는 것 같아서, 모든 장수들이 마음을 합쳐 힘과 충성을 다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장차 낙랑(樂浪)의 지역을 지나 계림(鷄林; 지금의 경주)을 거쳐 군사(軍師)의 위세를 부산(釜山)에서 크게 과시하여 적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둔 다음 돌아왔다.


사관(史官)이 이르기를 옛날부터 제왕(帝王)이 군대를 내 보낼 때에는 장국들에게 명하여 모두 맹세하는 말을 외우게 하니 이것으로 군대의 위엄을 기르고 나라의 위신을 떨치며 동료와 적이 어떠해야 마땅한가를 밝히고 또 원정의 노고를 덜어주었던 것이다. 하물며 이제 천왕(天王)의 군사를 멀리 내보내 이적(夷狄)을 토벌하여 포악하고 어지러운 무리들을 삼 베듯이 제거하려 함에 있어서는 만전(萬全)의 계책을 세워 반드시 이기도록 힘써야 할 것이니, 위엄으로써 순순히 다스림이 이보다 더 성대함이 없을 것이다. 마땅히 먼 곳을 복속시킨다는 뜻을 밝히 보이고, 오래도록 와서 조공하도록 하여야할 것이다. 이에 시 2장(章)을 지으니 비록 크게 아름다운 것은 못되겠지만, ~ 결 ~를 드날리고자 한다. 그 글에 이르기를,

황제께서 크게 노하시어 오랑캐의 난을 평정하게 하심에,
장사(壯士)들이 분발하여 편안히 쉴 겨를이 없었도다.
긴 창을 옆으로 뉘어놓고 예리한 화살은 화살통에 도로 넣으니,
졸라 맨 갑옷은 빛나는데 세월은 어느듯 흘렀구나.
멀리 발해(渤海) 바다를 건너니 파도도 고요하고

장검을 짚고서 해 뜨는 동쪽 언덕
에 올랐도다.
사방이 모두 편안해 지니 자라의 발을 자른것이로구나.
신령한 황제께서 벼락치듯 떨치어 바다 끝까지 다 평정하시니,
정벌이 조정에 그치지 않고 모든 적을 무찔러 고요하게 하시도다.
군사들도 모두 기쁜 마음으로 공(公)을 따라 힘쓰니,
적의 날랜 군대를 꼼짝 못하도록 얽어매고 갑옷과 무기를 거두어 들였도다.
해가 뜨는 동쪽 땅의 끝까지 나아가 땅의 끝을 알리는 표식을 세우고,
먼 곳의 오랑캐들의 경계를 정하니 이역(異域)에서도 찾아와 왕과의 만남을 감축하네.

명나라 만력(萬曆) 27년 10월 상순 길일에 세운다.

공역(工役)을 감독한 사람은 정왜유격장군(征倭遊擊將軍) 장량상(張良相)이다.

 

*출처.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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