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특별자치도/제주71

제주...원당사 소조여래좌상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여정에 지친 초라한 몰골로 찾아든 절집 노비구니 스님이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몇 번을 정중하게 부탁하였더니 숨은 이야기를 건네셨습니다. 문화재 지정해준다고 서울에 거주하는 어떤 분에게 거금을 건네었는데 물 건너갔답니다. 이후 불상을 찾아오는 사람 기피증이 생겼다고 합니다. 에혀 스쳐가는 사람도 있고... 나발 중간 계주, 정상 계주 백호가 있고 정연한 상호 이중 착의의 법의, 대의 자락이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화문의 승각기 매듭, 항마촉지 수인 한국의 사찰문화재에는 조선 후기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작은 절집의 성보 문화재로 지정해준다는 거간꾼들의 농간 때문에 상처 받는 스님들이 있나 봅니다. 쫌!!!!! 2021.06.16 2021. 7. 10.
제주...관덕정. 돌하르방 관덕정 네 차례 제주 여행을 했음에도 제주목관아는 기억에 없고, 관아 부속 건물인 관덕정만 떠오르며, 돌하르방은 기억에 없습니다. 어떤 목적을 가진 답사가 아니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단체 여행의 병폐와 가족 여행의 한계 때문이었다고 위안 삼아 봅니다. 관덕정 1448년(세종 30) 안무사(安撫使) 신숙청(辛淑晴)이 창건한 후 1480년(성종 11)에 목사 양찬에 의해서 중수되었다. 이때 쓴 서거정(徐居正)의 중수기에 의하면 관덕정은 "이 정(亭)을 만든 것은 놀이나 관광이 아니라 본래 설치함이 무열(武閱)을 위한 것인 즉, 지금부터 제주의 사람은 날마다 이에 사습(射習)하되 과녁을 쏠뿐만 아니라 기사(騎射)를 익힐 것이요, 기사뿐만 아니라 전진법(戰陣法)을 익힘으로써 적변(賊變)이 있을 때는 삼읍 백성들이.. 2021. 7. 9.
제주...제주목 관아.돌하르방 제주목 관아 조선시대(朝鮮時代)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濟州牧) 관아는 지금의 관덕정(觀德亭)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며, 이미 탐라국(耽羅國)시대부터 성주청(星主廳) 등 주요 관아시설(官衙施設)이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아시설은 1434년(世宗 16) 관부(官府)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 타 없어진 뒤 바로 역사(役事)를 시작하여 그 다음해인 1435년에 골격(骨格)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내내 중·개축(重·改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때 집중적으로 훼철(毁撤)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제주시에서는 탐라국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정치·행정·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제주목 관아를 원래의 양식(樣式.. 2021. 7. 8.
제주...오현단 오현단(五賢壇) 사화, 당쟁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귀양 온 선비, 관리로 파견된 사람 중에 다섯 사람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제단으로, 이들의 위패를 모시던 귤림서원의 옛 터에 세워져 있습니다.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어 오현단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오현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 선생, 중종 29년(1534)에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규암 송인수선생, 선조 34(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 분입니다. 오현단에는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조두석과, 묘정비, 김정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 송시열선생의 글씨가 남아 있으며, 근자에 복원된 .. 2021. 7. 8.
제주...삼성혈의 돌하르방 삼성혈 제주 관광에서 놓칠 수 없는 코스이며, 개인적으로 이미 순례한 경험이 있습니다. 오늘은 제주 읍성에 있었던 돌하르방 4기를 찾아왔습니다. 삼성혈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년전 제주도의 개벽시조(開闢始祖)이신 삼을나 삼신인 [三神人 : 고을나(髙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이 이곳에서 동시에 태어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우마(牛馬)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 삼공주를 맞이하면서부터 농경생활이 비롯되었으며 탐라왕국(耽羅王國)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이 세개의 지혈은 주위가 수백 년 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든 나뭇가지들이 혈을 향하여 경배(敬拜)하듯이 신비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내려도 일 년 내내 고이거나 쌓이는 일이 .. 2021. 7. 7.
제주...제석사 미륵불 제석사 "1902년 독지골 노인이 수행하던 제단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1928년 고자선 보살이 포교 수행을 위해 이 제단을 제석단이라 이름 붙이고, 원불당(願佛堂)으로 개수하여 포교 수행 도량으로 일으켜 세웠다. 1935년 4월에는 각고의 노력 끝에 사찰 건립을 마무리하였다. 1938년 5월 1일에는 해인사 말사 실상사 제주도 제석암 포교당이 되었으며, 1990년에 주지로 부임한 종호에 의해 중건 불사가 시작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때 대웅전이 새로 중건되었고, 제석당과 범종각, 요사 등도 완공되었다."(디지털 제주 문화대전) 제석당 제주 답사 동선을 세우면서, 제석당이라는 전각과, 봉안된 세분 미륵을 뵙고 싶었습니다. 제주 여러 사찰과 민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우리 민속의 "당"신.. 2021. 7. 7.
