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김천시

김천...김천고 최송설당 상. 묘역

임병기(선과) 2023. 6. 26.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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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저. 마애부도 마애탑에 실린 최송설당 마애각자를 통해서 알게 된 전 김천고교 교장 선생님이며, 현 송설역사관 관장인 백승환 선생님께서 추모식 일정을 알려주어 다녀왔습니다.

 

송설역사관에서 제례를 올리고, 학생들은 체육관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영상을 시청합니다. 기제사 후에는 세심관에서 추모식을 진행했습니다. 추모식 후에는 묘소를 참배합니다.

 

기제사

 

송설당 사진. 송설역사관 소장

 

최송설당

http://gimcheon.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016

 

정걸재. 수임 5 이사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운동의 주체인 분들입니다

 

정걸재貞傑齋

1919년 송설당이 지은 거처

송설당은 독실한 불교 신자로, 전국 사찰에 시주를 많이 하였다. 특히 서울로 올라온 뒤 강남의 봉은사(奉恩寺)에 다니던 중 엄비의 동생과 만나면서 궁궐로 들어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송설당의 불심은 상당히 깊었다. 심지어는 1930년 2월에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 계획을 확정하면서 작성한 계약서에, 자신이 죽으면 장례를 불교식으로 치르고, 시신을 화장하여 석함에 안치하여 미리 만들어 둔 묘소에 안장할 것이며, 정걸재(貞傑齋) 대청마루에 불상을 봉안하라는 내용을 넣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불상을 봉안하면서 그 좌우에 ‘이왕전하(李王殿下)’와 ‘이왕비전하(李王妃殿下)’, 즉 영친왕의 내외와 송설당 자신의 존위(尊位)를 봉안하고, 양제 최광익 및 여동생의 위패를 모시라고 규정한 부분이다. 그리고 늦어도 1926년 이전에 촬영된 송설당의 사진을 보면,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한복을 입었다. 송설당이 입은 한복은 범어(梵語)로 가득 장식된 긴 옷고름을 앞에 드리워져 있으며, 보면 전통 한복에다가 불교식 장식을 가미되어 있다. 당시 신문은 그녀를 ‘활불(活佛)’이라 평가하기도 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금릉 김현철 작

 

운명 직전인 1939년 5월 30일에 남긴 유언

 

최송설당 상. 국가등록문화재

최송설당 상은 원래 한국 최초로 도쿄 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조각과를 졸업한 당대 최고 조각가로 평가받던 김복진[1901~1940]이 1935년 11월 30일 제작하였다. 1944년 일제에 의해 공출되자 1950년 김복진의 제자인 윤호중[1917~1967]이 원래의 상에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였다. 김천 중학교와 김천 고등학교 교정에 서 있던 것을 2011년 김천 중고등학교 송설 역사관으로 옮겼다. 현재 교정에 서 있는 동상은 복제품이다.(디지털 김천문화대전)

복제품

기단부는 국가등록문화재라고 합니다.

 

기숙사

최송설당은 가묘를 잡으면서 풍수가 첫 번째 명당으로 지목한 땅은  양보하고 현재 묘역을 택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기숙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걸재 터 앞 연지

 

정걸재 터

 

정걸재 터, 취백헌

 

취백헌

안채와 살림집

 

무덤

 

양제 최광익 관련 글?

1914년 수장비(壽藏碑)와 함께 조성한 상석 같습니다.

 

최송설당 선대  묘

 

여사 송설당 화순최씨 수장비 명 병서

집안 사람  원근이 짓고

통정대부 감돈희 글씨

의정부 의정 이근명이 전서를 썼다.

1914년 2월 세움

 

壽藏碑:생전에 미리 세우는 묘비. 수장은 가묘

 

안내해준 송설역사관 백승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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