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간채
천관사 아래서 기다리던 한계령님과 만났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맛보는 큰 보람의 하나가 각지역에 거주하시는 분들과 현지에서 만나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계령 님 역시 출발전부터 방촌리 탑 도난. 석불의 존재 등을 알려주셨으며 위백규 선생 고택으로 안내했다.
지정 당시 명칭은 장흥위계환가옥(長興魏桂煥家屋)이었으나,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존재 위백규(1727-1798)의 고택으로 장흥 위씨의 집성촌에 위치하고 있어, 그 호를 따라 ‘장흥 존재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고택은 장흥 위씨 동족부락인 방촌마을 안쪽에 위치한 고택이다. 집 배치와 관련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왔다. "고택에는바깥마당에는 연못이 조성되었고, 집 뒤로 대나무 숲이 우거진 앞에 안채가 서남향하여 높직이 자리하고 안마당 맞은편으로 대문간을 배치했다. 안마당 서쪽에는 헛간채를 두고 마당 동쪽으로는 서재가 놓였다. 안채 동북쪽에는 여러단의 계단을 올라서서 사당채가 배치되었는데 나무들에 가려서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안채
서재
납돌이집 서재는 특이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단칸집인데 남쪽과 동쪽에 퇴를 둬서 안마당으로 부터 돌아 앉았으며 남쪽면에는 팔작지붕을 만들었는데 북쪽면은 맞배지붕으로 박공으로 처리했다. 살림집의 구조도 아니며 공부방으로 이용되는 당옥(堂屋)으로서도 격식을 갖추지 못했다. 간살이는 단칸 구들을 만들고 남 ·동쪽퇴에는 툇마루를 시설했다.서재가 튀어나와 있는 것도 대문 밖의 연못을 내다보기 위한 구조로 생각된다.
위백규 선생의 호는 존재(存齋)이고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났다.1754년(영조 30)에 증광(增廣) 동당시(東堂試)에 합격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2세때 글을 해독하고 9세때 천관산에 올라 시를 읊어 세상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경학(經學)에 심형을 쏟다가 문사(文辭)만 하는 학문은 필요없다고 하여 천문.지리.율력.복서.병도.산수로부터 백공기예(百工技藝)에 이르기까지 모두 익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헛간채
안채 대청
안채 후원 굴뚝. 뒤안 가운데 축조된 안채 굴뚝은 벽을 기와로 쌓고 골기와를 얹었다.
후원
만덕사...위백규
다산이 귀양오기 3년전에 세상을 떠난 존재의 시다. 다산과 혜장스님도 존재를 흠모하지는 않았을까?
사당
연지
대문 바깥에는 작은 연지. 방형 연못 중앙에 방형 석가산을 조성 대나무를 심었다. 기왕 조성하려면 천원지방이었으면 좋을텐데 입지가 여의치 않아 방형으로 만든것 같다. 존재 선생이 어린시절 공부에 열중할 때 연못의 개구리 울음소리가 방해가 되자 부적을 던져 개구리를 물러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현재도 개구리가 서식하지 않는다고 한계령님이 부연 설명하셨다.
방촌마을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의해 꼭 지켜야할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전통문화마을 마을이다. 존재고택. 유물전시관. 고인돌. 석장승. 장천재를 답사하는 동선을 수립하면 좋을 것이다.
2009.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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