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영산회상도 속 석가여래는 설법인 대신에 성도를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영은사 괘불도 이 계통을 계승한 도상이다.중앙에는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여래가 크게 그려져 있는데 좌협시인 문수보살은 여의(如意)를 들고 있고 우협시인 보현보살은 흰 연꽃을 들고 있다. 8대보살, 10대제자,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 팔부중 중 2구, 8금강, 용왕, 용녀, 타방불 등이 본존의 좌우에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었다.
화기에는 함풍(咸豊) 6년(1856) 2월에 괘불 영산탱화를 새로 조성해 태백산 영은사 팔상전에 봉안하였고 수화승 경성 긍준(璟惺肯濬)을 비롯해 긍섭(肯?), 성오(性?), 의잠(懿岑), 찬종(讚宗), 승호(昇晧), 인담(仁潭), 영심(永沈), 재원(在元) 등 9명이 공동 제작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삼척 영은사 석가삼존도. 1841년
삼척 영은사에 소장되었던 불화로 영산전에 봉안하기 위해 1841년에 제작한 석가삼존도이다.면 바탕을 붉은색으로 채색한 뒤 은니로 석가여래가 영축산에서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간략하게 표현했다.본존인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 협시보살로는 연꽃을 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했다.
석가삼존 뒤에는 아난과 가섭존자가 합장을 하고 서 있으며, 삼존의 앞에는 연꽃을 든 두 동자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상징인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연화좌 위에 앉아있다. 각 존상의 몸체부에는 백색안료, 머리칼은 군청(群靑)과 녹청(綠靑), 연화가지는 녹청을 사용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각 구성 요소의 윤곽과 옷주름 등 세부 형상은 은니선(銀泥線)으로 그렸다.
영월 보덕사의 16나한이 봉안된 사성전(四聖殿) 후불탱화로 1868년 의운자우(意雲慈雨)와 15명의 화승들이 함께 제작한 불화이다. 불화의 복장주머니에서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사성전에 16나한상과 이 후불도를 봉안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화는 설법인을 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배치한 수기삼존도(授記三尊圖) 형식이다. 섯가여래의 무릎 아래에는 동자형의 청사자를 타고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흰 코끼리를 타고 연꽃을 든 보현보살이 배치되었다. 석가삼존상 뒤에는 아난과 가섭 존자를 중심으로 좌우로 10대 제자가 5명씩 대칭적으로 표현되었다.
높은 육계와 함께 표현된 정상계주, 이완된 필선, 적색과 청색의 채색, 옷자락 끝에 표현된 꽃무늬, 좌우 협시 보살상의 광배에 표현된 화염문, 문수동자와 보현동자의 등장, 도안화된 채운(彩雲) 등은 19세기 불화의 양식적 특징이다. 보덕사 사성전 후불탱화는 경상도 지역에서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화승 의운자우가 강원도에서 제작한 불화로 불보살의 안정감 있는 형상과 조화로운 색채 등 그의 화풍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영원사 불전에 하단탱화로 봉안되었던 조선 후기의 감로탱화로 1759년 수화승 오관(悟觀)이 단독으로 그린 불화이다.영원사 비로자나불 후불탱화와 같은 해에 조성된 것이다. 감로탱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감로(甘露)를 베푸는 수륙재 장면을 그린 것이다.
감로탱은 3단으로 화면을 구성하는데 이 불화는 크게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화면 상단 중앙에 오여래를 배치하고 향좌측에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향우측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배치해 극락으로 맞아들이는 내영(來迎) 장면을 표현했다.화면 중단 중앙에는 공양단(供養壇)을 중심으로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측면으로 표현된 아귀(餓鬼)가 배치되었다.화면 향좌측에는 범패와 작법을 하는 의식승과 시주자 및 공양자가 표현되었고, 화면 외곽 주변으로 지옥의 모습과 생활 풍속이 묘사되었다.
18세기 감로도에 등장하는 7여래와 천도된 영가를 모신 벽련대 같은 새로운 요소는 등장하지 않고 5여래를 배치한 전통 양식을 계승한 작품이다.
