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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안동시

안동...목석거 유허비

by 임병기(선과) 2024.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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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리

청음 김상헌(1570~1652)이 병자호란 후 이곳으로 낙향하여 청나라로 끌려가기 전까지 머물렀던 마을입니다. 처음에는 인근 소산마을 청원루에 지냈으나 이곳으로 옮겨 초가삼간을 지어 목석거라 이름 짓고 은둔하였다고 합니다.

서미리는 아름다울 미()였는데 청음이 백의, 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은 것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하여 고사리 미()로 고쳐 서미리(西薇里)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마을 앞 성황목

입석

청음 선생의 유허비, 중대사지 승탑 답사 목적이었는데, 서애 선생도 이곳에 거쳐하였다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즉, 서미리는 학가산 자락 작은 산촌이지만  서애와 청음 두 정승이 거처했던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마을 안쪽 성황목

마을 앞처럼 입석이 있습니다.

중대바위

서간사 강린당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낙향하여 제자를 모아 강론하던 장소라고 합니다.

 

청음 김상헌(다음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65700014

목석거 유허비

목석(木石)은 일목일석(一木一石)에서 유래되었으며 일편단심 지조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목석거는 청음이 서미리에 은거할 때 살던 초가의 당호였는데 무너져 내리자 7대손 김학순(金學淳)이 안동부사로 있으면서 1830(순조 30) 옛터를 기리기 위해 바위 위에 비석을 세우고 비각을 지었다고 합니다..

사다리를 빌려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허락받지 않아 비문을 읽지 못했습니다.

"청음선생목석거유허비(淸陰先生木石居遺墟碑)’라고 새겨져 있다. 비의 건립 시기는 숭정(崇禎, 1628~1644) 기원후 83년인 경인 3월(庚寅三月)로 보아 1710년(숙종 36)으로 추정되나, 글을 지은 사람과 글씨를 쓴 사람은 알 수 없다"(디지털안동문화대전"

그러나 다른 자료에는 1710년 안동부사 이정신이 글을 쓰고 세웠으며, 비문은 사헌부 집의 지촌 이희조선생이 지었다고 합니다

유허비각 정면 암각. 1830년

목석거(木石居)

경진 중춘 선생 칠대손 본부사 학순 근서(庚辰 仲春 先生 七孫 本府使 學淳 謹書)

유허비 암반 좌측의 각자

만석유허 백세청풍(萬石遺百世淸風)

서미리 마을 입구에도 1830년 김학순이 새긴 각자가 있습니다.

은자암

은자암(隱者巖)

경진 춘 부사 김학순 서(庚辰 春 府使 金學淳 書)

 

 "은자암의 '은'과 '암'은 초서, 가운데 '자'는 해서로 된 암각에 깊은 뜻이 있다"며 "초서는 풀을 묘사한 것인데, 두 풀잎 사이에 본인(청음)이 앉아 있다. '풀 속에 숨었다'는 뜻을 지녔다"(뉴시스)

해동 수양(海東首陽)

산남 율리(山南栗里)

서미리가 도의와 절의를 지킨 충신인 중국의 백이숙제가 은거한 수양과 자연으로 귀의한 도연명의 집이 있던 율리와 같은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청음의 시조 한 수 떠올려 봅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 말동 하여라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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