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포천시

포천...어룡리 석조여래입상

임병기(선과) 2015. 10. 2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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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광사 주차장에서 20여분 산길을 오르면 된다. 어둠이 길가에 내려 앉고 있어 널부르진 산밤을 주울 여유를 부릴 수도 없었다.

석불입상은 어룡동 왕방산 남쪽 자락의  사적이 전하지 않은 폐사지 북쪽 보호각에 봉안되어 있다.

 

왕방산, 어룡? 심상치 않은 지명이다. 

왕방산은  신라 872년(헌강왕 3) 도선국사가 정업을 닦을 때 국왕이 친히 행차하여 격려하였다 왕방산이라 불렀고, 그 절을 왕방사라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조선 태조가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에 있다가 환궁하는 도중 형제의 난을 접하고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 산에 있는 사찰을 방문해 체류하였다 하여 왕방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왕방사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고려 말 목은 이색이 속세를 떠나 산중에 들어와 삼신암이란 암자를 짓고 은신했다 하여 국사봉이라고도 했는데 왕이 항상 목은을 생각하며 이 산을 바라봤다 하여 왕망산이라 부른 것이 왕방산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그런 연유로  동국여지승람에는 포천 왕망산(抱川 王望山), 王方山, 旺方山, 王訪山으로 혼용되었는데, 2009년 8월 포천시 지명 위원회에서 王方山으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어룡리는 포천군 서면 지역으로 용 다섯 마리가 구슬을 다투는 형국이라 하여 오룡골, 어룡동이라 불렀다. 마을 뒤편으로 조득산이라는 험준한 산이 있는데 왕방에서 내려다보면 위쪽으로 용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고 아래쪽으로는 냇물이 흘러 물고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마을에 있는 잉어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어룡리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산속은 이미 어둠이 깊숙히 내려와 있다.

 

 

 주형 거신 광배와 불신이 한 부재이다. 큼직한 육계, 소발, 백호, 턱이 좁아 상호는 상호는 역삼각형 이다.

 

삼도를 표현하였고 코는 얼굴에 비해 큰 편이나 훼손이 심하다. 가는 눈,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통견의 법의, 복부 하단에는  U자형의 의문이 흐르고, 양 소매에서 내려온 옷 주름은 좌우 대칭을 이룬다.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여원인 수인이다. 배를 내민 자세에서 통일 신라 시대 불상의 양식적 특징이 보이는 고려전기에 조성한 불상으로 추정된다.

 

 

 

발목 아래는 매몰되어 있다.

 

 

 

 

 

내려오는 길

산속은 어둠이 가득하건만

산아래는 아직 평온한 전경이 펼쳐진다.

 

2015.10.02

 

*디지털포천문화대전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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