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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곡성군

곡성...서산사 목조관음보살좌상.동종

by 임병기(선과) 2016.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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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이다. 절은 1935년에 이 지방의 부호였던 정진태·수태·규태 삼형제가 아버지 정일택과 어머니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세웠는데 1938년 서산사로 바꾸었다.

 

 

관음보살좌상의 복장에서 발원문과 후령통,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사경, 『능엄경』4책, 다라니 진언 28장이 발견되었다. 발원문을 통해 1706년 화주 해천(海天)의 발원으로 대은암에 봉안하기 위해 이 보살상을 만들었으며, 1706년 2월 25일에 조성을 시작하여 4월 5일에 완성하고, 3일 뒤인 4월 8일에 복장으로 안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보살상의 제작 기간은 2개월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졌으며, 조각승은 진열(進悅)과 태원(太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진열과 태원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중반에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불상의 조성과 개금에 참여한 조각승이다.

 

보살상 조성에서 불상[추삼봉(秋三奉) 부부 시주], 황금[黃金: 가선대부(嘉善大夫) 김유금(金迪金) 부부 시주], 면금[面金, 성윤비구(性允比丘) 시주, 강억립(姜億立) 부부 공양(供養)], 오금[烏金, 석능비구(釋能比丘)와 김만업(金萬業) 부부 시주], 복장[腹藏, 이만보(李萬宝) 부부 시주]으로 나뉘어 시주가 이루어져 완성되었다. 이는 당시 보살상의 개금 단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서산사 관음전의 주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높은 꽃잎모양으로 둥글게 멋을 낸 보관을 쓰고 불단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보관의 표면에는 화염, 봉황, 화문, 관대 등을 덧붙여 장식하였고, 보관의 중앙에는 화불을 표현하여 관음보살의 도상적인 특징을 나타냈다. 보관의 테두리 아래로는 보발을 가지런히 좌우로 빗어 보관의 턱을 이루었으며, 귀를 타고 내려온 보발은 어깨 위에서 둥글게 엮은 다음 다시 세 가닥으로 드리웠다. 귀는 둥근 귓바퀴에 귓구멍은 물방울처럼 늘어져 있고, 도톰한 귓불에는 아무런 장식을 더하지 않았다. 얼굴은 살이 통통하게 올랐으며, 이목구비도 부드럽고 원만하게 표현하였다. 정확하게 표현한 삼도에 비해 가슴의 쇄골선은 잘 드러내지 않았다.

 

천의는 불의와 같이 이중착의법이며, 오른쪽 어깨는 새 날개처럼 걸친 천의자락이 표현되었고, 복부에는 수평으로 입은 군의가 표현되었다. 상체의 주름은 윤곽을 따라 힘 있는 직선을 사용하여 간결하게 처리하였고, 무릎에는 다소 율동이 가미된 주름을 사용하여 변화를 주었다. 수인은 양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관음보살을 상징하는 정병을 받쳐 들었다.

 

이 보살상은 17세기의 장대한 형태미를 가진 불상에 비해 전반적으로 아담한 형태이며 얼굴도 좀 더 부드럽고 귀여운 모습이어서 17세기 후반기의 개성과 대중성을 두루 확보한 모습에서 일단의 변화의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송광사 말사인 곡성 관음사의 산내암자 대은암에 조성되었던 종이다.

정상에는 쌍룡의 용뉴가 있고, 반구형의 천판을 쌍룡이 7개의 발로 딛고 있다. 천판과 종신의 경계에 융기된 1조의 태선으로 천판과 종신을 구분하였다.  태선 바로 밑에는 상대를 대신하여 지름 3.2㎝의 원좌에 범자를 새긴원형범자문 8개를 일정 간격으로 장식하였고, 종신 부분에는 4개의 유곽을 배치하였다. 종유는 꽃받침 위에 자방이 돌출된 9개의 유두를 구비하고 있다. 유곽의 문양은 사격자문을 엇비켜 새긴 문양대로 장식하였다. 유곽의 사이에는 합장한 형태의 보살입상 4구를 배치하였는데, 보살입상은 도광과 보관을 갖추고 합장한 모습으로 선조로 조식하였고 당좌는 표현되지 않았다. 하대는 별도의 문양이나 조식은 없으며 조성기 명문이 있다.

 

 

擁正八年庚戌/ 四月日玉果/ 觀音寺 大隱庵/ 中鐘造成/ 施主秩/ 前將官安武/ 嘉善朴大鶴/ 通政大夫雪澄/ 通政大夫一行/ 許命生/ 許在云/ 色蘭

本菴秩
太虛堂 極初/ 敬信/ 堂頭 一行/ 掌務 好性/ 別座 覺心/ 書記 明哲/ 通善 / 化士 德訓/ 天印/ 太照 / 天俊

本寺
住持通政 桂根/ 萬淨/ 三綱 說草/ 及玄

위의 명문으로 보아 이 종은 옥과 관음사 대은암 중종으로 조성되었다. ?太古寺寺法?에 “大隱庵 在全羅南道谷城郡五山面聖德山觀音寺山內 大本山松廣寺末寺”라 하여 대은암은 관음사 산내암자이며, 송광사 말사라 하였다.   擁正八年庚戌四月은 1730년(영조 6) 4월에 조성하였다.

시주는 前將官 安武, 가선대부 朴大鶴, 通政大夫 雪澄, 通政大夫 一行, 許命生, 許在云, 色蘭 등이 하였다. 여기에 보이는 색난은 1698년 고흥 능가사 범종 주조 때에 시주자 명단에 보이며, 1711년 능가사 기와 조성 때에도 시주를 하였던 스님이다. 그리고 색난은 1680년 화순 영봉사 불상(현 광주 덕림사 소장), 1683년 능가사 능인전 불상(현 서울 지장암 소장), 1684년 강진 정수사 나한전 불상(현 강진 옥련사 소장), 1689년 목조아미타삼존불감(현 일본 고려미술관 소장), 1689년 목조지장삼존불감(한국불교미술박물관 소장), 1693년 구례 천은사 불상, 1694년 화순 쌍봉사 불상, 1700년 영암 축성암 나반존사상, 1701년 대흥사 응진전 불상, 1703년 화엄사 각황전 불상, 1709년 고흥 금탑사 목조보살좌상(현 고흥 송광암 소장) 등을 조각하였던 유명한 조각승이었다. 색난과 함께 불상을 조성하였던 조각승은 충옥, 초하, 득우, 일기, 모현, 도헌, 행탄, 추붕, 추평 등 많았으며, 그는 고흥 능가사 스님이었고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대은암의 큰 스님은 태허당 극초太虛堂 極初였으며, 화주는 덕훈德訓이었다. 본사였던 관음사 주지는 통정대부 계근桂根이었다.

 

2016.10.22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문화재청 자료를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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