강릉 백운사 현황도. 1879년
강릉 백운사에 소장되어 있던 불화로 1879년에 조성되었다. 화면의 중앙에는 염라대왕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륜성왕(大輪聖旺)과 전륜성왕(轉輪聖王), 판관(判官)?녹사(錄事)?사자(使者)가 각각 2위, 동자가 4위 배치되었다. 존상들의 자유로운 자세와 다양한 지물 등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구도를 이루고 있으며, 인물상들의 표정은 생동감있게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옷주름선은 경직된 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세밀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금강산 표훈사 불지암(佛地庵)에서 조성해 금강산 장안사(長安寺)에 봉안했던 것으로, 수화승 화산재근(華山在根)이 사미 철유(喆有)와 함께 그린 작품이다. 19세기 말에 조성되었지만 화승의 표현력이 뛰어난 불화에 속한다.
보현사 영산전에 봉안할 목적으로 대웅전 석가삼존도 및 현왕도와 더불어 1882년에 제작된 16나한도 가운데 일부이다.나한도 속의 나한은 자유롭고 일탈한 성격을 드러내듯 각기 개성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으며, 신통력이 뛰어나서 신령스러운 동물들을 마음대로 희롱하는 모습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보현사 나한도는 16나한을 4폭에 나누어 그렸는데 이 두 폭에는 각 5명의 나한이 그려지고, 나머지 2폭에는 각 3명의 나한이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5명씩 그려진 나한도 2폭만 남아있다. 화면 하단에 쓰여진 화기에 의하면 광서(光緖) 8년(1882) 3월 13일에 대웅전 삼존상, 영산전 16존상과 제석천 2구 등을 개채했고 각 단 탱화와 현왕탱을 그려 점안하고 강릉 보현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수화승은 석옹 철유(石翁喆侑)이며 축연(竺衍), 완형(玩炯), 인휴(仁休), 사미 홍순(洪洵), 사미 득눌(得訥) 등이 동참해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주상(主上), 왕비(王妃), 세자(世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삼전패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구름을 도상화한 것으로 보이며 폭이 넓어 안정감 있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상부에는 운룡(雲龍), 패 좌우에는 연화당초문(蓮花唐草文)이 그려져 있는데 필치가 매우 유려하며, 명문을 새긴 패는 붉은색 바탕에 금박(金箔)이 가해져 있다. 형태, 색감, 필치가 격조 있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불연으로 높이 146.0cm, 폭 74.0cm, 총길이 336.0cm이다. 정상부에는 앙화(仰花) 받침 위에 정병(淨甁)이 올려져 있으며, 1층 난간에는 사방으로 용두형 장식이 5열씩 배치되어 있고, 난간 아래에는 4마리의 사자가 불연을 받치고 있다. 네 기둥과 난간에 모두 꽃문양의 장식이 화려하게 투각 되어 있으며 손잡이의 용두장식 또한 매우 생동감 넘치는 뛰어난 수작이다.
자장율사 진영
사명대사 진영. 1788년
삼척 영은사에 소장되어 있던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의 진영이다. 사명대사 유정은 서산대사 휴정(休靜,1520~1604)과 함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승군(僧軍)의 지도자로 활약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외교사절단으로 파견되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을 귀환케 하였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화면 왼쪽을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는데 오른손에는 염주를, 왼손으로는 주장자를 들고 있다.의자에 불자(拂子)를 걸어놓은 모습을 비롯해 채색과 문양 등 모든 화풍이 범일국사 진영과 같다.이 두 진영은 같은 시기에 한 화승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진영 속 사명당대사는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실제로 생전에 수염을 길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진영의 화면 왼쪽에는 ‘대광보국숭록대부사명당대선사진영(大匡補國崇祿大夫四溟堂大禪師眞影)’이라고 쓰여 있다.
불심종조달마원각대사. 1605년
복제본
매화수묵. 복제본
복제본
복제본
상원사 문수봉자상 복장사리. 보물. 17세기
사진은 본래부터 친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한치 부끄러움도 없지만,
글을 직접 쓰지 않고 옮겨오거나, 문화재 안내문 사진 올리는 것을 혐오했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으니.
안목
그렇다 안목이 낮고, 좁고, 깊지 않은 탓으로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사라진다.
한편으로는
젊은 시절 갈겨쓴 내 이야기를 모범답안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일천한 답사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늙었다!!!!!
2024.10.09
*성보박물관 홈페이지에 등재된 불, 보살상, 불화 중 상당 수가 수장고에 있다. 직접 볼 기회가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