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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강화군

강화...가릉

by 임병기(선과) 2020.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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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릉(嘉陵)

고려 원종(재위 1259∼1274)의 왕비 순경 왕후의 무덤으로 강화도에는 천도 시기에 조성한 석릉(碩陵), 곤릉(坤陵), 홍릉(洪陵)이 남아 있습니다.

 

순경 왕후(1,222~1237)

본관은 경주(慶州)로, 고려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익공(莊翼公) 김약선(金若先)의 딸이다. 고려 무신정권기 집권자 중 한 명인 최우(崔瑀)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원종이 태자가 되기 이전 입궐하여 경목현비(敬穆賢妃)로 책봉되었다. 1235년(고종 22)에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가 되었으며, 1236년(고종 23) 충렬왕(忠烈王)을 낳고, 1244년(고종 31) 훙서하였다.

 

원종이 왕위에 올라 1262년(원종 3)에 추봉(追封)하여 정순왕후(靜順王后)로 삼았고, 아들 충렬왕이 즉위하여 1274년(충렬왕 즉위년) 12월에 순경태후로 추존(追尊)하였다. 1310년(충선왕 2) 원(元) 무종(武宗)이 제서(制書)를 내려 고려 왕비로 추봉하였다.(다음 백과 발췌)

 

 

가릉

지상에 석실 갖추고 있습니다.

3단으로 구획하였으며, 석실 전면에는 유리벽을 설치하여 내부를 공개하였고, 뒤편에 사성(莎城), 곡장(曲墻)이 없습니다.

봉분이 무너진 상태이었으나 1974년 보수하였고,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전면에는 문인석이 마주 보고 있으며, 봉분 뒤편에는  한 쌍의 석수가 자리합니다.

 

 

문석인(향 우측)

 

 

 

 

순경 태후가 16세에 세상을 떠자 시아버지 고종이 애통해하며 이규보에게 짓게한 글이 전합니다.

 

"태세 정유 7월 29일 무인에 경목현비(敬穆賢妃) 김씨(金氏)가 병에 걸리어 사당리(社堂里) 사제(私第)에서 훙서하였다.

곧 서울 남쪽 본집에 옮겨 빈하였다가 10월 7일 을유에 가릉(嘉陵)에 장사하였으니 예를 따른 것이다.

거북의 점이 날짜를 택하여 봉(鳳)의 수레가 길에 오른다. 네 금옥(金屋)을 버리고 소나무 있는 산으로 가는구나. 예는 후비(后妃)의 의식을 따라서 국도(國道)로 행진한다. 동궁(東宮)이 가슴을 치는 것을 생각하매, 내 마음의 아프고 슬픔이 더한다. 무엇으로써 영광스럽게 하랴. 오직 이 애사(哀詞) 뿐이다.

 

그 사(詞)는 다음과 같다.

 

동궁비주애책문(東宮妃主哀冊文).이규보

하늘이 금궤(金櫃)를 내리매 경사의 근원이 처음으로 열렸다. 바른 혈통이 서로 이었는데 너는 그 후손이었다.

외가(外家)는 어디인가. 대대로 대려(帶礪)를 맹세한 집안이었다. 적선(積善)한 것이 모인 곳에 유전하는 꽃다움이 쇠하지 않았다. 순하고 곱디 고운 숙원(淑媛)은 유순하고 또 화하였다. 난초의 빼어남과 같고, 옥처럼 고왔다. 동궁의 배필이 되매 상서가 내리고 신명에 합하였다.

 

당연히 집을 이어서 능히 영원히 전하리라 하였더니, 어찌하여 불행히도 홀연히 길이 갔는가. 27세에 빈(嬪)으로 와서 28세에 가버렸다. 그 사이의 세월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 찰나 사이에 슬픔과 영화가 함께 갖추었다. 또한 이미 나라를 위하여 뒤를 이을 아들을 낳았거니, 어찌 떠밀리어 홀연히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슬프다, 어질고 덕 있는 이를 요구하는 것은 사람과 하늘이 마찬가지니, 상제의 명령이 있어서 갑자기 데려간 것이 아니겠는가. 아, 슬프도다. 행차를 멈추지 못하여 장지가 점점 가까워진다. 부르는 만가(挽歌) 소리 일제히 일어나는데, 흔들리는 명정(銘旌)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바람은 처절하여 슬픈 소리를 돕고, 연기는 참담하여 슬픈 마음을 더 하는도다.

슬프다, 어찌 다 말하랴. 이로부터 아득하리라. 짐의 슬픔이 이와 같으니, 원자의 마음이야 어떠하랴. 아, 슬프다."

(한국고전종합 DB)

 

원문을 그대로 옮겼으나 "27세에 빈(嬪)으로 와서 28세에 가버렸다."는 오류이며 14세에 와서 16세에 가버렸다"가 맞습니다.

 

 

 

문석인(향 좌측)

 

 

 

 

 

석수

왕릉을 수호하는 석수로 현재는 뒤편 좌우에만 남아있습니다.

 

 

 

 

 

가릉嘉陵

일편진강벽기층 一片鎭江碧幾層 진강산 한쪽 편에 겹겹의 푸른 기운 감돌고,

백운다처시가릉 白雲多處是嘉陵 흰 구름 많은 곳에 가릉이 있다네.

년년두우동풍루 年年杜宇東風淚 해마다 두견새는 동풍에 눈물짓고,

매향개화백감증 每向開花百感增 개경을 향할 때마다 만감이 더한다네.

(심도기행. 고재형. 1906년)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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