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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하남시

하남...춘궁리 오층탑.삼층탑

by 임병기(선과) 2009.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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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황사바람도 옛님을 만나는 즐거움에 비켜난 듯하다. 운전 면허시험 코스보다 더 어려운 진입로를 거쳐 춘궁리 오층탑에 도착했다. 여느 절터 처럼 포근한 기운이 감싸고 있는 폐사지에 나란히 서 있는 탑은 처연한 모습 보다는 마치 오누이 같은 느낌이다. 

 

잠시후 출연하신 침향님과는 처음 뵙는데도 거리감도 낯가림도 없이 오랜 친구 같았다. 사이버 동호회 인연은 크릭 두 번으로 쫑치는 사이라지만 진한 정은 베여 나오는 법이다. 동행한 유현에게 "무척 무서운 분"으로 알았다며 청산유수의 달변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유현 역시 지금은 카페에 올린 글은 엄청 순화된 문장이며 예전에 닉이 "싸움닭"이었다고 너스레를 부린다.

 

그도 잠시 옛님 이야기가 무르익고 하남의 역사 특히 춘궁리 사지에 관한 폭넓은 지식으로 첫방문한 우리에게 이해를 북돋우어 주었다. 그사이 멀리 긴머리 아가씨처럼 보이는 님이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 오신다. 나이보다(?) 훨 젊은 투덜이님이다. 우리의 왕비마마 침향님께서는 "전화하기 곤란하다고 닉을 바꾸라며" 말씀에 힘을 주셨다.

 

 

춘궁동의 지명유래는 조선시대부터 일컬어 오던 춘장동의 춘자와 궁말의 궁자를 합쳐만 든 명칭으로 상사창, 하사창, 항, 교산동을 관장하는 행정동명을 겸한다고 하며 백제와 고려 도읍지(?)와 관련 있을 것 같은 동명도 있다.


◎궁안 : 이곳은 백제시대 궁궐이 있었다 는 곳으로 지금도 그 유적지가 있어 발굴 기다리고 있다.
◎춘장 : 이성산성아래 부락으로 궁지가 있었다하나 정확한 고증은 없다.
           

하남시 홈페이지에는 "하남은 삼국시대초 온조왕 13년에 현재 춘궁동 일대로 도읍을 정하고 하남위례성이라 불리어 왔고, 백제 근초고왕 25년 까지 백제의 도읍지 였으며..."라고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삼.오층탑이 서 있는 춘궁리사지는 동사지로 알려져 있다. "춘궁동 고골저수지 부근의 사적 제352호로 지정된 동사지(棟寺址)는 백제시대의 절터로 추정되며, 신라 황룡사에 버금가는 규모의 절터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절터는 남한산성< 南漢山城 >과 이성산성< 二聖山城 >이 동북으로 바라보이는 분지에 자리잡았다. 1988년 발굴조사되어 절 의 규모와 건립 시기 등이 밝혀졌다. 

금당은 경주 황룡사 금당에 버금가는 큰 건물이 었다. 금당에 앉혀졌던 본존불< 本尊佛 >의 하대석< 下臺石 >은 직경이 5.1m에 이르는 8각 대좌로 그 시대 최대의 것이다. 이 절은 후삼국시대에서 고려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당 시 유행하던 거대한 규모이다.

발굴 과정에서 금동불상과 막새 기와들, '동사< 桐寺 >'라는 명 문< 銘文 > 기와와 동으로 만든 불기류 및 도자기들이 출토되었다. '동사'라는 명문기와가 발 견되어 이절의 이름이 '동사'임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위에서와 같이 대단히 웅장하고 거대한 고려시대 의 절로 조선 초기까지 남아 계속 남아 있었으나, 그후에 폐사된 중요한 절터이다."  