제주...제주시청의 돌하르방 재주 시청 돌하르방 시청 현관 좌우에 시립하고 있습니다. 제주 시내에 분포한 여러 하르방과 같이 제주목(성)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돌하르방(옛 답사기에서 가져옴) 조선 시대 제주현, 정의현, 대정현 성문 입구에 세워져 있던 석상石像으로, 마을, 성 수호신, 벽사, 성주민들의 안녕, 풍농, 이정표 기능을 상징하고 있어, 육지의 마을 장승, 사찰 장승, 성문 장승과 동일한 목적으로 조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돌하르방은 우석목, 무성 목, 벅수 머리, 장군석, 옹중석 등으로 지칭되었으나 해방 후에 돌하르방으로 불려지다가 1971년 8월 26일 지방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서귀포 문화대전에 의하면 제주에는 총 48기 돌하르방이 조성되었으나 제주성 돌하르방 1기.. 2021. 7. 6.
제주...KBS의 돌하르방 KBS 돌하르방 제주 읍성 동문밖에 있었던 4기 중의 2기이며, 다른 2기는 자연사 민속박물관에 있습니다. 돌하르방 조선 시대 제주현, 정의현, 대정현 성문 입구에 세워져 있던 석상石像으로, 마을, 성 수호신, 벽사, 성주민들의 안녕, 풍농, 이정표 기능을 상징하고 있어, 육지의 마을 장승, 사찰 장승, 성문 장승과 동일한 목적으로 조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돌하르방은 우석목, 무성 목, 벅수 머리, 장군석, 옹중석 등으로 지칭되었으나 해방 후에 돌하르방으로 불려지다가 1971년 8월 26일 지방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서귀포 문화대전에 의하면 제주에는 총 48기 돌하르방이 조성되었으나 제주성 돌하르방 1기가 분실되고, 2기는 1960년대 국립 민속박물관으로 옮겨져.. 2021. 7. 6.
제주...보덕사 목조여래좌상 보덕사 제주시 도남동 80-2번지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의 말사입니다. 대웅전 불단 삼존상 주존불이 창건 당시에 해남 대흥사에서 모셔 온 목조여래좌상이라고 합니다. 목조여래좌상 나발, 무척 높은 육계, 정상 계주가 있으며, 이마에는 백호를 새겼습니다. 방형 상호, 목은 두터우며(보수?), 삼도를 표현하였고, 법의는 변형 통견으로 이중착의법입니다. 왼쪽 어깨에 걸친 의문이 흘러내려 오른팔에 걸쳐 있으며, 대의 자락은 무릎 위로 흘러내렸습니다. 승각기는 띠 매듭이며, 수인은 분명하지 않으나 아미타 수인 같습니다. 길상좌, 복장공은 있으나 복장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전합니다. 입구에서 만난 비구니 스님의 짐을 들어 드렸더니 참배 후 차 한 잔 하고 가.. 2021. 7. 5.
제주...월정사 소조(석조?)여래 좌상.목조보살입상 월정사 오라동에 자리한 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의 말사. 월정사 "1934년 음력 4월 8일 김석윤이 제주 포교소 월정암을 창건하면서 월정사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월정사 자리는 1871년 무렵 토굴을 마련하고 수행하던 승려가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1938년 10월 1일자 『불교시보』를 보면, 월정사에 조선불교 중앙선리참구원 제1지방 분원이 마련되어 제주 최초의 선원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기사가 소개되었다. 이 제주 선원은 1940년대까지 존속했으며 참여한 승려들의 수는 10명 이내로 기록되어 있다. 해방이 된 후 1948년에는 제주 4·3사건으로 사찰이 전소되고 승려들이 희생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그 후 1960년대에는 몇몇 승려들의 노력으로 월정사 터에 7평 가량의 난민.. 2021. 7. 5.
제주...제주대학교 박물관 제주대학교 박물관 실내 전시실. 전시실은 야외전시장, 1~3층 전시실, 야외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2층 전시실의 제주의 바다, 제주의 땅, 제주의 사람을 중심으로 둘러보았습니다. 조천석, 돌코냉이 조천석(朝天石) 산지천의 잦은 범람을 방지하고 마을의 안녕과 액운을 막기 위해 세웠으며, 본래 위치는 산지천 칠성통 입구의 광제교 밑에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몇 년 전 제주 답사에서 박물관 조천석과 같은 해에 세운 산지천의 조천석을 답사하였습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5884 명문 朝天石 명문(후) 경자 춘 우산 서(庚子 春 牛山 書) 경자년 봄에 우산이라는 분이 쓴 글이지만 경자는 어느 해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개인적으로는 1720.. 2021. 7. 4.
제주...제주대학교 박물관 야외전시장 제주대 박물관 입구에 4기의 돌하르방이 시립 하여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제주대학교박물관은 1967년 3월 제주대학교 부속 민속박물관으로 개관하여 1985년 6월 제주대학교박물관으로 개편, 종합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속자료 수집 및 각종 구제발굴과 문화유적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지속적으로 제주도를 비롯하여 국내외 고고, 미술, 역사, 민속, 인류학 분야의 자료를 수집·전시·보존하여 학술연구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 교육 활동, 문화 행사를 적극적으로 개최하여 도민들과 소중한 박물관 자산을 공유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장유물은 매장문화재 유물 및 생활사 관련 유물 등 40,000여 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장유물 중 ‘내왓당 무신도’는 중요민속자.. 2021. 7. 4.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