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보령시 18

보령...장현리 귀학송

귀학송 청라면 장현리 70-2 동계(東溪) 이산광(李山光, 1550~1624)이 광해군의 정치에 회의를 느껴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낙향하여 은거하며, 시와 글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지은 정자가 귀학정(歸鶴亭)이었으며, 6대손인 이실(李實, 1777~1841)이 소나무를 심었다고 전합니다 >동계 이산광은&nbsp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동생이며, 토정 이지함의 조카입니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서로 다른 두 뿌리에 6 가지로 뻗어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일명 ‘육소나무’라 불린다"라고 했지만 한 뿌리>에 5 가지입니다, 오류가 아니라면 사진 좌측에 보이는 소나무도 같은 나무뿌리에서 뻗어나가 자란 나무일 것입니다. 2021.05.12

보령...산수동 소나무

산수동 마을에서 방솔나무 또는 방솔령(靈)으로 부르는 수령 500년이 넘은 소나무입니다. "둘레가 270㎝에 지상 70㎝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동쪽으로 8~9m 뻗어 나갔으며 그 높이는 170~230㎝이다. 골고루 퍼진 가지가 지면과 거의 평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문화재청) 예부터 영험이 깃든 나무이기 때문에 가지를 꺾거나 나무에 해를 입히는 사람은 병을 앓게 되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속설이 전하며, 매년 산수동 신천 강씨(信川康氏)문중에서 동제(洞祭)를 모신다고 합니다. 2021.05.12

보령...도미부인 정절사

정절사 "백제 개로왕 때의 도미에게는 아름답고 부덕이 있는 부인이 있었는데, 개로왕이 그녀를 궁녀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개로왕이 도미에게 그녀를 시험하려는 내기를 하였으나 도미의 아내가 교묘하게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에 속은 것을 알게 된 개로왕이 크게 노하여 도미에게 죄를 씌어 장님을 만들어 작은 배에 태워 띄워 보냈다. 도미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로 강가에서 통곡하다가 빈 배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고구려 땅에 이르러 잘 살게 되었다"(다음) 도미공 ,도미부인 합장묘. 2021.05.12

보령...선림사 목조여래좌상.목조관음보살좌상

선림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585년 담화(曇和)가 창건하였으며, 이후 불적은 전하지 않으며, 1860년(조선 철종 11) 박행원이 산신각을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선림사는 정절을 상징하는 도미부인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백제 개로왕 때의 도미에게는 아름답고 부덕이 있는 부인이 있었는데, 개로왕이 그녀를 궁녀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개로왕이 도미에게 그녀를 시험하려는 내기를 하였으나 도미의 아내가 교묘하게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에 속은 것을 알게 된 개로왕이 크게 노하여 도미에게 죄를 씌어 장님을 만들어 작은 배에 태워 띄워 보냈다. 도미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로 강가에서 통곡하다가 빈 배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고구려 땅에 이르러 잘..

보령...충청수영성, 영보정

충청 수영성 사적 제501호 충청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수영(水營)의 성 예전에는 영보정(永保亭), 관덕정(觀德亭), 대변루(待變樓), 능허각(凌虛閣), 고소대(姑蘇臺)와 옹성(甕城), 4대문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4대문인 진남문(鎭南門), 만경문(萬頃門), 망화문(望華門), 한사문(漢舍門)은 없어지고, 서쪽 망화문터의 석문(石門)만 남아 있습니다. 수영성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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