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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완도군

완도... 절제사 명선욱 철비

by 임병기(선과) 2017.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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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카페 심충성님이 올린 글을 통해 인지한 철비입니다.

완도 객사 뒤편에 위치한 완도 도서관 향좌측을 통해 서망산으로 올라가면 계단 우측에 자리하고 있어 객사와 더불어 해장거리 답사로는 안성맞춤이엇습니다.

 

옆의 비석은 철비의 명문이 심하게 훼손되어 근자에 석비를 세워 명선욱 절제사를 기리기 위한 듯 합니다.

 

 

명문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심충성님의 혜안에 의하면

行 節制使 明 公 瑄煜 永世不忘碑(행 절제사 명 공 선욱 영세불망비)를 새겼습니다.

좌우의 치적을 새긴 명문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후면

光武 元年 甲午 十月 日(광무 원년 갑오 십월 일).1897년 10월에 세웠습니다.

 

 

석비

철비 옆에 나란히 선 새로 조성한 비석으로 보입니다.

이비석의 명문을 읽었다면 명선욱절제사의 치적(?)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철비 명문을 알 수 없을까요?

다행히 완도 신문에 "완도군지"에서 발췌한 명선욱에 대한 글이 보입니다.

 

“1984년 8월 초순 전주 동학교도 김상률이 고금도와 조약도 사람들 10여명이 부흥리 서재에 모임을 만들어 완도내면과 완도외면(그때는 완도군이 설군이 되기 전이기 때문에 타군에 속했다) 여러 인사들을 청하여 권고하기를 ‘도처에서 동학이 창궐하니 만약 가리포진에 본소를 세워 왕래하지 않으면 백성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어렵고 또 탐관오리와 토호 및 무단자를 응징하여야 한다’고 역설하니 감히 누구 하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따로 회합하여 임원을 선출하니 회장에는 심경선과 부회장에는 박내서 두 분 70 노인으로 선정하고 각기 소임을 책정하였다. 또 한 그날 즉시 가리포진 이방 김관칠을 잡아다 태형으로 징계하였다. 이 사실을 가리포진에서 병영으로 보고하여 회장과 임원을 잡아다 가두었다. 주민들은 지난 계미민란 때의 일을 생각하고 벌벌 떨었다. 그 때 첨사의 매부인 차유선이 직접 병영에 보고하여 마침내 무사히 처리 되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첨사 명선욱 공의 은공을 기리기 위하여 1897년 선정비를 원동 나루터 입구에 철비로 세웠으나 일제 강점기 때 쇠붙이 공출로 없어지게된 것을 당시 군외면장이 은밀히 보관해 두었다.“

 

위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팩트

1.문장 서두의 1984년은 1894년의 오기로 보입니다.

2.동학, 민란에 연루된 군민을 절제사 명선욱이 방면했다는 것을 추론 가능합니다.

3.현재 철비가 군지에 언급된 철비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철비는 1894년 갑오년에 절제사 명선욱의 영세불망비로 조성 하였으나, 군지에는 1897년 첨사 명선욱의 선정비로 기록하고 있어 차이가 보입니다.

4.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명선욱이 동학 또는 민란에 관련된 군민을 훈방 방면한 것에 대한 기념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추론임을 밝힙니다.

 

 

사진으로 보지 말고

철비 자료로 읽으시기를...

 

201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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