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창원시/마산시 28

창원...마산 관음사 마애여래좌상. 88 야불

일제강점기에 창건된 태고종 사찰이며, 경내에는 마애여래좌상, 88 야불 5분이 계십니다. 스님이 출타중이고 보살님도 계시지 않아 궁금했던 마애불 조성 내력을 탐문하지 못했습니다. 마애여래좌상 1942년 일제강점기에 우리 국민의 발원과 시주로 봉안한 불상입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선각여래좌상으로 인지했었는데, 안타깝게도 기계흔을 남겼습니다 시주(施主). 화주(化主) 일본인이 아닌 모두 우리 국민입니다 불기 2969년(佛紀 二千九百六十九年) 임오(壬午) 1942년입니다. 마애여래좌상 두광, 소발에 육계가 높고, 중간 계주를 표현한 느낌이며, 방형 상호에 뭉툭한 코, 인중과 콧수염, 턱수염이 인상적입니다 통견 법의, 가슴 표현(승각기?), 승각기 매듭이 독특합니다. 수인은 합장인? 불상에 비해 앙련의 연화좌가..

창원...마산 완월폭포 마애 부동명왕

마산 완월 폭포 옆 암벽에 부동명왕과 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몇 년 전 이상령 님이 포스팅 후, 최근 세종아빠 님, 노마드 님, 또르 님이 답사하였으며, 88 야불과 땔레야 뗄 수 없는 일제강점기의 유적이기에 이번 동선에 포함시켰습니다. 무학산 완월폭포 부동명왕(不動明王) "부동존(不動尊), 무동존, 부동사자(使者)라고도 함. 5대명왕 · 8대명왕의 수일(隨一). 대일여래의 교령(敎令)을 받아 활동하는 분노존(교령륜신[敎令輪身])으로, 언제나 화생삼매(火生三昧)에 살며, 일체의 장난(障難)이나 부정을 태워버리고 중생을 옹호하여 득도하게하는 무척 위력있고 공덕이 큰 명왕. 8세기초 보리류지(普提流志)역 『불공견색경(不空羂索經)』에 부동사자의 이름으로 처음 보이며 이어 선무외(善無畏)역 『대일경(大日經)』에..

창원...마산 석봉암 88 야불, 마애여래입상

석봉암 무학산 기슭에 위치한 태고종 사찰입니다. 석봉암에도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3기 야불과 1960년대에 조성한 마애여래입상이 있습니다. 88 야불 카페와 동일 이름의 블로그에 실린 우리나라의 88 야불 포스팅에 박세연 님이 심도 있는 댓글을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눈이 확 떠이는 느낌을 받았으며, 간단히 소개합니다. "88 야불은, 시코쿠 88 소 야불, 군산 동국사처럼 서국 33 관음, 비사문천, 삼보황신처럼 단독의 숭배 대상으로 크게 구분"하였습니다. 연락처를 알았다면 깊이 있는 설명을 듣고 싶은데... 위의 두 야불은 시코쿠 88소 야불이겠지요. 불신 좌측에 번호, 대좌에 기부자 이름을 새긴 일반적인 야불입니다. 지장전에 계십니다. 측면에 번호를 새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마애여래입상 주지 스..

창원...마산 성덕암 88야불

일제강점기인 1933년 창건된 범어사 말사입니다. 최근 많은 불사로 현대식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지만, 법당과 떨어진 공간에는 당산과 산신을 함께 모시는, 즉 불교와 민속이 어울리며 자리를 잡고 민초들을 위무하고 있습니다. 거북 본래부터 비좌의 용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산신당 아래 시멘트 전각 26기의 야불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정 사찰 88야불, 또는 여러 사찰의 야불을 옮겨온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군산 동국사에 이어 가장 많은 야불을 모신 것 같습니다. 88 야불 맞나요? 친자지O 사십사세남.삼십구세여 광배좌측에 번호 대좌 하부의 기부자 가장 많이 알려진 야불의 유형입니다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야불 https://blog.daum.net/12977705/8727086?categ..

창원...마산 금용사 목조여래입상

오래전부터 미루어왔던 마창진의 88 야불 답사 창원의 김현동 님을 다그쳐 드디어 동선을 세우고 금룡사에 들렸습니다. 하지만, 스님도 보살님도 야불의 존재는 모르고 계셔서 제가 잘 못 조사했거나, 반출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인지하지 못했던 흔치않은 목조보살입상을 뵙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금용사 일제강점기인 1935년 창건된 사찰로 전하며, 현재는 범어사 말사입니다. 경내에는 경남 유형문화재 572호 금용사 입능가경(金龍寺 入楞伽經), 583호 목조보살입상이 있습니다. 대웅전 삼존 목조 여래입상 석가여래와 좌협시보살 사이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흔치 않은 입상으로 보관은 망실되어 묶은 보발이 드러나있으며, 백호가 있는 방형 상호에서 위로 치켜올린 눈, 작은 입이 눈에 들어옵니다. 삼도를 표현하였고,..

마산...경남대 채학영 철비

경남대학교 박물관 뒤편 야외전시장 철비 1기.석비 1기. 묘지석 2기, 문인석 2기 철비와 석비 등은 창원대호부터이었던 창원시 의창구 중동에 도호부사 선정비를 비롯14기가 있었으나, 도시개발로 1975년 마산시에서 경남대학교에 기증하였다.그후 2007년 창원시의 요청에 의해 선정비 11기를 돌려주어 현재 용지공원에 있으며, 남은 비석은 2008년 부터 현재 위치에 전시 하고 있다. 문인석은 묘소앞의 석물로 보이며,철비 옆에는증 가선대부 한성 좌윤 겸 삼도 부총관 동래 정일우(贈嘉善大夫漢城左尹兼三都副摠管東萊鄭日佑)’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정공 한적(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鄭公漢迪)의 비석이 있다.이들 비석의 안태고향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귀부, 이수가 생략된 장방형이다. 문인석 선상 정세군 균역 영세 불망..

마산...진해현 동헌 정익행 철비

진동 비림의 철비를 찾아 왔더니 그참 예전에 답사했던 진해동헌 앞이다. 아직 그럴 연세(?)가 아닌데. 하긴 그때는 철비는 물론 비석에는 관심이 크게 없을 때였다. 진해현 객사가 왜 마산 진동면에 소재할가? 鎭東面(진동면)은 조선시대 러시아가 현재의 마산을 租借(조차)해서 해군 극동함대 기지로 사용할 시점에 일본은 러시아 함대의 길목을 잡기 위해 군항지를 진동(당시 : 진해만)에서 웅천(現 진해)으로 옮긴 후, 당시 鎭海縣(진해현) 관할의 동면, 북면, 서면 중 동면을 "鎭東" (진동)으로 이름지어 선포함에 따라 "鎭東" (진동)이라고 불리워지게 됐다고 한다. 다시말하면 , 일제가 자기 해군기지를 위해 진해라는 이름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동행한 누들스의 어머니께서는 마산시 진동․진북․진전면을 삼진(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