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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아산시

아산...수암사 석조여래좌상. 석조관음보살좌상

by 임병기(선과) 2024.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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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일주문 현판이 정겹습니다.

어금니 바위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에 돈 많고 부자인 욕심쟁이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땅이 많아서 소작인도 많았다. 노인에게는 칠삭둥이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소작인 중 한 명의 딸을 며느리로 맞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었다. 가난한 농사꾼의 딸이기는 하나 아름답고, 현명하여 누구 못지않게 많은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노인은 가난한 농사꾼에게 몇 번이나 청혼했지만, 승낙을 얻지 못하자 소작할 땅을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소작을 하여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농사꾼 부부에게는 큰 걱정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효성스러운 딸이 스스로 혼인하겠다고 나섰다. 부모는 펄쩍 뛰었지만, 외동딸의 갸륵한 마음을 저버리지는 못하였다. 혼인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며느리는 임신했고 노인의 심술은 날로 심해져만 갔다. 큰 흉년인데도 구두쇠 노인의 광에는 양식이 그득했고, 며느리는 동냥 온 이들에게 무언가를 몰래 주곤 하였다. 또한 남편을 설득해 학문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시아버지인 욕심쟁이 노인은 칠삭둥이 아들이 무엇을 하겠냐며 아들을 쫓아 버렸다. 어느 날 초라한 승려가 시주를 하러 왔고 며느리는 여느 때처럼 몰래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하였다. 그런데 그 광경을 지켜본 욕심쟁이 노인은 크게 화를 내며 쌀을 다시 빼앗고는 외양간의 쇠똥을 승려에게 가득 뒤집어씌우고, 시주 그릇에도 가득 담아 주었다. 거친 욕설을 퍼붓던 노인이 들어가자, 승려는 며느리에게 살며시 말했다. "지금 집에서 멀리 물러나시오. 곧 재난이 닥칠 터이니, 빨리 떠나시오. 단 가다가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되오." 하며 승려는 의심스러운 말을 남긴 채 떠났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빨리 집을 떠나자고 하자 노인은 한사코 거절하며 화를 냈다. 며느리는 아기를 업은 채 집을 나왔다.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고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며느리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던 승려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다. 으리으리한 집, 넓고 기름진 문전옥답이 씻기고, 큰 연못이 된 것이다. 그 순간 며느리는 아기 업은 형상의 바위로 변했다. 남편이 성실한 일꾼이 되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사라진 후였다.

남편은 욕심 많은 아버지를 동정하고 효성스러운 아내에게 감탄하였다고 한다. 바위의 형상이 아기 업은 형상이기도 하고, 흰 어금니와 비슷해 ‘어금니바위’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산시의 옛 이름이 ‘어금니바위’로부터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수암사(修巖寺)

아산시 염치읍 서원안길 66

원광전

석조여래좌상. 석조관음보살좌상

문화재청 발간 한국의 사찰문화재에는 조선후기 경주불석으로 제작한 불보살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석조여래좌상

나발, 중간계주, 낮은 원통형 정상 계주, 살찐 상호 뭉툭한 코가 이채롭습니다.

불신에 비해 상호가 크며, 대부분 조선 후기 불상처럼 고개를 약간 숙였습니다

이중착의, 일자형 군의 매듭, 수인은 소매에 감추었으며, 대의가 무릎을 덮었습니다.

석조관음보살좌상

두건을 착용하였으나 중앙에 화불을 새겨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살찐 상호, 짧은 목, 통견, 영락장식, 군의자락의 나비형 매듭, 두 손 위에 정병을 수인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양쪽 무릎의 홈의 용도는 무엇인지.

수암사

옛 수암사지에 건립된 태고종 사찰로 알려져 있으나 자료를 찾을 수 없었으며 더구나 스님이 출타 중이어서 사적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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