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김천시 78

김천...비봉산 봉곡사

2010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304 석조여래삼존 봉곡사 중수사적(鳳谷寺 重修事蹟)과 본존불의 복장에서 나온 불상조성도금사적기(佛像造成塗金事蹟記)에 의하면 1670년 경주 불석으로 조성하여 봉안하였습니다. 석가여래 대세지 관음 칠성도. 1935년 畵工 沙彌 李奎宰 同 沙彌 金靈珠 화공 사미 이규재 동 사미 김영주 불화를 그린 화공이 아직 비구계를 받지 않은 사미입니다. 개인적으로 사미 금어는 처음 접합니다 昭和十年十二月八日 소화 10년 12월 8일 삼층석탑. 고려 오늘은 기단부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단층 기단일까요? 아니면 이층 기단일까요? 배례석 옛글에는 단층 기단으로 기록했지만... 지대석 하층 기단 갑석, 중석 망실 상층기단 중석 상층기단..

김천...방초정. 충노 석이비

방초정 10대 조부모 님 묘사 모시러 갈 때 지나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수도 없이 왕래하였건만, 마지막으로 들린 것이 2005년이었습니다 방초정(2005년) https://blog.daum.net/12977705/4769828 방초정(芳草亭) 국가지정 보물 선조 때 방초 이정복(1575~1637) 선생이 1625년 조상들을 추모하기 위해 원터마을에 지은 2층 누각입니다 화재와 홍수로 피해를 입어, 정조 11년(1787)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최씨담(崔氏潭) 천원지방의 연못입니다. 임진왜란에 화순최씨(방초정 건립자 이정복의 처)가 친정에서 시가로 오다가 왜병에 쫓기어 정절을 지키려고 아 곳 투신했고, 노비 석이(石伊)도 뒤를 따라 투신하였다고 전하는 못입니다. 겹처마 팔작지붕, 앞면 3칸·옆면 ..

김천...상친사 의호신령비

상친사(尙親祠) 조마면 신곡리 백화동에 위치 백화동은 성주 이씨 13세손으로 숙종 때 진주병마절제사를 역임한 이유항(李維杭)이 거창군 가북면에서 입향해 정착한 백화동파 집성촌입니다. 백화동이라는 지명은 영조 때 입향조인 이유항의 아들 남강(南岡)이세간(李世幹. 1724-1795)이 부친의 병환을 지성으로 구환하자 엄동설한에 살구꽃을 비롯한 많은 꽃이 피어 이를 약으로 썼다하여 백화동(百花洞)이 유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할때는 호랑이가 나타나 감싸주었고 호랑이가 살펴준 만고의 효자로 칭송이 자자했는데 이후부터 효자동(孝子洞)으로 불렸다고 전합니다. 남일대 상친사(尙親祠) 남강(南岡)이세간(李世幹. 1724-1795) 선생과 선조들을 배향하는 사당입니다. 외삼문 없이 전면에 오도재, 후..

김천...도평리 의마총

감천면 도평 1리 소용 마을 뒤편에 있습니다. 마을회관 주차 후 5분여 소요됩니다. 의마총 충장공 이언의 장군이 탔던 말 무덤입니다. 이언의(李彦儀.1600~1637) "1600년(선조33) 성주군 신곡면(現감천면 도평리)진사 이낭동과 완산이씨 사이에서 태어나 자를 윤칙(允則)이라 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라 연이어 부모상을 당하자 6년간 여막에서 시묘를 살았는데 밤낮으로 곡을 하니 원근동에서 하늘이 낸 효자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이후 향리에서 학문에만 전념하던 충장공은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나라가 위태로운데 어찌 초야에 묻혀 글만 읽고 있으랴”하며 사재를 청산해 인근 동리에서 의병을 모아 크고 작은 전투에 나아가 공을 세웠다. 1637년 인조가 남한산성에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경상도일..

