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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곡성군

곡성...동악산 신덕사지 부도

by 임병기(선과) 2018.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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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산 도림사

신덕사지, 길상암지의 들머리 입니다.

 

 

도림사 계곡에 돌확이 누어있습니다.

 

 

청류동 계곡

예전 보림사 답사기에 언급하였듯이 계곡의 절경마다 바위에 구곡(九曲)을 새겼습니다.

구한말 선비 하정(荷亭) 조병순(曺秉順·1876∼1921)과 춘기(春沂) 정순태(丁舜泰) 두 분이 이름붙였다고 합니다.

 

 

팔곡(八曲) 해동무이(海東武夷)

구곡은 주지하듯이 주자의 무이구곡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청류동 계곡의 구곡은 보림사 주차장 아래로 부터 시작되며 길상암지 분기점에 마지막 구곡이 위치합니다.

 

1. 일곡(一曲) 쇄연문(煙門)

2. 이곡(二曲) 무태동천(無太洞天)

3. 삼곡(三曲) 대천벽(戴天壁)

4. 사곡(四曲) 단심대(丹心戴)

5. 오곡(五曲) 요요대(樂樂臺)

6. 육곡(六曲) 대은병(大隱屛)

7. 칠곡(七曲) 모원대(暮遠臺)

8. 팔곡(八曲) 해동무이(海東武夷)

9. 구곡(九曲) 소도원(小桃源)

 

 

팔곡 해동무이(海東武夷) 아래 암각문 입니다.

모르긴해도 팔곡이 새겨진 바위를 중류지주석으로 해석한 것 같습니다.

 

중류지주中流砥柱는 황하강 중류에 위치한 기둥과 같이 생긴 지주산(砥柱山)을 지칭하는 것으로 탁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개를 이릅니다. 우리나라에는 구미의 길재 선생의 묘를 비롯 많은 곳에 비석이 있습니다.

 

'백세청풍(百世淸風)도 백이숙제,중류지주와 동의어로 굳은 절개를 뜻하며, 함안 무기연당 조경석을 비롯하여, 고택의 당호,비석에도 볼 수 있습니다.

 

 

구미. 야은 길재 묘(출처/매일신문)

 

 

안동 석류동천. 지주석

 

 

함안 무기정사

 

 

성주 해동청풍비

 

 

 

"쾌사창애일도천(快瀉蒼崖一道泉  푸른 절벽 사이를 쏟아져 내리는 한줄기 맑은 물은

백룡비 하을람천(白龍飛下鬱濫天 백룡이 하늘에서 숲으로 날아 내리는듯 하네

공산유차진기관(空山有此眞奇觀  인적없는 산중에서 이런 절경을 보고 있으려니

의장래간사름연(倚杖來看思澟然  지팡이 의지해 와 둘러본 마음까지 젊어지누나

 

주부자시 朱夫子詩

후학 정순태 後學 丁舜泰

조병순 曺秉順

송각 誦刻"

 

출처: ♬ [200대 명산] 곡성 동악산 산행(1)|

 

 

도림사로 부터 400미터

신덕사지는 이정표에서 배넘어재 방향입니다.

(부도 도난 방지를 위해 정확한 위치는 밝힐 수 없습니다)

 

 

신덕사지

 

 

신덕사지(한국의 사지에서 발췌)

"창건과 폐사와 관련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신덕사지는 道林寺의 옛 이름으로 혹은 도림사의 암자인 신덕암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申德寺’로 기록되었고, 『여지도서』에는 ‘神德寺’와 ‘도림사’가 별개의 항목으로 기술되고 있으며,『범우고』와 『곡성읍지』에는 도림사가 신덕사의 아래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신덕사와 도림사는 별개의 사찰로 운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덕사는 조선시대에 발간된 지리지나 읍지, 사찰관련 문헌 등에 거의 빠짐없이 사명이 기록될 정도로 유명한 사찰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묵암 최눌 默庵 最訥(1717~1790)의 문집인 묵암집默庵集에 수록된 시 제도림사신덕암題道林寺神德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지도서』와 1737~1776년에 제작된 《광여도》에는 동락산 아래에 도림사만 표시되어 있고, 1872년에 제작된〈곡성현지도〉에는 도림사보다 작은 규모의 신덕암이 표시되어 있는 점으로 볼 때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점차 사세가 약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18년 정태수丁秀泰 등에 의해 간행된 곡성군지에 동락산‘動樂山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라고 기록되어 1883년과 1918년 사이에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신덕암에서 제작된 지장시왕도와 아미타회상도가 선암사 성보박물관과 도림사 응진전에 보관되어 있다."

 

 

석축,계단

 

 

상단부 담장

 

 

중단부 담장

 

 

사지 상단부.

금당지 향우측으로 우물, 수조, 맷돌, 돌확, 와편.도자편이 산포하며 그옆 사면에 2기 부도가 도괴되어 있습니다.

 

 

수조,돌확

 

 

돌확

 

 

수조

 

 

우물터(?), 맷돌

 

 

부도 하대석(?).

그렇다면 신덕암에는 3기 부도가 있었을까요?

 

 

부도

조선후기 석종형 부도 2기가 도괴된 상태로 있습니다.

 

 

부도(1)

문양, 당호를 새기지 않았으며, 탑신과 보주는 일석입니다.

하대석 상부와 탑신 하부에 사리공이 보입니다.

 

 

 

 

부도(2)

당호를 새기지 않았으며, 상면에는 복련으로 장식하였습니다.

복련 위에 보주 받침을 조출하였으며, 별석으로 조성된 보주는 결실된 듯 합니다.
하대석과 탑신석에 사리공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지에 있는 부도 하대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이 부도의 하대석이었을까요?

 

 

 

 

 

애잔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였다면 바로 세우고 왔을텐데.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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