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강릉시

강릉...보현산 보현사

임병기(선과) 2021. 7. 2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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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

2010년 낭원대사 오진탑비를 목적으로 주마간산식으로 참배하였습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229

 

오늘은

스님의 허락을 득한 후 예전 답사에서 놓쳤던 옛님들을 세세히 보았으며, 문화재에 해박한 스님과 중정의 석조 부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답사가 되었습니다.

 

석조 부재

2010년. 석탑 부재와 석등 간주석으로 추정되는 석사자 부재만 있었으나, 대웅전 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석불좌상, 소방공사 중에 수습된 석조 연화대좌 등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부재들은 낭원대사가 주석했던 고려 초기에 조성된 성보라고 판단해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석사자 석등 간주석

스님은 쌍사자 간주석을 예로 들면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양평 상원사에 있습니다

 

석탑

많은 부재가 망실된 삼층 석탑 부재로 추정되며, 맨 아래 부재는 석등 대좌입니다.

비례로 판단하면

초층 탑신석, 초층 옥개석, 삼층옥개석, 노반석, 복발입니다.

 

초층 탑신석

양우주를 모각하고 사방불을 봉안하였습니다.

 

탑신석 석불좌상

 

옥개석

1매는 망실,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상부에는 2단 굄을 조출하였으며,

층급받침은 4단으로 추정되나 훼손이 심하여 불분명합니다. 위 옥개석에는 찰주공이 있어 삼층탑신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만 남아 있습니다

 

연화좌

대웅전 불상 아래에서 발견된 석불좌상의 대좌로 추정되나 결론지을 수는 없습니다

경내 공사 중 수습되었다고 합니다.

 

팔각 하대석의 하단석으로 추정

안상 속에 사자를 새겼습니다.

 

사자상

 

석등 하대석

안상을 새겼습니다

 

석불좌상

대웅전 불단 아래에서 발견

화마의 흔적이 없어 화재로 훼손된 석불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대웅보전에는 석조아미타 삼존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전각과 주존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불상은 1691년 현재 봉안중인 석조아미타 삼존 이전까지 대웅보전 주불이었던 석가여래임을 추정 가능합니다

 

대의 자락

석불대좌 상, 하대석의 앙련과 복련

 

석부재의 나비장

 

우리나라의 나비장

https://blog.daum.net/12977705/8727065

 

보현사 현판

보현당에 걸려 있습니다

 

숭정기원후 오갑신 유하 창동거 여재복 년 십세 근게(崇禎紀元後五甲申榴夏 滄洞 居 呂在卜 年 十歲 謹揭)

1884년 창동에 거주하는 여재복(呂在卜)이 10세 때 쓴 현판

 

유하(榴夏)

석류꽃 피는 여름날...

10세에 글씨뿐만 아니라 시적 감각이 뛰어난 신동 같습니다

 

대웅보전 편액

임진 중추 연선 근서(壬辰 仲秋 蓮仙 謹書)

 

임진년 가을에 연선이라는 분이 쓴 글씨입니다.

임진년이 언제인지,  연선이라는 분이 누구인지 전하지 않습니다.

은 스님이었을까요?

 

석조아미타삼존

대세지와 관음보살을 협시로 둔 아미타여래좌상입니다

 

강희 삼십년 신미 오월이이십사일 불상원문 불상운 대시주 (康熙三十年辛末五月二十四日 佛像願文 佛像移運 大施主)

조성 연도만 기록된 복장물 외에는 도난당하여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명문으로 판단하면 1691년 다른 곳에서 조성하여 옮겨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조아미타여래좌상

나발, 중간계주,정상계주, 정연한 상호, 삼도는 불분명합니다.

이중착의법, 승각기 끝단은 화문으로 접었고, 대의 자락은 무릎 아래로 흘러내렸으며, 항마촉지와 아미타 수인입니다

 

석조대세지보살좌상

좌측 보살좌상의 보관에 새겨진 화불로 미루어 우측 협시는 대세지보살입니다

보관과, 보발 외에는 통견의 법의 외에는 본존불과 유사합니다.

 

석조관음보살좌상

보관의 화불을 제외하고는 대세지보살과 같습니다

 

보현당 불단

 

목조보살좌상

첫눈에 굉장히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복장물(보현사 홈)

첫째, 1292년 다라니(평균37×42㎝)이다. 3점이 발견되었는데 “至元二十九年 四月日…”이라는 조성기가 있어서 이 보살상의 조성연대의 하한을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이 다라니를 넣었을 1292년 이전에 이 보살상은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 千手千眼觀自在菩薩 廣大圓滿無碍大悲心 大陀羅尼 .44.6×840㎝나 되는 긴 다라니로써 조선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묘법연화경(卷1, 2, 卷3, 4 각1)으로 인경인데, 역시 조선초기에 판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 후령통과 직물(붉은색 비단·청색비단)인데 노란색 명주에 싼 것으로 5약, 5곡 등을 넣은 것으로 조선초기 것으로 생각된다.

 

소조 보살좌상

머리에는 높은 보계에 장식이 있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머리에서 내려온 보발은 귀를 가로질러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얼굴은 사각형으로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게 표현되었다. 법의는 통견형식의 두터운 가사를 입고 있으며, 물결같은 옷주름과 양 어깨위에 도드라진 장식, 봉긋하게 솟은 가슴이 특징적이다. 수인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왼쪽 다리위에 올려두고 있다. 바닥에는 복장을 매듭했던 복장공이 있으나, 복장유물은 남아있지 않다.(보현사 홈)

 

보현당 산신도

화기. 일제강점기로 읽었는데 사진이 없습니다

 

보현당 칠성도

화기. 일제강점기로 읽었는데 사진이 없습니다

 

보현당 독성도

화기. 일제강점기로 읽었는데 사진이 없습니다

 

낭원대사 오진탑

https://blog.daum.net/12977705/8727448

낭원대사 오진탑비

 

보현사 부도전

https://blog.daum.net/12977705/8727447

 

영동지방의 부도전

https://blog.daum.net/12977705/8725901

 

보현사 성보를 개략적으로 참배하였습니다.

친절하게 설명해 준 스님, 따뜻하게 맞이해 준 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도난당한 1822년 영산회상도, 1799년 지장시왕도가 환지본처 되길 기원드리며,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1882년 나한도, 경파당 진영, 부도전에 부도가 있는 화곡당, 월암당 진영과 더불어 지장도, 신중도와 인연 지을 것을 다짐해봅니다.

 

202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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