김천...백마산 고방사

고방사 아주 오랜만에 찾아 들었습니다. 기억마져 아득한... 오늘 부도 명문 촬영 목적으로 순례하였습니다 고방사(2010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3300 일주문 옛 진입로에 위치하며, 바로 뒤편에 부도전이 있습니다 갑오 하 심산 윤종식(甲午夏 深山 尹鍾植) 2014년? 옹호문(擁護門), 사천왕문(四天王門) 숭정 기원후 재기미 십이월OO 서방광목천. 북방 다문천 동방 지국천. 남방 증장천 보광명전 중정 불대좌형 삼층석탑 근자에 조성하였지만 불대좌형은 흔치 않습니다 목조아이타삼존(1670년) 臺座墨書 康熙九年庚戌四月日慶尙道開寧縣南西 乞水山敲芳寺造緣 極樂敎主 阿彌陀佛 觀世音菩薩 大勢至菩薩 安于 緣化秩 證明 玄戒 持殿 妙演 畵員 勝日 性照 自圭 ○○ 思遠 士能 冶匠朴天 ..

김천...직지사 삼성암 석조여래좌상

삼성암 직지사(直指寺)의 산내암자로, 신라 중기에 창건하였다고 전합니다. 천 가지 덕을 품은 천덕산(千德山)에 세 성현이 출현하였다 하여 삼성암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선승(禪僧)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선원(禪院)으로서 널리 알려졌다고 전하며,1915년부터 약 10년 동안 의사 편강렬(片康烈)이 일본경찰의 눈을 피하여 제자들과 같이 무술을 닦으며 조국광복을 위하여 힘을 길렀던 암자로 알려져 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상단 구역에 유리광전과, 삼성각 있으며, 아래 구역에는 요사와 정와(靜窩). 상념당(常念堂). 용각(龍閣)이 자리합니다. 용각 얼마전 우리 카페 우성님이 삼성각 석조여래좌상을 포스팅하면서, 금오산 약사암 중수기에 등장하는 석불로 소개하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김천...형제산 신흥사 석조미륵입상

신흥사 지례면 형제산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금봉 스님이 2008년 창건하였습니다. 오늘은 몇 달 전 구성면 상좌원리 민가에 봉안 중이었던 미륵불을 신흥사로 이운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참배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무릎 이하가 묻혀 있었으나 현재는 전신이 온건히 드러나 있습니다. 상좌원리 석불입상(2016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5114 혼자 참배를 올린 후 물끄러미 살펴보고 있던 중에 스님께서 오셨습니다. -처사님, 상호가 뚜렷하게 보이시지요? -네. 스님 분명 보입니다. 통견의 법의 수인은 옛글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개었다고 표현하였었는데.. 스님께서는 오른 팔을 왼쪽으로 내려 법의 자락 속으로 넣고, 왼팔은 오른팔 밑으로 넣어 손이 드러나지 않은 수인이라고 시연하..

김천...주평동(뱃들) 마을 솟대

김천시 부항면 하대리 뱃들 마을 하대리 하대(下垈)는 하두대(下斗垈)[일명 아랫두대]의 준말로, 지금의 해인리에 속하는 윗두대[上垈]와 함께 마을 지형이 곡식의 양을 측정하는 말[斗]과 비슷하게 생긴 터[垈]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말의 윗부분에 해당되는 마을을 윗두대, 그 아래쪽을 아랫두대라 하였다. 마을 앞으로 삼도봉에서 발원한 부항천이 기암괴석 사이를 흐르며 절경을 자랑하고 그 가운데는 석문(石門)이라는 큰 덮개돌이 칼로 자른 듯 갈라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도사가 윗두대에 살던 장군에게 박대를 당하자 화가 나서 가문이 번성하려면 석문을 깨뜨리라고 속였고, 이 말을 믿은 장군이 바위를 자르니 그 바위 속에서 붉은 피가 흘렀고 이후 집안이 망해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자연 마을로는 뱃들·지시·아랫..

김천...정종대왕 태실

태봉산 직지사 대웅전 뒤편의 산으로 조선 2대 정종대왕의 태실입니다. 정종대왕 태실 조성에 관허여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4월 5일 을사 4번째기사 1399년 명 건문(建文) 1년 중추원 사(中樞院事) 조진(趙珍)을 보내어 금산현(金山縣)에 태(胎)를 안치(安置)하게 하고, 금산을 승격시켜 군(郡)으로 하였다. 그런데, 정종대왕 태실을 검색하면 강원도 영월의 정조태실이 검색됩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영월 정조태실 http://blog.daum.net/12977705/8725094 정종(1,357~1,419).조선국왕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20500002 태실 일제강점기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서삼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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