 

동사의 철불상으로 알려진 철불좌상의 자료를 가져온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제332호. 높이 288㎝.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의 옛 절터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사지(寺址)에는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진 석조대좌가 전하고 있는데 철불에 비해 크기가 작아 이 상의 대좌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존하는 철불로는 가장 큰 예이며 거불(巨佛)이면서도 전체적인 구도가 안정되어 있고 세부묘사에서도 섬세함을 보여주는 수작(秀作)이다. 머리는 큰 편으로 나발(螺髮)이며 둥근 육계 밑에는 계주( 珠)가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풍만한데 길게 치켜 올라간 눈과 오뚝한 코에 비해 인중이 짧고 입이 작다.

 

계주와 인중이 짧고 입을 작게 표현한 특징들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법의를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입고 항마촉지(降魔觸地)의 수인(手印)을 취한 여래좌상으로 통일신라 석굴암본존상의 양식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다. 법의가 몸에 밀착되어 건장한 몸의 굴곡이 드러나 보이지만 옷주름의 표현에서 다소 도식화된 면이 보인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손이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었고 불상의 표정이 살아 있는 등 뛰어난 조각수법을 보여준다.

 

결가부좌한 다리 밑에 삼각형으로 접혀진 옷주름 표현 역시 석굴암본존상을 따른 것이다. 조성시기는 고려초인 10세기 정도로 추정되며 통일신라의 전성기 양식을 이어주는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불상이라 할 수 있다. 경기도나 강원도 지방의 철불 중에 석굴암본존상 계통의 철불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이 지역이 고려초 왕건의 정치세력 기반이나 불교사원의 융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춘궁리 5층 석탑. 절터를 들어가는 순간 동행한 유현과 동시에 "백제풍이 보인다"라고 말했지만 추녀의 반전이 약하다는 느낌, 안정감을 강조한 신라탑 보다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모습 외에는 그렇게 말한 뚜렷한 이유를 모르겠다. 침향님은 백제 동사지 자리여서 백제 후손의 영향을 입은 장인의 솜씨 때문일거라고 말씀하셨다.

 

2기단. 우주.탱주를 새겼다. 1층 몸돌은 신라탑에는 없는 형식으로 이단으로 조성했다. 하단은 4개의 돌,상단은 1개(?)돌이다. 그때문에 초층에 비해 상층 몸돌 체감률이 급격하다.지붕돌도 1∼3층은 4장, 4층은 2장, 5층은 1장이다. 추녀반전도 노골적이지 않다. 상륜에는 노반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 양식을 많이 계승한 고려탑으로 위에서 언급한 철불과 동시대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붕돌 받침은 1층은 5단, 2∼4층은 4단, 5층은 3단이다.

 

 

 

춘궁리 삼층탑. 5층탑 처럼 이중기단, 상층기단 갑석에는 얕은 부연, 탑신 받침은 통일신라 후대에 보이는 각형과 호형의 2단 굄이다. 몸돌에는 우주가 있고, 옥개석 받침은 1~ 2층*5단, 3층* 4단, 낙수면은부드럽고 5층탑에 비해 추녀 반전은 뚜렷하다.

 

5층탑 처럼 1층 몸돌에 비해 상층의 몸돌 체감률이 급격하지만 신라탑 처럼 안정감 있는 느낌이다. 상륜부는 멸실되었다. 고려 초기 탑으로 알려졌지만 5층탑과 쌍탑으로 추정되지는 않는다.

 

 

하층기단 면석 안상. 상층기단 면석의 양 우주와 한 개 탱주

 

 

춘궁리 사지를 다녀온지 어느덧 한 달이 다가온다.  침향님은 여전히 전국을 주유천하 하시며 답사에 분주하시고 말없는 소녀 같은 인상이라고 말했더니 설정 모드와 내숭에 넘어 갔다고 웃으시던 투덜이님은 퇴원했는지 궁금하다.

 

유현과는 언제나 처럼 그렇게 지내고 있다. 어제는 쪽지를 주고 받다가 호구지책으로 책을 팔아 연명한다는 말에 박장대소 했었다. 침향님에게 "아직 유현이 무서운가요" 했더니. 무섭기는 커녕 길 떠난다는 풍문이 있으면 바지가랭이 잡고 싶다고 웃으시더라.

 

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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