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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울주군

울산...검단리 삼층석탑

by 임병기(선과) 2019.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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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리

창건과 폐사가 불분명한 검단사에서 유래한 지명 입니다.

"검단리(檢丹里)는 웅촌면 법정동이며, 이 곳에 검단사(檢丹寺)가 있었으므로 검단이라 하였다. 궐곡(闕谷) 궐각단 골각단이란 지명이 있어 우시산국(于尸山國), 혹은 우화국(于火國)의 궁궐(宮闕)이 있었던 곳으로 보기도 한다. 곰각단(熊角丹) 또는 검각단(檢角丹)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옛 울산 땅은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다. 시(尸)를 ‘ㄹ‘ 발음으로 보면 우시산(于尸山)은 ‘울뫼‘가 되어 ‘울산‘이 된다. 우시산국의 도성을 검단 지방으로 보기도 하나 웅상면의 연혁에서는 은현리(銀峴里)로 보고 있다. 검단과 은현은 접경한 마을이며 다 검단분지(檢丹盆地) 안에 있으므로 우시산국은 검단분지에 있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마을 입구

삼층석탑이 마을 동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연유로 마을지킴이가 되었을까요?


라이크뉴스(2007.11.19). 집성촌을 찾아서에서 발췌정리

위 기사에 기자가 마을 주민에게 채록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검단사가 있던 곳이어서 검단리로 불리며 큰 산 외에 작은 산이 여러 곳 있다.예부터 마을 정기가 빠져나간다고 해서 세 곳에는 서나무, 마을 입구 남쪽 탑거리에는 탑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즉,검단사에서 반출된 석탑 여부는 언급이 없으나, 마을 지기를 보호하기 위한 비보책으로 조성된 석탑임을 알려 줍니다.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던 석탑 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오래전 부터 문화유적 총람에서 정보를 얻었으나, 도난 후 새로 조성한 석탑으로 인지 하여 지금껏 인연을 짓지 못 하였습니다.



검단탑복원 내력문

건립시기, 석탑부재의오류 등은 차치하고, 1929년 3월 29일 도난 당했으며 1990년 5월 2일 마을 주민들이 남은 부재로 복원하였음을 기록한 비입니다.


도난 당하기전에는 지대석.탑신 1.옥개석 3개가 쌓여 있다고 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부재는 기단갑석(문화재청 사지총람에 지대석으로 기록되어 많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복사하여 대부분 자료, 카페. 개인 블로그 등에 지대석으로 명기)과 기단 중석 1매(많은 자료에 거의 언급이 없음) 입니다.


 

삼층석탑

기단갑석 1매로 복원하였습니다.

양식의 옳고 그름은 사치 입니다. 민초들의 마음이 고마웁기 그지 없습니다.



맨아래 기단갑석을 제외한 부재는 후보물 입니다.

인터넷에는 "광무 3년(1899)본 '울산읍지'에는 5층탑이라 기록한 것으로 보아 본래 5층"이라는 글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소형 3층 탑으로 생각됩니다.

 

 

기단 갑석

물매가 급하며, 각호각 3 괴임으로 부터 전각부까지 내림마루가 표현되었습니다.

묻힌 갑석하부의 부연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상층기단 중석

탱주 1기가 모각되어 있으며, 중석은 감입식 결구법으로 추정됩니다.


 

 


조성시기 추정은 어렵지만

갑석의 물매,3단 괴임, 비보 석탑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석탑으로 생각됩니다.

 


위에 인용한 라이크 뉴스에는 정월 보름날 마을 동제가 열린다고 하였지만, 현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 금줄이 걸려있지 않습니다

앞선 사람들이 간직하고 계승하고저 했던 마음은 우리의 아이덴티티의 확인 입니다.

석탑 처럼 마을 제의도 복원 되어 우리 마을 문화의 원형질 되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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