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라남도/신안군

신안...월포마을 장승

by 임병기(선과) 2016. 9. 9.
728x90
728x90

 

 

비금면 내월리 내월 우실에서 바라본 전경

산아래 마을이 돌담장이 있는 내촌마을 이고, 멀리 들판 건너 부락이 석장승을 모신 월촌 부락이다.

 

 

선왕산 숭애봉

 

 

장승은

마을과 마주보는 숭애봉의 강한 기운 때문에 마을에 액운이 겹치자 주민들이 조성한 이른바 풍수비보 장승이다.

 

신안문화원의 자료에 의하면

"1950년대 어느 해, 마을의 젊은이가 많이 사망하는 등의 액이 겹치자, 전남균씨는 그 원인이 마을 앞쪽에 흉한 범아재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선왕산 숭애봉의 세찬 기에 있다고 해석하고 그 기를 막아내는 방법으로 이 마을 앞에 숭애봉을 마주보는 장승을 세울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마을일을 맡고 있었던, 그리고 현 제보자 중의 한 사람인 황성철 씨가 전씨와 함께 계획을 구체화하여, 돌을 마련하고 석공을 불러다 장승을 세웠다. 석공은 도초면에 거주하던 사람 3명을 불렀으며, 장승의 재료가 되는 돌은 농경지 건너편 뒷산에 있던 큰 바위를 썼다 한다. 지금도 제보자 황씨는 이 장승이 그 이름처럼 대장군이기에 능히 앞산의 기를 꺾어 살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장승을 모신 석공은 도초면에서 거주하던 3명"이라는 문맥으로 미루어 현재 도초도에 남아 있는 외남리,수항리,고란리 장승을 모셨던 석공들의 제자(?)들이 1955년 까지 도초도에 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락민들은 대장군. 장석. 장성.장군으로 모신다

머리에 투구를 쓰고 두 손으로  긴 칼을을 거머쥐었으며 눈을 위로 치켜 떠 마을 앞의 숭애봉을 주시하고 있다.

기단 하부에는 대장군大將軍이란 명문과 함께 단기4288년 을미년‘檀紀 四二八八年 乙未年(1955년)건립연대 명문이 새겨져있다.

 

 

원을 조성한 문양이 아니며

투구를 뒤쪽에서 묶은 매듭 때문에 생긴 형태이다.

 

 

 

 

 

 

 

민속제의

신안문화원 자료에 의하면 월포마을에서도 동제가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산제는 마을 뒷산, 하당은 장승 앞에서 올렸다고 한다. 금줄이 보이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현재는 매년 마을동제를 정기적으로 모시지 않은 듯하다. 상당 아랫쪽에 쥐를 모신 쥐당이 있었다고 한다. 신안의 다른 섬에서도 쥐당을 모신 당이 보인다.


쥐는

우리민속, 특히 해안도서지방에서

뱃길의 안전과 농사의 풍흉을 결정하는 영물로서 마을 수호신으로으로 모셔진다.

 

"월포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 자정에 ‘산제’ 또는 ‘당제’라 부르는 제의를 마을 뒷산 상당에서 지낸다. 상당은 높이 116cm, 폭 193cm 크기의 석단으로 내부는「사신주 단기 4288년(1955)」이라 새긴 반반한 돌이 세워져 있으며 주위는 자연 돌담으로 둘러져 있다. 이 상당의 당신은 산신․당할머니․할아버지이다. 상당 아랫쪽에는 쥐신을 모신 쥐당이, 산의 하록(下麓)에는 제기를 보관한 사신당이 있다.

 

하당은 ‘대장군’ 장승이다. 상당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150여m 앞으로, 장승이 서있는 사장거리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상당에서 상당제를 지낸 후, 장승에서 하당제를 지내는데 이 제의는 ‘장승제’, ‘장성제’ (이하 장승제라 표기)라 불리운다.


정월 이튿날, 제관으로 뽑힌 2명의 주민이 3일 간 사신당에 거주하며 제를 지내기 위한 정성을 드린다. 그 동안 당에는 제관 외에 아무도 가까이 갈 수 없으며, 제관들은 당의 청소, 제물의 마련 등 온갖 준비를 한다. 정월 보름날 자정, 제관은 메․주․과․명태․우족․산채 등의 제물을 차리고 헌작․재배․독축․소지의 순으로 제를 지낸다. 상당제가 끝나고 내려오는 길에 제관은 쥐당에 밥 한 그릇을 진설하고 내려온다.


하당제에서는 우선 장승 앞에 짚을 깔고 메․주․과․포 등의 제물을 진설한다. 장승제는 당제의 제순처럼 복잡하지는 않다. 헌작․재배․구축의 간단한 순서이다. 구축에서는 ‘마을에 재앙이 없게 해달라’는 내용의 기원을 한다. 제관 외에는 아무도 당에 오를 수 없는 상당제와는 달리 장승제에서는 주민 모두가 참석할 수 있다. 과거에는 장승에 대한 주민들의 신앙이 강했었다. 주민들은 잔치집에라도 다녀올 때면 장승 앞에 떡이나 술을 조금씩 두고 갔으며, 만약 그냥 지나칠 때는 반드시 탈이 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승제 외에는 어떤 의례적 행위가 발견되지 않는다."

 

 

 

 

월촌마을 돌담장

뒤편마을 뒷산, 석장승은 저 산에서 채석한 자연석으로 모셨다고 한다.

그리고

상당과 쥐당 등 상당을 모신 터전이며 마을 제의가 시작되는 성지었을 것이다.

 

2016.08.26

728x90
728x90

'전라남도 > 신안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안...외상마을 석장승  (0) 2016.09.12
신안...수대항 고운정  (0) 2016.09.11
신안...내월 우실  (0) 2016.09.08
신안...내촌마을 옛담장  (0) 2016.09.07
신안...지당리 팽나무  (0) 2016.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