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남해군

남해...평산리 벅수

임병기(선과) 2020. 5. 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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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당

남면 평산리 평산마을

예전 평산진성(平山鎭城)이 있었던 마을입니다.

 

마을 뒤

바다 건너 여수, 광양이 지호지간으로 느껴집니다.

 

세월의 변화를 비켜가지 못하고 콘크리트 보호각을 세웠지만

돌담이 정겹습니다

 

현재는 명맥이 끊어졌지만

예전 동제를 올릴 시절에는 이곳에서 먼저 올리고 마을 입구에서 다시 올렸다는 주민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상당(上堂) 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벅수

아무런 장식없이 대좌에 계십니다.

 

네이브 블로그 '장승, 벅수, 솟대'의 황준구 님은 평산성 입구를 지켰던 벅수로 이야기합니다.

안내한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평산마을도 성 밖, 성 안으로 나뉘며, 근처에 수군만호 비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즉, 평산진성을 수호하던 벅수가  진성이 무너진 후 마을의 안녕과 벽사, 풍어를 기원하며 수호신으로 모시면서 민초들은 장군 또는 미륵으로 불렀습니다.

 

황준구 님의 블로그 글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로 진성(鎭城)에 세워졌던 벅수라고 합니다.

 

"본디, ‘평산마을’은,- ‘신라시대’ 때에는 ‘평서산현’平西山縣 또는, ‘서평현’西平縣(690, 神文王,10년)이라고 하였으나,- ‘경덕왕’景德王때 부터는 ‘평산현’(757)으로 고쳐져, ‘영현’領縣의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고려시대’ 때에는 <'일본,해적'(倭寇)>들의 잦은 침입侵入으로, ‘쑥대밭’(廢墟)이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수군만호’水軍萬戶가 머물러 있었던 <‘평산포영’平山浦營>으로,- ‘성종’成宗 12년(1481)에는, 본디의 '흙성'을 ‘돌성’으로 고쳐서 쌓았으며,- ‘성’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의 <돌‘벅수’>를 만들어, ‘숲정이’에 소중하게 모셔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땅의 <‘진성’>에서,- ‘돌’을 사용하여 ‘벅수’를 만들어 세운 곳은, 남해, ‘평산진성’(1481)이 최초 이며,- 여수, ‘방답진성’(1487) / 통영, ‘삼천진성’(1488) / 남해, ‘미조진성’(1522) / 여수, ‘전라좌수영성’(1779)에도 돌'벅수'가 세워 져 있다. ‘육지’의 <‘읍성’邑城>에서 ‘돌’을 사용하여 ‘수호신’을 만들어 세운 곳은,- 강진, ‘병영성’(1417) / ‘광주읍성’(1450년 무렵?) / 서산, ‘해미읍성’(1491) / ‘부안읍성’ (1689),등이 있으며,- ‘나무’를 사용하여, ’벅수’를 만들어 세운 곳의 ’기록’은 없지만,- ‘조선시대’ 대부분의 ‘성문’城門에는, ‘지킴이’ 역할을 하는 <나무’벅수’>를 만들어 세웠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수호신이지만 무섭지 않고.

어리숙하게 자식을 원하는 민초들에게 육신공양도 마다하지 않은 그런...

 

 

 

 

 

 

 

 

 

우리 어릴 때 소풍도 오고 그랬지.

지금은

동제도 못 올리고...

 

그리고

찾아주어 고맙다고 말씀하십니다.

 

안내해주신 이장님과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2020.05.13

 

우리나라 문화관광 분야에 뛰어난 역량을 가진 남해군

평산 마을 장군당 벅수를 포함하여 남해 답사기를 마친 후 3~4개 소회를 군청 홈페이지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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