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장흥군

[스크랩] 가지산은 탐진강을 낳고 / 장흥 보림사.

임병기(선과) 2008. 6. 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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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에서 발원한 탐진강 줄기가 어깨동무를 하며 보림사로 이어진 길은 내고향 성주댐에서 수
도산으로 가는 길과 비슷하다는 느낌으로 가지산문 보림사 일주문을 들어 섰다.
호남지역의 평지중정의 배치에 충실해 보이는 중심축상에 쌍탑, 석등, 괘불대가 눈에 들어와 동
의를 구할려고 옆을 보았더니 유현도,박초시도 보이지 않는다.
일주문을 통과후에는  민들레 홑씨 바람에 날리듯 제각각 흩어졌다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어
느 지점에서 만나  일주문을 나설 때는 함께 산문을 나서는 까닭이 서로의, 관심사와 문화재 감
상의 편식증도 없지 않겠지만, 구애받지 않고 움직이고 싶은 마음의 표출일 것이다. 
구산선문 가람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보림사의 남북 중심축 중심에는 대적광전이 자리잡고
있어 동선을 옮기니, 일반적인 괘불대 넓이 보다 폭이 넓고 위치도 의아스럽지만,금당 바로 앞에 
조성되는 여타 가람의 배치와는 차이가 있다.
이런 연유가 사찰의 중심이 탑- 법당 으로 변천 과정을 거친 후 야단법석시에 괘불을 올린 자취
겠지만 그렇게 큰 괘불이 있었을까?
금당 앞 통일신라의 가람배치에 충실한 쌍탑은 전형에 비해 크기, 기단의 탱주가 줄어들고 지붕돌
의 반전도 심해 신라하대의 특징을 보여주나, 옥개석의 층급 받침은 아직 5개를 유지하고 있으며
온전한 상륜부가 탑의 가치를 배가시키지만 전성기에 비해 힘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보림사 쌍탑은 발견된 탑지로인해 조성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어, 탑유형의 편년을 추
적하는데 귀한 양식이라 하겠다. 
탑 전면의 배례석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나, 쌍탑의 중심에 자리한 석등도 신라하대의 팔각원
당형 양식으로 상륜부도 남아 있어,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을 시원으로 하는 팔각원당형의  석 
등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작지만 쉽게 스쳐갈 수 있는 석등은 아니다.
보림사의 주전각인 대적광전에는 구산선문 개산시기에 모셔진 비로자나 철불이 1000년 이상을
당당한 모습으로 중생을 굽어 보시며 '너와나는 하나이다'는 감로법을 설하시고 계신다.
천년 세월을 간직한 체 사라질 위기가 6.25 전쟁시에 있었으나, 보림사의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
되었음에도, 화재에 취약성을 극복하고 우리 곁을 지키고 계셔, 신라하대 지방호족의 부의 상징
으로 조성된 목적이야 차치하고, 나도 몰래 삼배를 올렸다.
그런데, 작지만 당당하고, 검박하지만 아름다운 석탑과, 석등에 어울리지 않게, 고대광실 같은 
대적광전에서 비로자나 부처님은 편하실까? 
사립문은 초가집과, 한복에는 고무신이  제맛이지 않은가? 
대적광전 외벽에는 가지산문의 종조 도의-2대 염거- 보림사 개산조 체징, 가지산문 출신의 일연
선사, 혜가 단비도,혜능 도정도가  팔상도와 나란히 한글로 표기하여 선종사찰의 맥을 암시하고 
있는데 과연 선사들이 화려하게 치장된 오늘의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格이란 은은하게 풍겨 나오고, 소리없이 스며드는 것인데......
여전히 초시는 보이지 않고 대웅보전 근처에서 유현이 날 부른다. 본래 있었는지 모르지만 대웅
보전은 보림사의 동서중심축상에 위치하며, 느슨하게 비대칭으로 명부전과 산신각을 좌우로 배
치하여, 좁은 공간에 촘촘한 영남지방 산지중정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놀라운 것은 마치 본사인 송광사의 대웅보전을 흉내라도 낼 듯 화려하게 꽃단장한 모습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겐 심사가 편치 않은데 유현이 불단위의 부처님을 가리킨다. 주불과 협시불이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다만 사무외인,선정인,전법륜인의 수인만 다를 뿐인데, 이런 예가 있
었는지, 있었다면 상징성은 무엇인지?
더구나 세분의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로 지장,보현,문수,관세음을 모셨는데 석가모니불과 어떤
관련성으로 각각의 자리을 잡고 계시는 것일까?
잡다한 상념 버리고 절에 순례왔으면 회개하라는 듯 명부전 외벽의 지옥도, 통도사 극락전 반야
용선을 밝게 채색한 분위기의 반야용선도가 사람의 심사를 옭조은다. 명부전은 용마루에 길게
누워있는 용뿐만 아니라 온통 용의 세계여서,왠지 죄많은 나에게 '용용죽겠지' 라며 놀리는 듯 
한 느낌은  나의 어리석음 탓인가?
어느새 세명이 보조선사 체징의 부도 앞에 모여, 가지산문의 흐름과 인도,중국의 보림사와 남종선
에 관해 유현의 구라가 이어지고, 상감의 미적 감각이 장단을 더하지만, 나는 말없는 관객에 머
물고 있다. 
내게는 둔중하다는 느낌과, 하대석과 상대석 몸돌에 새겨진 화려하고 섬세하고 다양한 조각에  
도 불구하고 남성적으로 보여질 뿐이다.
창녕 술정리 동서탑을 답사하려는 사람에게 서탑을 먼저 보라고 말해주었는데, 남도 절집의 부도 
순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쌍봉사, 태안사,실상사,연곡사 부도를 뵙기 전에 보림사 부도를 먼
저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은 나의 근시안적인 눈높일까?
동부도 밭에서도 안내문에 기재된 시대적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우리들만의 향연을 열면서 토
축으로 구분된 각각 부도의 위계에서는 내 특유의 소설도 각색해보았지만, 뭐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는, 그중에서도 미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아니 거부하는, 이몸한테는 통일신라~고려초 구산선
문 사찰의 화려한 부도 보다는 단순 명쾌한 조선조의 석종형 부도가 와닿는다고 말한다면, 그것
은 회피일까? 개성일까?
2005.03.21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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