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초면 고란리 고란마을 용당산을 배경으로 넓은 고란들이 전개되는 전형적인 취락의 배치로, 옛날 난초가 많이 자생하여 부락 명칭이 유래된 고란마을 입구 ‘장승거리’ 혹은 ‘삼거리’라 불리우는 소공원에 계신다.
고란마을 장승은 액과 살을 막아 주는 마을 수호의 상징으로 전한다. 옛날 마을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에, 한 선비가 ‘마을 앞에 장승을 세우면 화를 막을 수 있으리라’는 비책을 알려주어 목장승을 세웠다고 한다.
고란들녘
장승은 벙거지를 쓰고 도포자락처럼 긴 웃옷을 걸치고 있다. 신체에 비하여 긴 얼굴이다 이마는 넓고, 툭 튀어나온 눈, 코는 두툼하고, 귀는 길다. 이빨은 드러낸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전형적인 장승처럼 투박해보이지만 익살스런 느낌이다.
뒷면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처음에는 목장승을 모셨으나, 1938년에는 석장승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장승 뒷면에는 乙丑十三年을축십삼년 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본래는 昭和十三年소화십삼년 이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광복후 乙丑을축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도초도의 다른 마을처럼 고란마을에서도 장승은 하당제의 신체로 모셔졌다. 즉 정월 보름에 올린 동제는 당제, 하당제, 일종의 굿놀이인 죽마제竹馬祭 순으로 이어진 마을축제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명맥이 끊어진 듯 하다.
죽마제竹馬祭 신안 문화원의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도의 띠배 제의와 바슷한 것 같다.
"상당에는 당집과 당마당과 당나무가 있었다. 상당의 당집에는 당할머니, 할아버지, 며느리, 아들, 딸과 마신, 천신, 지신을 모셨다. 이 당집은 1963년경 허물어져 버렸고, 현재는 당나무와 당마당만 남아 있다. 당제일은 정월 보름으로 3일전인 음력 정월 12일부터 3인의 제주가 상당에 가서 근신하다가 제를 지낸다. 제주들 외에 잡인은 출입을 금하였다. 제주가 제를 지내고 있을 때 당주(당을 관리하는 총무)가 마을의 풍년을 발원하는 소지를 올리고, 두 사람은 새벽 4시경에 상당제를 끝내고 하당으로 내려왔다.
우선, 당제의 제주가 죽마를 탄 마장사에게 제물을 대접하는 내용의 대사를 주고 받은 뒤 마장사가 죽마를 타고 달리면 동네 사람들은 죽마의 말머리와 입 부분을 힘차게 때리곤 했다. 동네 사람들이 매를 맞아 말주둥이가 터지면 농사가 잘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장사는 동네사람들에게 쫓겨다니다가 2km 떨어진 엄감포 포구에 이르게 되고 여기서 마신에게 제물을 차리고 모든 재액을 갖고 나가도록 기원한 후 바다에 죽마를 버렸다.
기회가 되면 도서지방에서 행해지는 당제에 참관하고프지만.
누가 알려 줄 것인가?
2016.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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