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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완도군

완도...청산 삼현비각

by 임병기(선과) 2017.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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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도청항

영화 서편제의 후광에 힘입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청산도.

겨울. 작은 섬마을 항구에는 한적함이 가득하다.

 

 

청산 삼현비각(三賢碑閣)

예전에는 보호각이 있었는 듯 완도향토유적명이 '비각'으로 당리마을 입구 서편제 촬영지 주차장 맞은편에 위치한다.

보호비각 대신 작은 돌담장을 쌓고 중앙에 세운 비석은 2단 기단위에 비신을 세우고 옥개석을 올렸다.

 

여기서 몇가지 집고 넘어가야겠다.

첫째. 완도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에는 문화재 분류와 지정명칭이 없이 "문화재"를 검색하면 관광명소만 나열되어 있다.

즉 국보.보물,유형.무형.천년기념물.향토문화재 등을 구분하여 등재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향토문화재 일부는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다.


둘째.지난번 "중암사지팔각부도" 글에서도 기술하였듯이 모호한 지정명칭을 사용했다. 부도(승탑)는 탑신의 형태를 지정명칭에 포함하는 사례는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중암사지부도는 육각형이다.


세째. 모호한 명칭, 어쩌면 전혀 인식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삼현비三賢碑"가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삼현비각

 三賢碑閣"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객이 전도가 아니라 지정당시의 오류로 판단되어진다.


완도군청의 빠른 조치를 기대해 본다.

 

 

 

청산도는 영조 3년(1727년) 숙종의 여섯 째 아들 연령군延齡君)의 사저인 연령궁방에 시부賜賻되면서 동시에 신지진에도 영속되어 군선 건조를 위해 완도에서 목재를 운반하는 등 민역이 심해지자 17세기 초 700호에 달하던 청산도의 민호가 정조 21년(1797년)에는 200호 밖에 남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관에서는 700호에 대한 민역을 부과하면서 부자들에게는 뇌물을 받고 역을 면제해 주는 대신 빈자들에게는 역을 중첩시키는 등 착취와 폐단이 날로 심했다.  그러자 1797년 선비 김몽희와 참봉 김만연, 참봉 최창세가 죽음을 무릅쓰고 조정에 수차례 상소했다. 결국 정조가 민역 12조를 개혁하여 폐단이 없어지고 도민이 안정을 찾았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당리 서문안에 공덕비를 세웠으나 세월이 흘러 훼손되어 1916년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삼현 이름과 불망지비 명문이 보인다.

 

 

 

서편제 촬영지로 향하는 발길 잠시 멈추고 눈길 한 번 주면 좋으련만

 

201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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